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딜쿠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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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조사팀장

인왕산 기슭 서울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는 아주 특별한 집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행복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의미의 서양식 붉은 벽돌집 ‘딜쿠샤(Dilkusha)’이다. 1919년부터 AP통신 특파원으로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지었다.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의 집터로, 마당에 수령 462년이나 된 보호수 은행나무도 권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 마을’이라는 뜻의 행촌동 지명도 그래서 지어졌다.

테일러 부부의 한국과 딜쿠샤 사랑은 특별했다. 테일러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상황과 독립운동에 관심이 남달랐고, 관련 기사도 많이 썼다. 독립선언서 전문(全文)과 3·1운동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고, 만세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가려는 일본 헌병들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1941년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혐의로 6개월간 감금했다. 부인 메리 테일러도 가택연금을 당했다. 풀려난 후 부부는 1942년 결국 미국으로 추방됐다. 이후 딜쿠샤는 폐허로 변해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렸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그는 1948년 사망했고,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대로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원에 안장됐다.

연극배우이자 화가였던 부인 메리도 한국에서 지냈던 날들을 늘 그리워했다. 그때의 일기들을 엮은 ‘호박 목걸이’ 유고 자서전이 2014년 빛을 보았다. 호박 목걸이는 테일러로부터 받은 결혼 선물이다. 딜쿠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아들 브루스는 2006년 87세의 할아버지가 돼서야 딜쿠샤를 찾아냈다. 그의 방문으로 집 이름과 역사적 중요성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지난해 8월 문화재청은 딜쿠샤를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했고,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복원해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선 테일러의 한국 생활과 그가 남긴 각종 유품 등을 전시하는 기증유물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 목걸이’가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린다. 테일러가 취재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이 실린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 고종의 국장 행렬 사진 등 그가 남긴 유품과 자료가 최초로 공개됐다. 이번 전시에 앞서 테일러 손녀는 서울시에 총 1026점을 기증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테일러 가족의 삶과 당시 시대상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