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북핵 ‘암’3기 진입과 韓·美의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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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국 前 주영 대사 前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조만간 남북과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018년 김정은이 펼친 일련의 정상회담들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수년간 공들여 쌓은 제재망에 구멍이 났다. 제재 문제나 신고와 검증 등 현재의 쟁점을 보면 다시 정상회담을 해도 교착 국면이 돌파될지 미지수다. 경제는 나빠지면 아우성인데, 안보는 악화해도 금방 못 느끼는 게 문제다.

북한은 지난 십수 년간 한 번도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올해도 북한은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으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북한은 아직 비핵화의 입구에 들어가지 않았고, 핵 고도화와 양적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잘 아는 미국이 북핵 장기전에 돌입한다는 평가가 워싱턴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은 북핵이라는 암(癌)이 2018년 제3기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초기 외과수술 시기를 놓친 1993∼2005년이 제1기라면, 2006년 1차 핵실험부터 핵무력을 거의 완성한 2017년까지가 제2기다. 영리한 북한은 곧바로 핵무력을 100% 완성하기보다는 일단 멈춰 서서 미·북 관계 조정과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하자고 했다. 제3기의 시작이다.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등 몇 가지 기술을 추가 시험해 바로 결승점을 통과하지 않는 것은 그다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1차 핵실험이라는 레드라인을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덕분에 미국의 강경 대응 없이 통과했지만, 이번에 김정은 책상 위에 워싱턴을 폭파할 수 있는 핵 단추가 올라간다면 각오해야 한다.

북한은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과 한·미 동맹 이완에 주력하고 있지만, 미국이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은 세계정세, 남북 관계, 미국 국내정치, 미·중 관계 등 여러 요소가 결정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제4기, 즉 핵무력 100% 완성과 제2차 핵타격 능력까지 갖춰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허세, 혼란, 싱가포르 합의 등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생각이 정리된 듯 보인다. 비핵화의 첫 단추를 어설프게 끼운 상태에서 일단 시간적 여유를 갖기로 한 것이다. 대선과 중간선거를 의식해 2년 단위로 끊어 생각하는 트럼프는 정상 차원의 유화적 제스처로 김정은이 제4기로 섣불리 진입할 충동을 억제하는 한편, 최종 목표인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요구하며 제재와 협상을 병행할 것이다. 동시에, 제4기 진입 시 북한이나 중국에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할 것이다.

문제는, 제3기는 불안정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이다. 북핵이 동결된 상태라면 장기간 지속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결도 신고와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 미국·중국·북한 모두 제3기가 오래 지속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안정화 기제가 없다.

이에 더해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강성인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결합으로 사태가 급전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또한, 백악관은 중국이 너무 커지기 전에 한번 손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4기 진입 움직임이 포착되면 중국의 코앞에 군사를 전개하고 압박해 미·중 패권 경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산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행동은 상당히 거칠 수 있고 동맹국의 입장도 무시당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엄중한 현 국면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하며 최대한 무겁게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