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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도운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12월 21일(金)
문재인과 김정은의 ‘시한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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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올해 세 번 만난 문재인-김정은
민족적 감성, 전략적 타산 교차
金 답방 무응답, 文 체면 깎여

남북 장병 담배 나눠 피워도
‘진실의 순간’ 오면 총 겨눠야
인간미 아닌 차가운 계산 필요


2018년 한반도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우정’이다. 두 사람은 판문점 평화의집·판문각, 평양에서 만났고 백두산도 함께 올랐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김정은이 젊지만 예의 바르고, 가난한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두 번째 만남은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26일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것이다. 6·12 미·북 정상회담이 무산 위기에 빠지면서 다급해진 김정은이 요청하자 곧바로 달려갔다.

김정은도 문 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다. 문 대통령 앞에서 겸손하게 들리는 말들을 했다.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이 어떻게 보답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했다고 한다.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는 미·북 관계와 관련해 제법 속 깊은 얘기도 나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과 김정은의 우정은 목적이 달라 보인다. 문재인의 우정은 민족적 감성에, 김정은의 그것은 전략적 타산에 가까워 보인다. 2500만 가난한 인민을 수십 년 통치하려는 세습 독재자의 마음속은 5000만 국민 여론을 따라가는 5년 임기 지도자보다는 복잡할 것이다. 청와대는 문재인-김정은 관계가 곧 남북 관계라고 믿는 것 같지만, 북 당국자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볼 것이다. 문 대통령의 체면을 깎은 서울 답방 무반응, 울리지 않는 핫라인.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난 13일 국내 모든 조간신문에 사진 하나가 일제히 실렸다. 한국군 윤명식 대령과 북한군 리종수 상좌가 최근 폐쇄한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를 서로 확인하기 위해 만나는 장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상징하는 이 사진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는 여당 정치인도 있었다. 남북 장병들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서로 담배를 권하고 담소를 나눴다고 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생각났다는 사람도 많았다.

박찬욱 감독이 거장(巨匠) 소리를 듣는 것은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남쪽의 이병헌과 김태우, 북쪽의 송강호와 신하균. 목숨을 구해주고,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사진을 함께 찍고, 김광석의 음악과 인생을 논한다. 아름다운 우정이다. 그러나 ‘진실의 순간’이 닥치자 이병헌은 본능적으로 총을 들어 신하균과 송강호를 쏜다. 그것이 박찬욱이 보는 현실이고 본질이다. 누구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꿈만 꾸면서 살아갈 수 없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우정은 2022년 5월 이전에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엔 김정은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2019년, 김정은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문재인이 아니라 트럼프와의 관계에 집중할 것이다. 김정은-트럼프는 끈끈한 관계를 맺을 만한 조건이 있긴 했다. 김 씨 일가와 트럼프 패밀리는 그럴듯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동북아 정세와 미·북 관계는 그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다. 트럼프는 겉으로 김정은을 치켜세우지만, 속으로는 시간을 끌며 고사(固死)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년 2∼3월이 고비라는 전망이 한·미에서 동시에 나온다. 그때까지는 협상의 관성이 유지될 것이다.

미·북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은 소외돼도 좋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적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지도자다. 문 대통령이 올해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가져왔나.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감소됐나? 서해∼비무장지대(DMZ)∼동해의 경계 태세가 더 강화됐나? 한·미 동맹이 더 단단해졌나? 국민이 더 단결하고 있나?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남은 것은 공영방송의 ‘김정은 위인 칭송’과 광화문 광장을 어지럽히는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는 외침뿐이다.

문 대통령이 내년에도 미·북 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할지 모르겠다. 문 정부의 지렛대는 미·북 양쪽에서 삐걱대고 있다. 미국에 하는 말과 북한에 하는 말이 달랐던 것 같다. 그래도 해보겠다면, 개인 관계보다 국가 관계를, 따뜻한 인간미보다 냉혹한 이해타산을 앞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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