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희의 맛있는 술 이야기>겨울오면 軍맥주가 캔으로 바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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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대는 넘어야 할 인생의 관문 중 하나다. 각종 규율과 명령체계로 만들어져 있는 곳에서 통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나라를 지킨다는 명예로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러한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구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Post Exchange, 일명 PX라는 곳이다. 군 복무를 마친 분들이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을 수 있는 단어다. 생필품과 더불어 이곳에서는 술도 판매하고 있다. 총기와 폭발물 같은 위험한 물건들을 다루는 곳이어서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다 보니 항상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부가세가 면세여서 일반 대형마트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군인에게 주어진 업무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작업’이다. 더운 여름에 작업을 마치고 갈증을 잊기 위해 마시는 맥주는 정말 꿀맛이다. 그러한 맥주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온도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겨울철에 발생하는 한파로 인해 동결과 해동이 반복되면 맥주에 침전물이 생길 수 있다. 맥주에는 기본적으로 거품에 영향을 주는 단백질과 폴리페놀 등이 용해돼 있는데, 이들이 동결 등 외부 환경 변화가 잦으면 침전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봄·여름·가을까지는 문제없던 맥주가 겨울만 되면 추위를 타서 영하 4도 이하에서 얼게 된다. 소주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영하 17~18도까지 영향을 받지 않지만, 맥주는 우리가 알다시피 알코올 도수가 낮고 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서 조금만 온도가 낮아도 쉽게 얼어버린다. 그래서 유통 보관할 때 야외에 오랫동안 놔두지 말고 가급적 실내에 보관하는 것이 유리하다.

군부대로 납품되는 군납맥주의 동파사건은 주로 병에 담아 생산하다 보니 겨울철에 병 속의 맥주가 얼면서 부피가 커져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군납맥주는 겨울철에만 캔에 담아 납품하면서 이러한 위험을 줄였다. 무거운 병맥주보다 휴대가 간편한 캔맥주를 많이 찾다 보니 평상시에도 수요가 많았는데, 공급이 적어 캔맥주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간혹 새롭게 나온 스타우트 캔맥주가 있기는 했으나 라거 맥주보다 인기가 적어 군부대 간부들이나 회식자리에 강매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일반 라거 군납 캔맥주는 그만큼 구하기가 어려워 귀한 대접을 받았고 발 빠른 담당자들은 겨울철에 필요한 양을 미리 확보해 두었다가 나중에 봄·여름에도 판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2013년부터 페트병에 맥주를 담아 팔면서 군납맥주도 페트병에 담겨 국군복지단에 납품되기 시작했다. 페트병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군부대에서는 좀 더 다양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군납맥주를 즐기고 있다. 간혹 군납맥주는 맛이 없다고 폄하하는 분들이 있는데 담는 용기에 따른 맛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군납맥주 자체를 맛없게 따로 생산할 정도로 회사들이 정성을 들이지는 않는다. 맥주 외에도 국군복지단을 통해 납품되는 술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는 홍보가 잘 안 돼서 군납으로만 판매되는 것도 있지만, 품질이 뛰어난 좋은 술도 많다. 최근에는 해군과 해병대의 경우 민영화가 되어 일반편의점이 영업하고 있어 예전의 향취를 느끼기는 어렵다.

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