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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12월 05일(水)
“악플로 세상 저버린 가수에 충격… 말의 위험성 생각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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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선플운동본부 사무실 건물 옥상에서 민병철 한양대 특훈교수가 밝게 웃으며 선플운동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

연예인 블로그에 선플달기 과제
대학생 대상으로 ‘운동’ 시작
학생들 혐오표현 폐해 깨닫게해

2007년 사무실열고 본격 발족
동참 청소년 선플 750여만개
초등학생 학교폭력 크게 줄어

의원들 국회에도 위원회 구성
20대 국회의원 297명이 참여
바른말 사용 議員 선플상 시상

사회개선 아이디어 항상 고심
화재신고 알람 시스템 연구도
나와 타인위해 계속 제안해야


지난해 12월은 ‘말’ 때문에 한반도가 전쟁의 위협에 휩싸인 시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로켓맨’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방했고,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맞받아쳤다. 이후 말의 전쟁은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민병철 한양대 특훈교수는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걱정했다. 민 교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한반도로 불러모으기 위해 메일을 보냈다. 대부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핵무기 문제에 관심이 있던 틸만 러프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 공동대표와 팀 라이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아시아·태평양본부장은 민 교수의 요청에 응답했다. 민 교수는 결국 이들을 초청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19일 강원도와 함께 고성군 비무장지대(DMZ)에서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없애자는 취지의 ‘평창평화선언식’을 개최했다.

올해 10월 11일에는 두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다시 초청했다. 강연회를 열고, 앞서 4월에 세계 최초로 제정한 인터넷 평화상의 첫 번째 시상식도 개최했다. 첫 수상자는 한인 등 일본 내 소수자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 반대 운동을 벌이는 세키타 히로오(關田寬雄) 가와사키(川崎) 시민네트워크 회장과 일본에서 인터넷 윤리교육에 힘쓰는 오기소 겐(小木曾健) 인터넷 윤리 전도사가 선정됐다. 민 교수는 이처럼 한반도의 안보뿐 아니라 세계에서 말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을 고민하며 시민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선플운동본부’를 만든 이래 이사장으로서 주도하고 있는 헤이트스피치 추방, 인터넷 인권운동이 최근 주된 활약상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선플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민 교수는 “본부의 인원이 2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많은 일을 이뤄내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영어교육 1세대, 민병철 어학원 등으로 유명한 민 교수인 만큼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대부분 영어 교육을 위해 활용되고 있었다. 그 최상층에 선플운동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민 교수는 여기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선플운동에 온 힘을 쏟고 있다. 2007년 민 교수가 말의 위험성에 큰 충격을 받은 게 선플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됐다. 가수 유니가 근거 없는 악성 댓글(악플)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당시 중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민 교수는 인터넷 세대인 학생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과제를 냈다. 학생 1명이 연예인 10명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서 악플을 찾아 악플을 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고, 선플을 달아주라는 과제였다.

민 교수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실제로 혐오표현의 폐해를 깨닫게 된 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며 “이를 계기로 2007년 5월 23일 선플운동본부를 발족했다”고 말했다. 선플운동에 동참한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올린 선플은 750만 개를 넘어섰다. 선플 자원봉사단도 69만 명에 달한다. 선플운동을 도입한 울산교육청에서는 이를 도입하기 전과 비교해 “학교폭력 발생 건수가 초등학생은 94%, 중학생은 74%, 고등학생은 33% 줄었다”고 발표했다.

운동을 하면서 만난 따뜻한 기적도 있었다. 지난 2012년 대전 우성중에서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임재윤 군의 이야기다. 당시 우성중 학생들이 임 군을 응원하는 선플을 게시하고, 이를 임 군의 친구들이 병실에서 읽어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임 군은 이때부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호흡할 수 없었던 임 군은 인공호흡기 없이도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면서 하품까지 할 정도로 회복됐다. 민 교수는 “처음에는 가망이 없다고 했던 의사도 친구들의 응원으로 상태가 호전됐다고 이야기했다”며 “이 운동으로 여러 가지 성과를 내고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동참한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막말이 오가는 정치권도 선플 문화 확산의 중요한 대상이다. 2007년 11월 당시 17대 국회에서 활동하던 이경재 전 의원 등 10여 명의 국회의원이 민 교수의 선플운동 영향을 받아 ‘국회선플정치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선플정치선언문을 만들어 새로 국회가 꾸려질 때마다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았는데,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299명의 의원 중 297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또 매년 전국 청소년들로 이뤄진 선플SNS기자단 학생들이 국회 회의록 시스템을 직접 들여다보고 바른말을 사용하는 국회의원들을 선플상 수상자로 선정한다. 민 교수는 “시상식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데, 이 점에서 의원들이 자신의 언어 사용에 대해 되돌아보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자부했다. 선플상을 받은 의원들은 민 교수에게 “앞으로 좋은 말을 하라는 말씀이시죠?”라고 응답한다고 한다. 민 교수는 “의원들의 이 한마디에서 매년 선플상을 시상하는 의미를 찾는다”고 말했다.

선플운동은 이제 세계의 혐오표현을 종식하기 위해 뻗어 나가고 있다. 지난 1월 9일 민 교수는 ‘미주 한인의 날 기념축전’ 대회장의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을 방문해 하원 에드 로이스 외교위원장·주디 추 의원으로부터 선플인터넷평화선언문에 서명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로이스 위원장은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사이버불링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선플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 때는 국내 청소년들이 추모 선플 1만여 개를 선플운동본부를 통해 올렸고, 본부에서 이를 모아 추모집을 만들어 중국에 전달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에 선플운동이 알려지게 됐으며, 선플에 참여하게 된 중국 네티즌들이 세월호 참사 때 추모의 뜻을 보내 보답하기도 했다. 민 교수는 “세계 각국에 선플운동과 같은 캠페인이 필요하다”며 “선플운동을 통해 소수자로 살고 있는 한인들이 거주지의 시민들로부터 환영받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민 교수는 끊임없이 제안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살아보니 ‘인생은 제안서’”라는 설명이다. 민 교수가 보여준 개인 노트북에는 과거부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었던 각종 제안서가 쌓여 있었다. 발명 아이디어도 있다. ‘낮은 높이에서도 펼쳐지는 낙하산’은 2001년 미국 9·11 테러 당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으나 펼쳐지지 않아 그대로 추락한 사람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다. ‘불이야!’라고 외치면 소방서에 신고가 들어갈 수 있는 알람 시스템도 연구했다. 선플운동과 관련해 모 방송사에 제안했던 방송 기획서도 있었다. 민 교수는 “제안서를 보내면 대개는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지만, 자기 자신과 타인,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제안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며 “누군가는 반드시 응답한다”고 말했다. 일면식도 없던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한반도로 불러올 수 있었던 데에는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끝없는 ‘제안’이 있었다.

선플운동본부 인력이 부족해도 민 교수는 강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손수 나선다. 인터뷰 이후에도 우연한 인연으로 연결된 필리핀 소재 대학교에서 들어온 선플운동 관련 강연 요청에 응하기 위해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칠 법도 하지만, 일정을 말하는 민 교수의 눈은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민 교수는 “매 순간 나에게 찾아오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에게 제안서를 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서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런 행동은 우리 인생에 상상할 수 없는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니까요.”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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