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등산하는데 왜 돈 받나” 사찰 문화재 관람료, 논란 재점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초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됐지만 사찰들이 문화재관람료를 계속 받자 그해 10월 등산인들이 관람료 징수반대 시위를 벌였다. 자료사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7월 한 사찰의 신도들이 문화재관람료 징수 반대 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 앞에서 맞불시위를 벌였다. 자료사진

- 文 폐지 공약에도 부처·조계종·정치권 이해얽혀 난관

전국 63곳 최대 5000원 징수
국립공원 민원 최다 불만사항
靑 청원 게시판서 꾸준히 제기
지리산 천은사 대표 갈등사례

환경부·문체부·문화재청 간에
미묘한 이견·책임 떠넘기기도
불교票 의식한 정치권은 ‘외면’

사시사철 전국 국립공원 입구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를 흔히 목격한다. “사찰은 둘러보지 않겠다. 산행만 하겠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지 않았느냐”는 관광객과 “그래도 사찰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매표소 직원의 실랑이 내용은 어디나 비슷하다. 설악산 신흥사나 오대산 월정사는 사찰의 1㎞ 전후 국립공원 입구에서 관람료를 징수한다. 산에 들어가려면 꼼짝없이 돈을 내야 한다. 전남 구례에서 지리산 성삼재 노고단으로 가는 지름길인 ‘지방도로 861호선’은 20여 년 전부터 지리산을 찾는 이들의 원성이 쌓여온 길이다.

◇“길 막고 관람료 내라니…” = 전국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2007년 초 폐지됐다. 주5일 근무제 확산, 웰빙 열풍 등과 맞물리면서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이후 1000만 등산인구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국립공원 내 일부 사찰이 공원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문화재관람료를 계속 징수했다. 이때부터 전국 주요 국립공원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둘러싼 실랑이가 거세졌으니, 10년이 넘은 해묵은 논란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4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관한 반대 청원은 올 한 해만 70여 건에 달한다. ‘등산 가는데 왜 절에 입장료를 내야 하는가?’ ‘길을 막고 산적질을 하는 사찰들의 행패를 막아 주세요’라는 등의 내용이 주류다. ‘문화재관람료를 사찰 입구에서 받게 해달라’거나 ‘우회도로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도 적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국립공원 관련 민원 946건을 분석한 결과, 그중 ‘공원시설물 이용 불편사항’에서 ‘관람 의사가 없는 사찰 등에서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따른 불만사항’(38.8%)이 가장 많았다. 국립공원 주변 상인들의 불만도 나온다. 속리산 국립공원의 경우 법주사(충북 보은)와 화북(경북 상주) 등 4곳에서 출입할 수 있는데, 유일하게 관람료 4000원을 받는 법주사 지구의 관람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문화재청의 ‘사찰별 문화재 관람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전국 63개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다. 많게는 5000원부터 적게는 1000원까지 징수한다.

◇“사찰 사유재산에 공원·도로 만든 정부가 책임져라” = 문화재관람료제도는 1962년 1월 문화재보호법이 공포돼 국가지정문화재, 지방문화재, 문화재보호구역 등에 대해 원형을 보존하도록 강제하며 시작됐다. 문화재보호법으로 인해 대다수 문화재 보유사찰의 문화재뿐 아니라 사찰 부지까지 재산권 행사가 규제됐고, 국가가 일괄적으로 보상할 수 없자 고안한 것이 ‘사찰이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정한 문화재보호법 제49조다.

지리산 천은사는 문화재관람료 갈등의 역사와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 10월 27일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종교투명성센터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천은사를 방문해 “국민을 희생양으로 한 더 이상의 위법한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중단하라”고 항의했다. 이 항의 방문으로 문화재관람료 문제가 여론에 재점화됐다. ‘지방도로 861호선’을 지나는 차량은 대부분 사찰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를 통과하지만 관람료만은 내야 한다. 지난 2년간 지역 경찰에 신고된 통행료 시비만 100건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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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는 입장문을 내고 토지 소유권자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원을 지정하고 지방도로를 건설하는 한편 자연공원법 등 각종 규제로 제약만 해온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가 1967년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며 사찰 재산권이 제약됐고, 지방도 제861호선 개발은 천은사가 강력히 반대했지만 서울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관광객 유치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것이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의 천은사 소유면적은 약 1157만㎡(약 350만 평)로 지리산남부관리사무소 관할 면적의 14%를 차지한다. 그중 45만9704㎡(약 14만 평)는 문화유산지구로 지정돼 있으며 도로의 토지 소유권이 천은사에 있는 만큼 문화재관람료 징수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천은사 관람료 징수를 둘러싼 소송도 있었다. 2010년 강모 씨 등 74명과 2015년 박모 씨 등 105명은 천은사를 상대로 통행 방해 금지 청구 소송을 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도로 부지 일부가 사찰 소유라 해도 지방도로는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된 시설”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람에게만 18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해 강 씨 등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법원 판결은 천은사 문화재관람료의 징수 자체 문제가 아니라 차량통행방해를 통한 징수가 불법이라는 취지여서 사실상 본질적 갈등에선 손을 뗐다. 자연공원 지정에 따른 손실보상의 문제와 그 보상을 위한 종교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의 적절성 등 문화재관람료 갈등이 법적으로 무 자르듯 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법조계에서는 자연공원법이 인정하는 손실보상의 규정 및 범위부터 문화재보호법 49조의 위헌성 여부, 사찰이 문화재의 정당한 소유자에 해당하는지 등 법적으로도 정리 안 된 부분이 산적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조계종 협상 중…이번에는 해결할까 = 문화재관람료 갈등은 국립공원의 주관 부처인 환경부,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이전 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의 합동징수를 해왔던 국립공원관리공단, 사찰 소유 문화재에 대한 보호 및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문화재청, 관람료 징수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주요 사찰을 대표하는 조계종, 그리고 개별 탐방객들을 대신하는 시민단체 등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복잡한 방정식과 같다. 정부 부처조차도 환경부와 문체부, 문화재청 간에 미묘한 이견이 있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도 감지된다. 정치권도 외면한다. 관심을 갖다가도 선거철이 다가오면 아예 눈을 감고 만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관람료를 폐지하는 대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통문화보존을 지원하는 방안을 언급했지만, 막상 재원마련 등 시행에 난관이 적지 않다. 불교계도 문화재관람료 갈등이 불교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이미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해결을 바라고 있다.

조계종 기획실장인 오심 스님은 최근 “문화재관람료 문제가 잘못된 정보로 호도되는 부분이 있는데, 제도적 보완을 통해 국민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조계종에 따르면 국립공원 전체 면적 7.2%가 사찰 소유 토지다. 사찰 토지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자연공원법 등으로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사유재산권 침해인 만큼, 관람료를 폐지한다면 정부가 이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관람료 징수 위치를 사찰 입구로 옮기면 상당부분 문제가 해결되지만, 조계종은 그에 따른 손실보전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재관람료가 사찰 문화재 및 주변 자연경관의 보호에 쓰이는 만큼 그에 대한 보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사찰문화재의 유지·보수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54개 사찰에 대해 문화재 보수 등에 지원된 국가예산이 올해에만 260억 원에 달한다.

문화재청과 조계종은 지난해 3월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관련 문제를 계속 협의해 왔다. 올해에도 몇 차례 협의를 가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계종에서 국립공원 내 사찰 토지에 대한 보상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않고는 관람료 징수 위치 개선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국립공원 지정으로 사찰 토지의 재산권이 침해받는 문제는 문화재청이 아닌 환경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여서 아직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관람료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자연공원 내 사찰의 가치에 대한 평가, 관련 정부기관의 통합 대응, 사찰재정의 투명화 등을 통해 서로 신뢰회복이 우선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