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2018년, 남북관계 ‘원칙’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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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 前 외교부 차관

김정은의 연내 답방 유야무야
북측 非禮와 남측 過恭 합작품
核협상장 나오게 한 것은 의미

이산가족 면회소 우선적 開所
1兆 넘는 차관 상환도 요구해야
違約 대충 넘기면 해악 더 키워

한 달 동안 떠들썩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남이 결국 유야무야돼 버렸다. 북측의 비례(非禮)와 우리의 과공(過恭)이 합쳐진 결과다. 사실, 12월 1일 한·미 정상이 대북 제재 견지에 합의하면서 북한의 경제적 수혜 길이 막혔다. 방남 매력이 반감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연내 방남을 미국이 양해했다면서 분위기를 띄웠던 것이다.

대신,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열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위인맞이환영단’을 조직하고 ‘나는 공산당이 좋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김정은 방남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아마 많은 국민은 진심으로 김정은을 환영하긴 어렵지만, 방남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방남 일자 맞추기에 몰두하는 사이 정작 중요한 일들이 잊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 해가 끝나는 시점에 북핵과 남북 관계를 결산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먼저, 비핵화 협상을 줄곧 거부해 오던 김정은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지만 6월 미·북 정상회담 때 한껏 높아졌던 국민의 기대는 후속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실망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북한은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여론조사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하지 않는다 58%, 김정은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이 59%나 나왔다.

둘째, 대북 제재 때문에 남북 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제재와 무관한 이산가족 상봉에서조차 합의 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문제다. 9월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이른 시일 내 개소”하고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과 영상 편지 교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로 했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 8월, 3년 만에 이뤄진 상봉에서도 170가족이 사흘간의 짧은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고령 이산가족들의 생전 소원을 이뤄 주려면 상설면회소를 통한, 제한 없는 상봉이 하루빨리 실현돼야 한다.

또, 북한이 억류 중인 우리 국민 6명을 돌려보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날 때는 억류 미국인 3명을 선선히 돌려보냈으면서 우리 국민은 모른 체한다면 ‘우리민족끼리’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핫라인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방남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가 “북쪽과 전화가 되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라고 했다는데 “정상 간 핫라인 설치” 합의가 지켜졌다면 그런 말이 나오겠는가.

끝으로, 남북 군사 합의는 우리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군사 합의 때문에 서울을 겨냥한 장사정포 정찰용 무인기를 띄울 수 없게 됐고, 서해 5도를 지키는 우리 대포를 배로 김포반도에 실어다가 사격 훈련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합의서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비무장지대의 GP는 남북이 11개씩 철수한 이후 추가 철수 얘기가 없다. 현재 북한 GP는 170개인데 우리 측은 50개 정도로, 심각한 불균형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북한은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탄도미사일 조기경보 레이더 등의 방어용 무기 도입과 한·미 연합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대신 실시하는 우리 공군 단독훈련에 대해 “북·남 군사 분야 합의서의 이행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억지 주장에 대해 우리 군의 단호한 입장 발표가 있어야 한다.

워낙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키니 우리는 북한의 위약(違約)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가 대북 투자를 꺼리는 것은 제재 때문만이 아니라, 태연히 계약을 위반하는 북한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2000∼2008년 사이 식량, 경공업 원자재,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자재·장비를 지원하면서 국민 혈세로 1조 원 이상의 차관을 제공했으나, 북한은 우리의 상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정부는 추가 지원에 앞서 북한이 서명한 차관 합의서를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올해를 돌아보면, 남북대화와 비핵화의 성과를 위해서라도 북한 스스로 약속을 지키게 하는 ‘원칙 있는 남북 관계’ 정립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