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100명의 삶과 글에 보내는 애틋한 애정

조용호 ‘여기가 끝이라면’ 출간… 작가·시인 등 ‘5년 인터뷰’의 기록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건 간에 끝이 없을 수 없다. 다만 그 끝을 맞는 자세가 중요할지 모른다. 달려가건 기어서 가건, 간 만큼 도달한 곳 거기까지가 끝이 아니라 성취라는 낙관적 태도는 애틋하고 소중하다.”

새로 나온 책 ‘여기가 끝이라면’(작가 발행·사진)은 여기까지 왔다는 성취의 이정표다. 지난 5년간 문화인을 인터뷰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어 끝맺음하지만, 그 이정표로부터 새로운 문화 영토가 시작하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 희망은, 지난여름 타계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생전 인터뷰 때 암 투병의 곤고함에 맞서 자신의 문학비에 새겼다는 낙천주의에서 빌려온 것이다.

책은 100명의 문화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부분 근년에 소설과 시집을 펴낸 국내 문학인들이지만 외국 작가들도 만날 수 있다. 요조, 박찬일 등 가수와 요리사도 있다. 그들의 책 읽기, 글쓰기를 들여다볼 수 있어 이채롭다.

저자 조용호는 문학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로 활동해왔다. 그의 이력은 매 편 3∼4쪽의 인터뷰를 당대의 문화적 기록으로 남기는 데 빛을 발한다. 그는 이 시대에 문학의 위상이 크게 약화하고 있는 것을 직시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문학 광산 깊은 갱도에서 여전히 검은 땀을 흘리는 이들에 대해 애정과 경외를 바친다.

그는 소설가인 김용만 잔아문학박물관장에 대해 문학이라는 종교를 떠받드는 마지막 신도라고 했다. 기실 여기 등장하는 우리 시대 문인은 모두 그런 신념을 지닌 신도 혹은 교주일 것이다. 이들은 문학에 대한 신앙이 인생의 비애와 불행을 자양분으로 자라난다는 것을 증언한다. 책을 읽는 이는 그 증언의 절실함에 수없이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고통받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는데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건지, 내가 가벼워도 되는 건지 그런 확신이 없어요.” (소설가 한강)

“소설을 쓰면서 한 번도 울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나조차 울리지 못하는 소설이 어떻게 남들을 울릴 수 있겠습니까.”(소설가 방현석)

“뭔가 비루하고 굴욕적이고 참을 수 없는 일들을 겪고 살잖아. 인생이라는 게 땅이 푹 꺼져버리고 캄캄한 절벽 앞에 서 있고 낭떠러지 위에 있어도, 그래도 살아온 거지.”(시인 김용택)

“돈 잘 버는 남편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면 어떤 작품도 나올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이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절을 거쳐왔기 때문에 이 평화와 행복을 찾아 여기까지 온 내 자신이 대견합니다.”(소설가 공지영)

저자는 작가와 작품들을 평면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그 고갱이를 짚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욕심은 스스로를 힘들게 했겠으나, 읽는 이에겐 독서의 쾌감을 한껏 선사한다. 문학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지만 대중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로 인식돼 온 김혜순 시와 편혜영 소설 세계를 쉽게 소개한 글이 한 보기다.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 문학의 아이콘이 된 소설가 김숨의 문학 바탕에 연민이 흐르고 있다는 것,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유정의 근기(根氣)는 돈 버는 가장으로 살아내야 했던 청춘기 경험이라는 것을 담은 글도 마찬가지다.

문학 광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저자의 내공은 가위 고수 급이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소설가 이제하의 아웃사이더 기질에 주목하고, 동시에 그 기질의 멋스러움과 함께 적막한 기운을 함께 잡아낸다.

특히 서영은, 도종환, 함정임 등의 작가를 다룬 편은 웅숭깊다. 서영은과 김동리의 독한 인연이 문학적 생애로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짧은 글에 이토록 깊고 넓게 담아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고요하고 잔잔한 강물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종환 시인이 어떤 삶의 격랑을 겪으며 시의 영지(領地)를 지켜 왔는지, 요절한 남자들로 인해 유랑하는 노마드로 살아야 했던 함정임 소설가가 자꾸 뒤통수를 치는 운명에 어떻게 맞서 왔는지를 다룬 글도 울림이 크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