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희의 맛있는 술 이야기>군함 만들려 키운 오크에 술을 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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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는 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군주다. 풍부한 재정을 기반으로 많은 전쟁을 치렀던 왕으로도 유명하다. 1665년 재무장관을 시작으로 27세의 젊은 왕 루이 14세를 보필하며 프랑스를 이끌어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장바티스트 콜베르다. 프랑스를 부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펴면서 해외 식민지 건설과 무역을 위해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상대로 교역이 필요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무역로를 장악했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견제에 맞서기 위해서도 상선과 강한 해군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네덜란드의 함대나 영국의 해군처럼 강한 해군력을 갖지 못했다.

이러한 이웃들을 견제하기 위해 강한 해군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콜베르와 루이 14세는 해군기지와 조선소 건립 목표를 세웠다. 배를 만들기 위한 재료인 목재를 공급받기 위해 임야보존법을 선포하고 1666년부터 코냑 동부의 리무쟁(Limousin) 지역을 포함한 인근에 오크나무 숲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리무쟁은 주로 소를 키우는 축산업이 발달한 곳인데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607년 이후 프랑스의 영토가 된 곳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무쟁의 오크나무 숲은 오늘날 프랑스의 해군력에 기여하기보다는 세계 주류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프렌치 오크통으로 이어져 오면서 프랑스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당시에는 함선을 만드는 재료로 오크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이유는 나무 재질의 특성 때문인데 조밀하게 이루어져 있어 무게는 조금 있지만 내구성이 단단했다. 건조된 상태의 목재도 다루기 쉽고 열을 조금만 가하면 더욱 유연해지면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재질이 좋아 해상전투가 벌어질 때 포탄피격에도 선체의 피해가 적고 파편이 적게 발생해 병사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오크나무가 목재로 사용할 정도로 자라는 데는 지역에 따라 80~12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무는 자라고 세상은 변하다 보니 제 기량을 선보일 나무로 성장했을 때에는 나무가 아닌 철로 배를 만드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렇다고 조상들이 조성해 준 좋은 목재를 그냥 놔두지는 않았다. 온도가 높지 않은 기후에서 성장한 프랑스 오크나무는 결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공기 흐름을 적당히 통제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을 잘 살려 오크통을 만들었다. 크기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 많은 양을 다양한 지역으로 유통하기에도 편리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수출하는 원목과 가공된 목재의 반 정도는 오크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각 나라와 지역을 대표하는 술들은 오크통의 품 안에서 숙성돼 유통되고 있다. 와인과 맥주 같은 발효주뿐만 아니라 위스키부터 브랜디, 럼과 같은 다양한 증류주까지 많은 술이 혜택을 받고 있다. 셰리와인을 담았던 오크통 이외에도 포트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은 인기가 좋아서 비싼 가격에 팔렸었다. 최근에는 증류주 회사에서 오크통을 구입한 뒤 와인 양조장에 임대를 주고 와인을 출하할 때 빈 통을 회수해서 사용하는 등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회사가 오크통을 수입하고 있는데 증류로 만든 쌀소주나 밀소주를 전통 방식인 항아리와 더불어 오크통에도 숙성시키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