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베네수엘라와 核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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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핵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장거리 전략 폭격기 2대가 최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인근에 전개된 사실이 확인됐다. 10일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양국 정부가 합동 군사훈련을 위해 TU-160 폭격기를 베네수엘라에 임시 배치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 군사훈련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4∼6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이뤄졌다. 마두로 대통령은 대(對)러 협력을 통해 국제 고립을 돌파함과 동시에, 대미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내부 단결을 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마두로는 푸틴으로부터 60억 달러 규모의 석유·금광 산업 투자 약속도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TU-160은 옛 소련이 미국의 B-1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초음속 전략 폭격기다. 운용되는 폭격기 가운데 가장 큰 기종이다. 내부 폭장량이 45t으로 32t인 B-1보다 훨씬 많다. 항속거리가 1만4000㎞이며 사거리가 5500㎞인 핵 순항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어 미국이 위협으로 느끼는 전략무기다. 그런데 이 폭격기를 미국의 바로 발아래 갖다 놓은 것이다. 과거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카리브해의 라오르칠라섬 해군기지에 TU-160을 항시 배치할 것을 제안해 미국을 긴장시킨 적도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탄 상태다. 지난달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이 130만%나 된다. 지난 8월 화폐 액면에서 0을 다섯 개나 떼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소용이 없다. 먹을 것을 찾아 이웃 나라로 탈출하는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미국 타이어업체 굿이어가 베네수엘라에서의 사업 중단을 전격 발표하자, 11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굿이어 자산 인수에 나섰다. 이미 켈로그, 브리지스톤, 킴벌리 클라크, 제너럴 모터스 등도 베네수엘라 생산시설을 폐쇄하거나 영업을 축소한 상태다. 마두로 정부는 이 모든 것을 미국의 음모로 간주하고 있다.

마두로는 ‘사람이 먼저다(La gente es lo primero)’라는 차베스 전 대통령의 구호를 앞세워 왔다. 이 구호에 매료된 한국과 서방의 일부 진보인사가 차베스를 ‘남미의 해방자’라 칭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핵 폭격기가 먼저인 세상이 됐다. 베네수엘라는 미 제국주의가 아닌 ‘빵’으로부터 해방돼 버린 것이다. 전체 국민 평균 체중이 줄어드는 ‘국가 주도 다이어트’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