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文정부 ‘나이브’한 외교안보, 北에도 美에도 당할까 불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원로 국제정치학자인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4일 대학의 연구동 건물 앞 자작나무길 벤치에 앉아 반세기 전 미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노(老)학자는 “문재인 정부가 외교·안보의 기본을 모른다”면서 과속으로 치닫는 남북관계와 균열 조짐을 보이는 한·미 동맹의 미래를 걱정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남북간 군사합의 체결·이행 등
관계진전도 없는데 너무 과속
충돌땐 엄청난 피해 야기할 것

韓美동맹 덕 65년간 전쟁끊겨
對美관계 소홀하면 큰코 다쳐
슈퍼파워 우위 무시해선 안돼

정부, 北 핵집착·전략 파악못해
윗선에서 옳지못한 지시한다면
외교안보 엘리트 職걸고 저항을

원로 국제정치학자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는 마음속에 6·25전쟁과 전쟁 이후 남북 대치와 각종 대화 시도에 관한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빛의 속도로 전개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잔잔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도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세에 드리워진 ‘불안’의 그림자를 쉽게 떨쳐내지는 못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더라도 과속 조짐을 보이고 있는 대북 정책과 균열 조짐을 보이는 한·미 협력체제 등을 간과하기 어려운 듯했다. 노학자는 ‘신중에 신중’을 강조하면서 “이런 시대일수록 국가 지도자와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은 국내외의 불안 요소를 해소하고 책임 있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역사의 평가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남북관계와 관련, 지난 9월 채택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해 불안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안하지. 남북 적대관계가 지속되면서 그간 남북이 얼마나 무력 증강을 많이 했나. 잘못 충돌하면 엄청난 피해를 본다. 6·25전쟁 당시 사용된 무기는 사실 별 게 아니었다. 우리는 탱크나 포가 없어 고전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미사일, 다연장포 등으로 화력이 엄청나게 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합의는 양측 관계 개선이 진전돼 안정 단계에 진입해야 하는 건데 너무 서두른 감이 있다.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다고 바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장관직을) 그만둘 걸 아는 사람이 거기에 왜 서명하는지, 그만둘 사람이라면 (서명을) 거부하고 나왔어야지. 관료나 참모들은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될 때 사표를 던질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책임질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남북 군사 합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비대칭 군사력은 (한국이) 열세 아닌가. 물론 재래식 군비는 이제 한국도 어느 정도 갖췄다. 북한은 무기 수량은 많지만, 우리 무기는 현대화돼 있다. 그런데 감시초소(GP)를 숫자를 맞춰 1대1로 철거했다. 그러면 북한 GP가 많아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GP는 감시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설이어서 꼭 있어야 하는 자리는 함부로 철거에 합의해선 안 된다. 비행금지구역 설정도 심각한 문제다. 동생이 정찰비행을 해서 들었는데 원래 군사분계선(MDL) 기준으로 5㎞, 10㎞ 거리에 따라서 매일 정찰 비행을 한다. 우리는 인공위성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하고 미군도 (MDL 이북의) 안쪽까지 감시한다. 그래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문제가 심각하다.”

―남북 군사 합의서가 1953년부터 시작된 한·미 동맹을 흔든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최근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잇따라 축소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주춧돌 같은 것이다. 한·미 동맹 때문에 전쟁 없이 1953년부터 65년 동안 (지내왔다). 이건 엄청난 기간이다. 가장 오랜 휴전이 가능했던 것도 한·미 동맹 때문이다.”

―65년 동안 올 들어 처음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거 선거 때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슈퍼파워(초강대국)는 언제든 작은 나라를 희생할 수 있다. 중국도 북한을 서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도 중국과 사이가 안 좋았다. ‘좋은 변호사’는 옆집에는 원수 같은 것이다. 일본하고도 그런 문제가 있다. 미국이 (6·25전쟁에) 187만 명을 동원하고 이 가운데 15만5000명의 전사자 및 부상자를 냈다. 그렇게 우리를 도와줬고 전후 복구도 도와줬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그런 희생과 지원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미국을 계속 자극하고 서운하게 대하면 우리도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 미국이 ‘그래, 해봐?’ 이렇게 나오면 당할 수밖에 없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리처드 홀브룩(전 국무부 차관보)을 참모로 쓰면서 한국에서 미군을 다 철수시키려 한 적도 있다.”

―지금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다양한 변수가 있으니까 전면 철수를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계속 미국을 서운하게 하면 주한미군 규모를 대폭 줄일 수 있다. 1962년 쿠바 사태가 나고 북한이 중국을 지원하니까 니키타 흐루쇼프(구소련 서기장)가 대북 지원을 다 끊었고 결국 북한이 손들었다. 그렇게 강대국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피를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고만장하다간 큰일 난다. 외교·안보를 제대로 모르면 당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기고만장하다고 평가하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체성 때문에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있다. 이 정부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명분으로 남북관계가 북한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문재인 정부가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의구심이 생기거나 서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신뢰를 잃게 되면 당할 수 있다. 이런 건 정말 외교·안보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행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조직이나 부처에서 우선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어디라고 보는가.

“먼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거시적 안목과 전략적 비전을 지니고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하는 능력의 보유자여야 한다.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이나 비서실장 등의 지나친 정치적 간섭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둘째, 엘리트 그룹인 외교부는 청와대 지시나 따르는 수동적 기관이 아니다. 장악력이 약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하에서 현 외교부의 사기는 위축돼 있다. 셋째, 통일부는 청와대 눈치를 보면서 북한 대변자 역할을 하는 현상에서 탈피해야 한다. 넷째,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는 철저한 사명감과 탁월한 업무능력을 지닌 리더를 필요로 한다. 이들은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이유를 인정하고, 요동치는 주변 정세와 취약한 국가안보 현실을 대통령과 국민에게 진솔하게 밝히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들은 옳지 못한 지시를 받을 경우 직을 걸고 강력하게 저항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감을 가질 만한 외교적 성과는 무엇이며, 혹시 성과가 미비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기회로 긴장된 한반도 정세를 완화·안정시켰다. 그런 면에서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미·북 정상회담 성사 등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의도와 협상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남북관계 개선에 몰입하고, 한국 안보의 초석인 한·미 동맹을 소홀히 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북한을 과신하는 측면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는 정상회담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비핵화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중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 즉 가장 중차대한 실책을 하나 꼽는다면 어떤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평화와 안보를 강조하지만, 북한의 강한 핵 보유 집착과 협상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체제를 약화하는 위험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과 그 이행은 희망적 사고와 정치적 신념이 아닌, 냉철한 사고와 오랜 경험 및 지혜를 필요로 한다.”

―문 대통령이 오늘(4일) 밤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다. 이번에 미·북 정상회담도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비핵화에 추가적 모멘텀(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올해 시간이 20여 일 남았다. 20일 동안에 이걸 성사시킬 수 있겠나. (4·27 남북정상회담처럼)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 잠깐 나타나는 방식은 가능하겠지만, 서울 방문은 처음이어서 상당한 준비와 격식을 갖춰야 한다. 물론 북한이 예상 밖의 행동을 많이 하니까 김 위원장이 갑자기 서울에 올 수는 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말했듯이 ‘북한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적극적 관심이나 호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미·북 관계가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납득할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고 있고, 중간선거 이후 미국은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정세 변화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중재역할은 북한과 미국 양측을 만족시키기 어렵게 됐다.”

―만약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진다면, 남북관계나 비핵화에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이미지 면에서 기대치를 높일 수 있겠으나, 복잡한 국내외 상황을 볼 때 남북관계나 비핵화에 큰 진전을 가져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단,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미국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이 되고 워싱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속칭 ‘태극기 부대’ 등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 사회는 다원주의 사회이며, 북한 사회는 중앙집권적인 획일주의·집단주의 사회다. 6·25전쟁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북한의 계속된 도발 때문에 우리 사회에 북한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보수세력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태극기 부대’는 문재인 정부의 친화적·유화적 대북 정책을 행동으로 비판하고 저지하려는 보수 세력의 선봉인 셈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 서울 답방 때, 그들은 거리로 나와 격렬하게 비판하고 항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는 단체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4일 대학 내 연구실에서 문화일보와 파워 인터뷰를 하면서 북핵 문제의 향배와 동북아정세를 설명하고 있다. 전 교수는 “외교·안보의 당면한 목표는 비핵화이며 우리 정부는 이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조언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비핵화 협상에 실패한다면 내년에 다시 압박과 긴장으로 돌아간다고 보는가.

“미국이 지금은 한쪽은 제재, 한쪽은 대화 두 가지를 다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채찍을 치켜들고서 김 위원장에게 ‘친구다’ ‘사랑에 빠졌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네까짓 것’이란 생각이 있을 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거래하듯이 상대방을 겁을 줬다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 측면에서는 미국을 잘 알고 있다. 휴전 회담할 때도 접했고 판문점에서 접촉도 했으니 미국에 대한 경험이 없지는 않다. 그러니까 북한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 노하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나이브한(미숙한)게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경협을 통해 북한을 도와주면 문제가 금방 풀릴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북한은 그런 거 받아놓고도 꿈쩍 안 할 나라다. 이산가족면회소도 전부 우리 돈 들여서 만들어 놨는데 북한이 몰수했다. 북한은 그럴 수 있는 나라다. 힘들게 버텨왔기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우리 상상 밖의 행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북한을 잘 알자는 말이다. 그런 나라를 상대하는데 조심할 건 조심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국이 작년까지 연합훈련을 하고 비행기를 한반도에 보내고 했다. 북한이 겁을 안 먹겠나. 과거 북한이 팀스피릿 훈련을 그렇게 싫어한 것은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한·미가) 풀어줬다. 지금 다시 연합훈련을 한다면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또 미국을 설득하면서 그런 걸 축소하자고 하니까 우습게 만들어 놨다. 그것(연합훈련)을 가지고 있어야 협상이 가능한데, (문재인 정부의) 협상술이 뭔지가 의문이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떳떳한 것은 남한을 초토화하는 미사일과 핵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네가 두려우니까 남한이 저렇게 나온다고 보는 거다. 우리가 (북한에) 잘하고 싶어서인 점도 있지만…. 중국과 파키스탄을 보면 그런 게 드러난다. 중국이 가난할 때 원자탄을 만들고 1967년 수소탄도 만들었다. 그러니까 누가 중국을 무시하나. 중국이 (핵 개발을) 딱 하고 나니까 아무도 못 건드린다. 파키스탄도 굶더라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니 못 없앤다. 북한이 그런 것을 보니까 (핵 개발을 하면) 살아남더라는 것이다. 작년에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겁을 주고 올해 들어와서는 ‘우리 (핵무기는) 이제 됐다, 경제 쪽으로 남한하고도 잘해보자’ 하고 나왔다. 그런 북한을 누가 무시하나, 핵무기가 얼마나 무서운데. 북한에는 수십 년 앉아서 그것만 파는 외교·안보 베테랑이 있다. 미국이 북한과 안 싸우면 최고가 아니냐는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국내에서는 완전히 몰려 있다. 밖에서 성과를 건져야 하는데 이란을 다 부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갈등을 빚고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안 풀리고 해서 뭔가 하나 성과를 내야 하는데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면 자기에게 주요 실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지난번 중간선거 전에 북한에 양보를 좀 얻으려고 하는데 안 해줬지 않나. 북한이 그러니까 무서운 것이다.”

―북한의 핵 포기 의사는 어떻게 보나.

“만족할 만한 대가를 받으면 할 수도 있을 거다. 제재 완화, 종전선언, 평화협정 같은. 그런데 거기에 경제 지원까지 다 준다고 하면 핵을 또 만들 수도 있다. 핵 과학자들이 남아 있잖은가. 내가 과거에 황장엽(전 노동당 비서) 씨한테 물어본 게 있다. 핵무기는 과학자가 500명 이상 있어야 만든다는데 그 정도 사람이 있냐고. 황장엽 씨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또 원자탄이 여러 개 있다고 하더라. 전병호(전 노동당 비서, 과거 핵 개발 담당 간부)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에 대해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채택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 언급 자체를 자제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수많은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확인된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소위 인민의 낙원이라는 정권과 체제유지를 위해 북한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가혹한 인권침해·유린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다. 초강대국 미국은 정책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북한의 심각한 인권유린 실태를 비판하고 제재 조치를 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반면에,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는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반발과 감정을 지나치게 살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음과 같이 대략 세 가지 대안을 지닌다. 첫째, 미국 등 선진국들과 합심·협력해 북한의 비극적 인권유린 상태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둘째,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비판과 압박에 동조하면서도 물밑으로는 은밀히 북한의 인권유린 행위와 실태를 개선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인도적 지원 같은 생산적 조치들을 추진한다. 셋째, 북한 인권유린에 대해 외면하거나 침묵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제재와 비판을 하면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보복을 초래할 수 있고, 침묵으로 일관하면 북한 인민의 불행을 외면하는 기본적 도덕·윤리관을 결여한 비겁한 정권의 오명을 모면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은밀한 물밑 접근의 꾸준한 병행 추진이 이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해답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어떤 인물이라 보는가.

“처음에 자기 아버지 죽고 후계자로 나왔을 때는 어리지만 스위스에서 유학했던 것이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해봤다. 덩샤오핑이나 저우언라이(周恩來)도 젊었을 때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덩샤오핑도 실용주의자고 결단력도 있고, 마오쩌둥(毛澤東)도 그를 못 건드렸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젊을 때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다녔다. 이런 게 상당히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중학생 때 유학이었다고 해도 김 위원장에게 그런 기대를 해볼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완전히 험악하게 나가고 미사일도 계속 쏘고 하니까 ‘젊어서 불장난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래서 평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평창동계올림픽 때 남북관계를 사다리로 해서 트럼프 대통령까지 끌어내 정상회담하는 것을 보니까, 참모들이 잘하는 것이겠지만 김 위원장도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한·일 관계도 불편한 상황이다.

“한·일 관계는 비판적이다. 과거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심하게 했나. 그러나 국제사회는 서바이벌이다. 안보, 경제, 문화가 다 걸려 있다. 그런데 일본하고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것인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미국이 한국에서 투자금을 걷어가서 어렵게 되고, 중국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자기네 진면목을 보여줬다. 미국하고 또 위기가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이 ‘일본하고 호주하고 같이 인도 쪽으로 협력하면 된다’는 식으로 나가면 한국은 소외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돈에 관심이 있는데 한국이 미국에 이익이 되냐 안 되냐를 따진다. 한국이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조금 낸다고 불평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방위비를 증액 안 하면 군사훈련 안 한다는 건데, 다른 미국 지도자들과 다르다. 일본과의 감정을 안으로 소화하고 겉으로는 외교적으로 필요하다면 관계를 잘해야 한다. 일본은 이제 시비조로 ‘국가가 어떻게 협정을 취소할 수 있냐’는 식으로 나온다. 어떻게 그런 모욕이 있는가. 국제관계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못한다. 그런 결정을 청와대에서 어떻게 막 내리느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독자 대북제재 완화·해제에 대해) ‘승인’ 이야기까지 했다.

“불쾌하고 불안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자신은 북한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한국이 자꾸 나사를 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너희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 둘이 압박해야 하는 것인데’라고 생각하거나, 동맹국을 찍어 누르기 어려우니 ‘100% 함께한다’는 이야기나 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문재인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북한과의 관계는 제일 중요한 게 비핵화를 어떻게 달성하는지, 진행할 수 있는지다. 문재인 정부는 소위 선순환적 방식을 통해 이걸 달성한다는 것이고. 남북관계가 먼저 개선 가능하고 이 역할을 몰아 비핵화로 나가겠다는 것인데, 북한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북한은 ‘하나 받았으니 하나 더 내놓으라’고 하지 ‘하나 받았으니 잘해보자’고 하지 않는다. 단계적·동시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하자는 것은 북한이 그렇게 하자는 것인데 우리가 북한 대변인인가. 문재인 정부가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The Buck stops here’를 상기해야 한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각오 말인가.

“우리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무거운 것을 느끼고 중대하다는 것을 느끼고 하는 그런 게 있을 것이다. 트루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군대를 계속 파견하고 군인이 많이 죽어서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서거할 때는 미국 내에서 거의 생중계 수준으로 뉴스가 나왔다. 나중에 평가가 달라진 것이다.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원폭을 투하한 미군 조종사가 있다. 그 사람이 트루먼 전 대통령을 만나서 대화한 게 소개된 적이 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이 “당신 원폭 투하한 것 후회하냐”고 물으니 조종사가 “아닙니다. 당신이 책임자지 내가 책임자인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트루먼 전 대통령이 껄껄 웃으면서 “당신 말이 맞다”고 했다. 최종 책임은 트루먼 전 대통령 자신이 진 것이다. 지도자로서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인터뷰 = 신보영 차장 (정치부) boyoung22@munhwa.com

정리=박준희·김영주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