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심상정 “선거制 개혁으로 21代 총선서 ‘聯政의 제도화’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선거구제 개편 관련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심 위원장은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선거제도 개편에 합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국회의원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신뢰도 1.8% 짜리 국회 바꿔야
선거제도개혁‘골든 타임’ 아닌
지금 놓쳐선 안될 ‘라스트 타임’

의원정수 늘리는덴 국민이 반감
지역구 줄이는건 의원들이 반대
300명분 예산 동결해 국민 동의
모든 회계 공개하고 상시국회로

비례대표 ‘私薦’ 관행 사라져야
밀실공천 정당에는 票주면 안돼

내달 선거제 마무리뒤 개헌논의
정개특위 협의 속도에 달려있어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로 양당 중심의 오랜 소모적 대결 정치를 끝내고 온건 다당제하에 정책 중심 연정(聯政)이 제도화되는 정초선거(定礎選擧·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선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구조의 대전환이야말로 대다수 국민의 바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의당 소속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의 ‘골든 타임’이 아니라 ‘라스트 타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손학규(바른미래당)·이정미(정의당) 대표의 단식투쟁 끝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5당 원내대표가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만큼,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는 얘기였다. 심 위원장은 진보정당 의원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상임위원회·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심 위원장을 만나 선거제도 개혁 구상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최근 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들어봤다.

―진보정당 의원 최초로 국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그것도 정개특위 위원장입니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정개특위 위원장이 되니 언론 카메라가 의사봉 두드리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더군요. 국회에서 방망이 두드리는 건 일상인데, 비교섭단체 출신이 위원장이 된 것에 큰 의미를 두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고, 진보정당 초창기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줄기차게 싸워 왔습니다. 그동안은 원내 정치인이면서도 원외에서 싸웠는데, 이번엔 정개특위 위원장이라는 자리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다루니 뭔가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 같은 진보정당 출신 정개특위 위원장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성과를 거두겠다는 일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거제도 개편은 거대 정당들의 합의로 이뤄져 왔습니다. 비교섭단체에서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은 게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지난 수년 동안 선거제도 개혁이 논의됐지만 결국 좌초된 이유는 현행 선거제도로 초과 의석을 얻는 기득권 정당의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지금도 거대 양당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번에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야 3당은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특정 정당의 유불리에 구속되지 않고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라는 국민적 명분을 중심으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을 지금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국민 신뢰도가 1.8%밖에 안 되는 국회를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2020년 총선은 오랜 양당 중심 정치구도를 바꾸는 정초선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심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지난해 19대 대통령선거에 정의당 후보로 나섰을 때 이른바 ‘핵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 것과 달리 극도로 말조심을 하는 분위기였다.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은 탓도 있겠지만, 선거제도 개편에 미온적인 거대 양당을 자극하지 않고 반드시 ‘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실제로 그는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양당의 기득권 구도를 깨뜨리겠다는 거냐’는 질문에 “그렇다기보다는 소모적인 대결 정치로 흐르는 양당 체제를 청산하고 다원화된 정당체제를 만들어 연정이 제도화할 수 있도록 정치구조의 대전환을 이루자는 취지”라고 다소 집요하게 설명했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편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야 3당이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이고, 선거제도 개편을 헌법 개정과 연계시킬 태세입니다. 내년 1월까지 관련 입법을 마친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각 당에서 이런저런 해석상 차이가 나오는 건 당내 정치용이라 봅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경우에도 원내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돼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선거제도 개편 합의라는) 결단을 한 것을 저는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이번 주부터 주 4회씩 정개특위 소위를 열어 논의를 진행하고, 그와 동시에 정개특위 위원들이 중심이 돼 각 당 내부 공론화도 추진할 겁니다.”

―민주당과 한국당 지도부는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개별 의원 차원에서는 선거제도 개편 분위기가 무르익은 겁니까.

“현행 승자독식형 선거제도로 큰 특혜를 본 양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는 표심을 상당 부분 왜곡해 왔고, 이런 왜곡이 민심과 동떨어진 국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셀프 개혁’은 쉽지 않습니다. 선거제도라는 건 유권자가 주권을 위임하는 절차와 관련된 것이지 않습니까. 주권자가 요구하고 명령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겁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60% 정도 되고, 국회 개혁에 대한 지지도 압도적인 상황에서 거대 양당도 과거처럼 적당히 뭉개고 가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많은 국민이 국회 개혁은 요구하면서도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선 부정적입니다. 의원 정수를 늘려서라도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현재처럼 300명 범위 내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원들을 만나 보면 ‘그게 되겠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국민께 정직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또 국민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건 국회가 일도 똑바로 안 하면서 사람 수만 늘리냐는 얘기 아닙니까. 그러니 과감한 국회 개혁 방안을 제시하면서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앞에 내놓을 국회 개혁 과제는 어떤 게 있습니까.

“우선 국회가 누리는 특권에 대해 국민의 불신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일단 현재 국회의원 300명이 쓰는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그 범위 안에서 의원 정수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 국민이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는 국회의원 해외 출장 문제나 ‘제 식구 감싸기’식 징계 관행을 바꿔야 하고, 회계 투명성을 높여 국회의원의 모든 회계장부를 공개하는 것도 추진해야 합니다. ‘일하는 국회’ ‘일 잘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상시국회 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의당과 달리 대부분의 정당에서 공직 후보자 선출, 특히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 시 사천(私薦)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례대표를 늘리는 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당 지도부가 비례대표를 사천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의 불신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접근한다면 스웨덴 등 북유럽 일부 국가처럼 비례대표 의원도 국민이 직접 뽑는 ‘개방형 비례대표제’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현실에선 도입이 쉽지 않습니다. 또 헌법상 정당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각 당의 공천 과정까지 법제화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비례대표를 밀실에서 사천하는 정당에는 유권자들이 표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2020년 21대 총선이 양당 체제를 깨는 정초선거가 되길 바란다면서 ‘연정의 제도화’를 언급했습니다. 연정도 그렇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만, 선거제도 개편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와 연결돼야 한다고 봅니까.

“20대 국회 전반기는 정개특위가 아니라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였습니다.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취지였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회가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할 수 있다면, 그게 개헌 논의의 ‘입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둘을 한꺼번에 논의하는 건 실패했으니, 순차적으로 하자는 게 이번 5당 원내대표 합의의 정신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각의 얘기가 있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면서도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고, 남미 국가들은 보통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보통 소선거구제는 책임성을 구현하기에 좋고, 비례대표제는 대표성을 반영하기에 좋은 제도입니다. 우리는 책임성을 구현하는 소선거구제가 소모적인 대결 정치로 이어졌고,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비례성은 취약합니다. 현실 정치가 대변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 민주주의에서 취약한 것과 보완할 게 뭔지를 중심으로 선거제도 개혁 방향을 설계해야 합니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도 정개특위에서 논의합니까.

“그건 정개특위 논의의 속도에 달려 있습니다. 정개특위 활동시한이 6개월 연장될 텐데, 지금 계획대로 내년 1월 안에 선거제도 개혁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개헌 논의가 진행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개헌을 위한 또 다른 기구를 상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선거제도 개편 말고도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손질할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정개특위 제1소위원회에서는 선거제도만 다루고 제2소위원회에서 선거연령 18세로 인하, 선거운동 자유 확대, 지구당 설치 허용, 정치 신인 차별 철폐 등 나머지 개혁 과제를 논의합니다.”

화제를 정의당 내부 문제로 돌렸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원내정당이 됐을 때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18년 정의당의 현주소를 보면 과연 진보정당이 기대만큼 발전했는지 의문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2020년 총선에서 원내 1당에 오르겠다’고도 했습니다만, 현재의 정의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자신과 정의당이 추구하는 정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진보정당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실패한 뒤에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파편이라도 주워 모아 다시 만든 게 정의당입니다. 지난해 대선 전까지 많은 사람이 과연 정의당이 살아남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습니다. ‘대선 끝나면 사라지지 않을까’ ‘민주당 2중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의당의 생존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의당이 힘을 가지면 좋겠다’ ‘정의당이 힘을 가지면 한국 정치가 바뀔 것이다’라는 기대가 정의당 지지율에 반영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 지지와 당력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그런 괴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합니다.”

―이전 주요 선거에서 정의당은 선거 연대 전략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장기적인 발전에 선거 연대 전략이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2020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계속 선거 연대 전략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지난 총선 때 제가 지역구에서 후보 단일화를 안 했는데도 수도권에서 최다 득표를 했습니다. 이제 정의당 사전에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지난 대선 때도 제가 선언했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권에서) 협치 얘기를 하는데, 협치는 정치인 몇 명의 선의로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온건 다당제 기반을 만들고 연정을 제도화하는 정치 구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정책을 매개로 한 연정이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기기 위한 후보 단일화는 이제 정의당 사전에는 없습니다.”

선거 전략의 일대 전환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정의당에 대해 제기되는 질문 중 하나는 국정 운영 능력을 갖고 있느냐입니다. 우리 당내에 유능하고 젊은 정치인이 많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단지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선거제도가 바뀌면 이런 유능한 분들이 나설 수 있습니다. 또 정책 면에서 봐도 지금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 패러다임은 사실 정의당이 추구해온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이 정부에서 그 비전과 취지가 많이 퇴색했지만. 실물경제 운용 능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걸 국민에게 제시할 겁니다.”

내친김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로 질문을 이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런 약속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습니까.

“남북관계 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봅니다. 외교·안보에 대해서는 초당적 협력이 있어야 하고, 정의당은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 드리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민생 경제 분야에서는 좀 다릅니다. 대통령이 내건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 등의 방향에 대해선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 주장과 현실에 큰 괴리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정권을 바꿨는데 내 삶이 뭐가 달라졌는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가치와 비전이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지 못한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지지율도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은 말 그대로 ‘간판’은 있으되 실제로는 형해화한 게 아닌가, 내용이 후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북관계 개선, 평화를 위한 헌신만으로 민생 경제의 한계를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최근 지지율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정책 기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정책 입안자나 집행자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문 대통령이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 대통령이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리더십을 더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 분야를 경제팀에만 맡기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리더십을 발휘해 줘야 한다는 겁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보니 경제팀이 대통령의 패러다임 전환 의지에 맞춘 추진 전략을 준비해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방향을 제시했는데, 경제팀은 과거에 해오던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등 한두 가지 정책을 얹어서 추진하다 보니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최저임금 인상만 돌출돼 집중 공격을 받고, 그게 소득주도 성장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문 대통령이 적어도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치와 종합적인 플랜, 추진 전략 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말로만 ‘소득주도 성장 기조를 계속 갖고 가겠다’고 해선 일종의 ‘걸개그림’밖에 안 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런 패러다임이 실물경제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책기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은 늦더라도 오래 가는 변화를 만들자는 겁니다. 지금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비판하기보다는 ‘걸개그림’만 있고, 실제 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능력 없는 코드 인사 때문에 되는 게 없다면서 청와대 참모 등을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코드 인사라는 비판은 협소한 접근입니다.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입니다. 말하자면 ‘탄핵 동맹’인 겁니다. 그런데 촛불은 민주당만 든 게 아닙니다. 당시 새누리당 일부까지 함께 참여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룬 것 아닙니까. 문재인 정부가 개혁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선 ‘촛불 연정’이 구체화됐어야 한다고 보는데, 처음부터 ‘민주당 정부’로 규정하고 국회에서도 폭넓은 협력 구조를 만들지 못한 게 매우 안타깝습니다.”

―문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지금 양당 체제하에서는 정권을 빼앗기면 바로 그날부터 결사 항전해 정부가 성과를 못 내게 하고, 그렇게 해서 다음에는 정권을 잡겠다는 식의 대결 정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소야대 체제에서 국회의 협력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국회 다수파를 받들든가, 다른 하나는 국회를 패싱하고 통치권을 강화하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대통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회가 패싱되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이런 양당 체제의 극단적 대결 정치하에서는 어떤 정당도 성공하기 어렵고, 민생도 살리기 어렵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가 타격을 받고,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년부터 2차 인상이 이뤄지면 충격이 더 클 거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죽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문제 제기라고 봅니다. 가뜩이나 과다 출점으로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데.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까지 이뤄지니 자영업자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겁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인상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한 과감한 경제민주화 조치가 병행됐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의 경우 편의점에 최저 소득보장제도를 도입해 최저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본사가 물어내게 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갖는 의미는 본사 스스로 출점 제한을 하라는 겁니다. 또 프랜차이즈 업체가 갑질을 하는 관행도 개선하는 식으로 경제민주화 조치가 이뤄져야 최저임금 인상도 용인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심 위원장은 또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 성장의 대표적 정책으로 내세운 게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 성장의 대표적 정책으로 내세우는데, 사실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정책입니다. 소득주도 성장에서 말하는 임금 인상은 시장 내에서 전반적인 임금을 올리고, 그게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겁니다.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임금 인상 정책은 제시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사회정책을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내놓은 건 정확하지 않은 접근입니다.”

―최근 공유 차량 서비스 개시를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택시기사가 분신해 사망에 이르렀는데, 사회적 약자 보호와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공유경제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정부가 그걸 졸속 추진하면서 부작용이 크다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를 말했습니다만, 그러려면 과정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거의 속도전하듯 밀어붙이면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카풀 서비스 논란은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공유경제라고 보고, 플랫폼 업체들의 규제 개혁 요구에 정부가 응답한 결과입니다. 시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플랫폼 업체만 떼돈을 버는 방식의 카풀 사업은 공유경제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공유경제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공정성입니다. 택시기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들은 택시 면허를 따야 하고, 요금 체계도 함부로 못 바꾸고, 합승도 못 합니다. 공공성을 명분으로 이렇게 규제하고 있는데, 카풀 서비스 업체는 이런 게 면제돼 있어요. 이렇게 불공정하고 시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하는 졸속 카풀 제도는 당연히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성공하기 힘듭니다. 또 택시산업이 사양산업이라면, 그들에 대한 대책도 같이 내놔야 합니다. 이제야 사납금제 폐지 얘기가 나오는 건 정부 정책이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됐는지 보여줍니다.”

노동운동 투사에서 정치권으로 투신한 심 위원장이 최근 노동계를 향한 여론의 질타를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했다.

―최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청와대와 여당에서도 공개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계에 대한 비판은 일리 있는 게 있고, 과도하고 부당한 것도 있다고 봅니다. 최근 노조의 폭력 사태, 고용세습 단체협약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폭력은 노사 모두 사용해선 안 됩니다. 또 대기업의 고용세습 단체협약은 청년들의 공정한 취업 기회를 가로막기 때문에, 노조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연장 논란에 대한 책임을 양대 노총에 묻는 것은 책임 전가입니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법제화된 건 2003년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고 해서 당시에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적용하면 기업에 너무 부담이 되자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며 지침으로 법을 무력화해 온 게 15년이 된 겁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은 지금 3개월로 돼 있는데, 재계의 연장 요구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2022년까지 관련 사회적 합의를 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재계의 요구를 갑자기 덥석 받으면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래놓고 내년 1월까지 합의가 안 되면 관련 법을 처리하겠다고 하는 건 공약 후퇴의 책임을 민주노총 등에 전가하는 ‘나쁜 정치’입니다. 정말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적 노사관계와 사회적 합의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인내심을 갖고 노사 합의를 존중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입하면 사회적 합의는 정착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 오남석 정치부 차장 gree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