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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12월 05일(水)
21C 세계경제 이끈 정교한 ‘GVC’… 거친 보호무역에 ‘위기’
Global Value Chains:글로벌가치사슬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25) 흔들리는 자유무역 시스템

생산·조립·판매 글로벌 분업
‘GVC’ 부가가치 창출 극대화
세계 무역의 60% 이상 차지

고정-한계비용 국가별 격차
다자간 자유무역이 가장 유리
서비스업이 생산성 더 키워

관세·규제 벽 갈수록 높아져
中기업 분업대신 생산 내주화
GVC 위축… 세계경제 위협

美·中 무역전쟁 교착 계속땐
수출의존 높은 한국 큰 타격
CPTPP 참여도 고려해봐야


#1. 지난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이 관세를 맞기 싫으면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트위트했다. “우리가 중국에 부과할 수 있는 막대한 관세 때문에 애플 가격이 인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금이 없고 세금감면 혜택도 있는 쉬운 해결책이 있습니다. 중국 대신 미국에서 만드세요. 미국에 공장을 지으세요.”

애플사가 중국으로부터 완제품을 수입하나 사실은 생산 과정의 일부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9년 중국의 아이폰 수출에 따른 미국의 대중 적자는 19억 달러였다. 그러나 핵심부품을 공급한 일본과 독일같이 다른 나라들이 제공한 부가가치를 제외하면 대중 적자는 73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애플이 제품을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s, GVC)을 통해 생산하지만 기존의 수출입통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는 데 따른 착시인 것이다.

애플 제품 부품의 생산, 조립,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은 정교한 GVC를 통해 수행된다. 우선 미국, 아시아, 유럽에 소재한 수백 개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아웃소싱한다. 팀 쿡은 CEO가 된 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협력사들 간 경쟁을 조성하고 그 수를 크게 줄였다. 외주 받은 부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져 해외로 판매하고(2017년 판매액 기준 63%) 나머지는 국내로 들여온다. 들여온 제품은 UPS나 페덱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판매된다(애플사는 아마존, 월마트에 이어 미국 내 세 번째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나머지는 캘리포니아주 엘크 그로브시에 있는 창고에 보관해 직판하거나 통신사, 도소매, 중고상으로 유통된다. 제품 서비스는 애플 마니아가 맡고 사용자가 새 모델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아이폰 트레이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림1>은 GVC에서 생산 단계별 부가가치를 보여준다. 26년 전 에이서 컴퓨터 창립자인 대만 출신의 스탠 시(Stan Shih)가 처음 소개한 이 그림은 스마일 곡선(Smiling curve)이라고 부른다. 그는 PC 생산의 가치사슬에서 양쪽 끝 부분의 연구·개발(R&D)과 마케팅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영역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스마일 곡선은 GVC를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40여 개국을 대상으로 한 투입산출 데이터를 제공하는 WIOD에 따르면 GVC를 통한 무역은 글로벌경제가 대침체에 들어선 2011년 정체됐으나 여전히 부가가치 기준으로 전 세계 무역의 60∼6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GVC 무역이 21세기 무역패턴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2. 2세기 전 D 리카도는 국제무역이 비교우위에 따라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국이 양복을 만드는 데 100시간, 포도주를 생산하는 데 120시간의 노동이 각각 소요되나 포르투갈은 같은 양복과 포도주를 만드는 데 각각 90시간, 80시간의 노동이 투입된다는 예를 들었다. 영국은 포르투갈보다 생산성이 낮아 두 상품의 생산에 더 많은 노동시간이 소요된다.

한편 영국은 포르투갈보다 상대적으로 양복의 생산성이 더 높다. 포도주 생산에 투입된 노동을 양복생산으로 돌릴 때 더 많이 양복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포르투갈은 포도주 생산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영국은 양복에,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비교우위를 가진다. 당시 영국이 포르투갈에 양복을, 포르투갈이 영국에 포도주를 수출한 것은 비교우위에 따른 결과임을 리카도가 보인 것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1세기 뒤 생산요소로서 자본이 추가로 고려되면서 무역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함의를 풍부하게 했고 1960년대까지 국제무역의 패턴을 설명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 당시 서독 등 유럽과 일본이 수출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국제무역은 크게 확대됐고 무역패턴도 산업 간 무역이 아닌 교역국 간 유사한 상품을 수출하는 산업 내 무역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유럽과 미국이 포도주를, 일본과 미국이 자동차를 서로 수출하는 무역패턴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 들어와 중간재를 수입하고 다시 가공해 최종재를 수출하는 무역패턴-1970년대 마산 수출자유지역이 그랬듯이-이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무역패턴엔 저소득국가들도 대거 참여해 전 세계가 글로벌경제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GVC가 21세기 무역을 주도하게 됐다.

1970년대 이후의 무역패턴은 더 이상 비교우위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연구자들은 전통 무역이론이 가정하는 완전경쟁이 비현실적임을 깨닫고 그 이유는 생산이 늘어날 때 평균생산비용이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아가 개별기업 차원의 미시자료로부터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수출을 하는지가 그 기업의 생산성에 뚜렷한 차이를 부여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특히 운송비용의 하락과 정보통신기술(ICT)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제품의 생산과정을 설계, 부품 조달과 조립, 유통 등 단계별로 잘게 나눌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생산과정의 분업이 규모의 경제를 가져온 것이다.


#3. <그림2>의 TC1은 대학 시절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기업1의 총비용 곡선이다. C1은 고정비용을 나타내며 TC1이 직선인 것은 생산수준과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비용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기업2의 총비용 곡선인 TC2는 고정비용은 기업1보다 높으나 대신 한계비용이 낮다. 한편 해외에 소재한 기업3의 고정비용 C3는 다른 두 기업보다 훨씬 높으나 대신 TC3 곡선의 기울기, 즉 한계비용은 매우 낮다. 이와 같이 기업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생산함수는 생산과정의 분업을 가능하게 한다.

생산의 분업은 먼저 기업1이 생산을 하다가 TC1과 TC2가 만나는 점에서 기업2에 넘겨지고 다시 TC2와 TC3가 만나는 점에서 기업3이 이어받아 일어난다. 이때 한 기업이 도맡아 생산할 때보다 세 기업이 분업할 때 생산비용이 줄어드는데 생산이 늘어날수록 한계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중요한 함의를 준다. 우선 기업의 고정비용이 같을 때 한계비용이 가장 낮은 기업, 즉 총비용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낮은 기업만이 GVC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동종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수출기업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정형화된 사실과 부합한다.

다음 GVC에 참여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다. GVC를 주도하는 기업이 혁신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외국에 있는 기업3에 대한 통제를 손쉽게 하기 위해 소유하는 것을 선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이 기술을 훔친다고 비난하는 것은 중국에 직접투자 시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지분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한 중국 정부의 규제를 비판한 것이다.

셋째는 GVC가 나라별로 이질적인 기업의 생산성을 생산의 분업화로 활용하는 기회를 창출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왜 다자 간 자유무역이 양자 간보다 유리한지 이해된다. 양자 간 자유무역에서는 원산지 규정이 중요한 다툼의 대상이다. 한국기업이 베트남을 경유, 미국에 수출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수출품이 한국제품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원산지 규정을 잣대로 들이댄다.

그러나 다자 간 무역협정을 맺은 역내국가들 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만약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체결됐더라면 일본기업이 베트남을 경유,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나아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의 분업을 더욱 세분화해 한 나라에 수입과 수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TPP 대신 미국이 빠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주도했다. 같은 이유로 트럼프 정부는 TPP를 파기했다.


#4. 무엇보다도 GVC가 가장 혁신적인 무역패턴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서비스를 교역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생산과정의 단계별로 서비스가 중요한 생산요소로 투입되기에 그렇다. 최종생산물을 기준으로 전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서비스의 비중은 20% 남짓하며 시간대에 관계없이 안정적이다. 그러나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측정할 때 2009년 서비스 비중은 4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J R 힉스는 산업혁명이 금융혁신으로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비록 산업혁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갖추어졌지만 위험부담이 크고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에서 공유경제는 ICT 발전으로 가능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GVC는 운송, 물류, ICT의 발전으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전 생산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기에 21세기 무역패턴으로 자리잡게 됐다.

서비스는 단지 생산과정을 단계별로 연결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시(Shih)가 꿰뚫어 보았듯이 스마일 곡선의 양 끝에 위치한 R&D와 마케팅, 유통과 같이 그 자체로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생산요소다. 그러나 서비스 거래는 그 속성상 상품교역처럼 관세나 비관세 장벽 대신 규제의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기업이 서비스와 관련된 GVC 참여엔 그 기업이 소재한 나라의 규제-규제체계가 포지티브 또는 네거티브인지, 외국인에 대한 예외조항이 있는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5. 글로벌경제의 대침체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는 GVC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관세는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GVC가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선 비관세 장벽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중국기업의 기술발전에 따른 외주의 내주화도 한몫을 했다.

우리나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연구도 GVC 무역이 가지는 함의를 다시 확인해준다. 기업의 생산성이 수출기업인지 그리고 GVC에 참여하는지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나아가 생산성이 높은 선도기업군과 나머지 기업군 사이에 생산성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데 글로벌금융위기 전 GVC 성장기에서는 전자의 생산성이 크게 증가한 데에, GVC 정체기에서는 후자의 생산성이 지체된 데 따른 결과임을 보고하고 있다. 올해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은 수출고도화가 경제성장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요인이라는 실증분석을 내놓았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다면 앞으로 GVC 무역은 더욱 위축될 것이며 이는 글로벌경제, 무엇보다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CPTPP 참여는 이 불확실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일보 11월 7일자 25면 24 회 참조)

한국경제학회장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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