<시론>김정은 서울 와도 달라질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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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金 서울 오면 北 통치자로 처음
남북, 역사성 말고 얻을 것 없어
비핵화·경협·통일 논의 無望

이미지 바꿔도 본질은 안 변해
남남 갈등 커지고 北 실체 부각
미북 2차 회담이 북 선택 岐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울에 온다면,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6·25전쟁 당시 김일성 북한군 총사령관이 충청남도 홍성 부근까지 왔다는 전사(戰史)가 남아 있지만, 비공식 기록이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은 북한 통치자의 첫 공식적인 남한 수도 방문이 된다. 오게 되면 아마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교과서에도 등장할 것 같다. 그러나 역사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접어두면, 김정은 방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남이나 북이나 크게 얻을 것이 없다.

우선, 김정은 방한은 북 비핵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김정은이 서울에서 핵 포기를 선언한다면 세계적 뉴스가 되겠지만, 가능성이 없다. 아직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말하는 사람은 문 대통령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정도다. 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믿지 않는다고 미 당국자가 말했고, 중국의 한반도 담당자들도 30년 뒤에나 포기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북한은 남북 경제 협력에서 큰 선물을 원하겠지만, 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문재인·트럼프 회담의 핵심은 “비핵화 이전 제재 완화 불가”다. 문 정권이 김정은에게 경협을 선물하면 미 정부는 곧바로 한국에 제재를 가할 것이다. 이미 미 재무부에서 거의 그럴 뻔했는데, 한·미 관계를 중시하는 몇몇 인사 덕분에 간신히 넘어갔다고 한다.

김정은을 ‘위인’으로 칭송하고, ‘공산당이 좋아요’를 외치며 방문을 환영하는 단체들은 통일을 얘기하는 것 같다. 통일?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통일을 말하나? 어떤 체제로의 통일인가. 공산 체제로의 통일을 말하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아니라면 통일을 말하지 말라.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다.

김정은이 서울에서 이미지 변신을 위한 행사들을 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 요구대로 현충원에 참배할 수도 있고, 국회에서 보수층 듣기 좋은 연설을 할 수도 있고, 청년들과 악수하며 함박웃음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쇼’일 뿐이다. 아무리 분칠을 해도 김정은이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경제실패국의 세습 독재자이며, 핵미사일로 한국과 동맹국을 위협한다는 본질은 바뀔 수 없다.

문 정부는 김정은 서울 방문을 ‘우리 민족끼리 손잡는 큰 마당’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또 한 번 탁현민을 앞세워 감성적 이벤트들을 꾸미려 할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와 무관한 김정은의 방문은 오히려 남남갈등만 더 악화시킬 것이다. 김정은이 오면 광화문·서울 광장은 인공기를 든 환영단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시민이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반대 시위를 할 것이다.

보수 세력은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반대할 것으로 종북·친북 세력, 좌파들은 짐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인공기 환영단의 적나라한 김정은 추종 행태를 보면서 그동안 ‘평화’라는 구호에 막연한 희망을 가졌던 중도 세력이 정신을 차리고 함께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김정은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꼭 오기를 바란다.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 와서 국회의원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 김정은이나 문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서울 회동이 아니라 미 정책 변화를 정확히 읽는 것이다. 트럼프는 내년 1, 2월에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스티븐 비건-최선희의 상견례, 마이크 폼페이오-김영철 간의 고위급 회담을 피하자 협상 재개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기로(岐路)에 섰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1차와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또 한 번 싱가포르 합의문 같은 것이 나오면 미 의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 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는 보도가 갑자기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미 국내 여론이 다시 들끓을 것이다. 미 의회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이다. 그 방법은 협상이든, 무력이든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다. 2차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확인되면 미국은 본격적인 압박에 들어갈 것이다. 전쟁은 쉽지 않지만, 동·서해를 봉쇄하는 군사 작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전문가는 전망했다.

북한은 사면초가(四面楚歌)고, 우리 정부도 운신의 폭이 좁다. 문 대통령도 좀 더 주변을 돌아보며 대북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