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문효치는 누구… 스승 서정주에게 물려받은 향토 정서,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

1943년 전북 군산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25전쟁을 전후해 토지개혁으로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다. 그 무렵에 증조부, 조부가 모두 별세하고 부친마저 월북하면서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환경 속에 동국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학사장교(ROTC)로 2년간 교육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임관을 앞두고 신원 조회에 걸려 탈락했다.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군 수사기관의 감시대상이 됐다. 졸업 후 배재중 등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한때 체중이 34㎏까지 줄었다.

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각각 ‘산색’과 ‘바람 앞에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모교와 동덕여대, 대전대 등에서 시 창작을 가르쳤고,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을 거쳐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및 계간지 ‘미네르바’의 대표를 맡고 있다.

시집으로 ‘연기 속에서’(1976), ‘무령왕의 나무새’(1983), ‘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1988), ‘남내리 엽서’(2001), ‘백제시집’(2004) 등이 있다. 젊은 시절 그의 시에는 삶에 대한 허무가 배어 있다. 스승이었던 미당 서정주의 영향으로 향토적 정서를 담은 시에도 주목했으나 ‘연좌제’의 뼈아픈 경험으로 인해 어두운 정서가 스며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시가의 예술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모시키는 데 힘써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상병시문학상(2008), 정지용문학상(2011), 김삿갓문학상(2014) 등을 받았다. 2009년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최근 시집에선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다. 시집 ‘별박이자나방’은 곤충 벌레 등을 탐구한 것이고, ‘모데미풀’은 이름없는 들풀들을 애정 있게 바라본 것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