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 공급쪽만 부각해왔는데… 이젠 수요관리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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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전문가 좌담

“성장 따져 수요전망치 제시…낭비 요인을 없애자는 의지
국가에너지종합센터 만들어 모든 에너지원 한곳서 관리
전기가 원가보다 낮은 가격… 발전사업자 등 赤字 비정상
전기도매가격연동制 도입을… OECD國중 한국만 채택안해

정확한 사회적 비용 반영되면 電源 믹스가 자연스럽게 조정
‘전기料인상’ 정치화 안타까워… 美처럼 독립위원회서 다뤄야
이통 다양한 요금서비스처럼 한전,선택형 요금制 개발필요
정부안에 에너지원 다양화와 기술의 진보역할 고민 담아야”

[좌담]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
이종수 서울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우리나라 최상위 에너지정책에 해당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3차 에기본)’의 최종 정부안이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3차에 기본의 민간 전문가 집단(워킹그룹)의 권고안을 검토하며 이들이 제시한 내용과 4∼5차례의 외부 토론회 및 공청회를 통한 의견 수렴을 통해 정부안을 마련할 뜻을 밝혔다. 정부의 ‘탈(脫)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인해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이는 정치적 쟁점으로도 부각되는 상황이다. 문화일보는 강력한 수요관리 정책,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4차 산업혁명시대의 에너지 수급 및 새로운 산업의 발현, 갈등을 빚고 있는 원전 건설 및 가동 문제 등에 대해 이번 3차 에기본 워킹그룹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측면을 짚어봤다.


―이번 3차 에기본에서는 에너지 수요관리 문제가 매우 비중 있게 다뤄졌다.

△강승진 교수(이하 강) = 이전 에기본에서도 수요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원전 비중 등 다른 이슈에 가려 수요관리가 부각되지 않았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수요 전망이 높다 낮다는 논란이 많았다. (에너지 정책이) 항상 공급 쪽만 부각이 됐는데 수요가 같이 가지 않으면 균형을 잃는다. 에너지전환 정책을 우리보다 먼저 추진한 나라들에서는 수요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간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상당수는 에너지 소비량이 줄고 있는데, 이는 소비구조가 달라진 데 기인하고, 강력한 수요 관리 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 구조가 바뀌면서 생활패턴,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 또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대명제 때문에 이제 수요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3차 에기본 권고안에선 처음으로 수요전망 수치를 제시했다. 이 역시 조심스러웠다. 경제성장과 산업구조에 에너지 수요가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多)소비 제조업 비중이 높다. 그래서 전망 과정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가, 산업연구원 전문가를 모시고 경제성장을 따져서 전망치를 내놓았다. 수송, 가정, 산업 분야 전반에서 에너지 낭비 요인을 없애고 정책적으로 종합해 에너지 수요 관리 정책을 강화해보자고 결론 내렸다. ‘물 샐틈 없는 에너지 수요관리 실행’이란 것은 에너지 가격을 올리거나 규제를 통해 수요를 억제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


―세제 개선 등 제도적 뒷받침이 수요관리 측면에서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유승훈 교수(이하 유) = 원칙을 세우고자 했다. 에너지 가격에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자. 세금이 붙어야 내부화하고 생산비용과 환경 등 외부비용의 합으로 사회적 비용이 구성돼야 한다. 전기 같은 경우 생산비용보다 낮게 책정되니 소비의 왜곡이 발생한다. 바나나 재배농가가 급증하고 비트코인 채굴이 성행하는 일이 발생한다. 환경 비용 등을 세금을 통해 내부화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전기가 원가보다 낮은 가격, 지난 2년간 유연탄, 유가 등은 2배가 오르나 전기요금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한국전력공사, 발전사업자 등이 적자에 시달리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가격(요금)에 원가 수준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기도매가격연동제를 도입하자고 권고하고 싶다. 한전이 발전사업자에 전기를 사오는 비용만큼은 전기요금에 연동한다면 가격신호를 줄 수 있다. OECD 국가에서 도매가격연동제를 채택 안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이종수 교수(이하 이) = 사회적 비용을 반영해 정당한 원가를 만들자는 한 축이 있고, 권고안에 나와 있지만 에너지원별 정확한 상대 가격이 만들어져야 하는 축이 있다. 정확한 사회적 비용이 반영되면 전원(電源)믹스가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밖에 없다. 원자력 관련한 안전 우려나, 석탄 미세먼지 우려 등은 사회적 비용으로 반영된다면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2040년까지) 25∼40%는 시장에서 사회적 비용이 반영되면 이 정도 달성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워킹그룹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 이를 통해 외부비용평가위원회를 만들자고 권고했다. 에너지믹스도 이 안에서 자연스럽게 합의될 것으로 생각된다.

△강 = (전기)가격(요금)체제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최상위 에너지 정책인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 마련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내년에 확정될 정부안에는 강력한 수요관리 방안과 함께 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정책이 담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전기요금은 이제 정치적인 문제다. 그만큼 민감하다. 에너지전환에 따르는 비용을 가격으로 매기는 것이 전기요금 인상인데 정치권에서도 부담을 느낀다. 산업용 경부하 전기요금 및 주택용 누진제 개편 등에서 나오는 전기요금 문제에 학계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강 = 요금 거버넌스가 정치화된 것은 안타깝다. 미국처럼 에너지 요금이나 규제를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을 권고했다.

△유 = 전기요금은 별도의 규제당국에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름철에 한시적 요금 완화 정책을 발표했는데 산업부나 한전이 발표하지 않고 정치권에서 발표하는 것도 이상하다. 정치가 개입하면서 가격의 왜곡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 정치적 개입이 비탄력적 가격의 전부는 아니다. 가격 수준은 유지하면서도 가격제도를 바꿔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고 본다. 다른 문제들도 많다. 선택권이 없는 현행 요금제도 등은 선택형 요금제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복지 개념이 에너지 가격에 너무 많이 들어와 있다. 100kwh 이하 소비자, 농사용, 다자녀 공제 등이 가격 왜곡의 원인이기도 하다. 2차 에기본이 지나고 나서 에너지 바우처 등이 시도됐는데, 이런 복지 요소를 바우처 형태로 바꿔 소득이전 수단으로 활용한 경험이 있다. 복지 요소를 가격에서 빼야 한다.


―요금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통신과 결합 등 에너지 서비스가 다양화할 수 있는 방안이 권고안에 제시돼 있었다.

△강 = 한전이 독점 공기업이라도 소비자 욕구에 대한 파악을 해야 한다. 소비패턴 연구, 소비자가 전기를 쓰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해 그걸 바탕으로 통신회사가 다양한 요금제를 만들면 된다. 주택용은 누진제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어 논란이 된 측면이 있다. 누진제도 있고 계시별요금제 등 소비자가 선택하게 되면 불만이 줄어들지 않겠나? 물론 스마트 계량기(AMI)가 보급되어야 하는데 보급이 시작됐으니 보편화되는 시점에 맞춰서 다양해지길 바란다.

△이 = AMI 보급이 2018년까지였다. 제 생각엔 선택형 요금제가 나오면 오히려 보급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원전에 대한 부분이 권고안에 언급되지 않았다.

△강 = 전통 에너지산업의 고도화 표현이 많이 나왔다. 2040년이라고 하더라도 원전 화석연료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것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걸러져 내용이 간략히 표현됐다. 발전믹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빠져있다 보니 전체 에너지 믹스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번 권고안에는 빠져있다.

△이 = 발전믹스, 연료 비중에 대해서는 에기본을 바라보는 철학이 달랐다. 에기본에서 명확한 숫자를 제시하다 보니 하위 계획과의 정합성 문제가 발생해 (이번 권고안은) 정책의 철학성과 방향성 위주로 담았다. 수요전망치라는 것은 기준 수요가 있고 목표 수요가 어느 정도 나올 것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목표 수요를 목표로 한다기보다 ‘정책을 실현했을 때’ 목표만큼 나올 것이다라는 의미다. 목표치는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다.

△유 = 원전 비중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2차 에기본에서 원전 건설 여부를 적시하며 범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확정된 숫자가 수요와 비교하면 나온다. 그러나 이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시하는 것이 맞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에너지 분야가 중요한 산업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강 =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개별 기술들은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나 이를 결합한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등 기술을 융합하는 분야에선 에너지 최적화가 이뤄진다.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 4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일어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18세기 말의 산업혁명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일어난 130년 후에 이름을 붙였다. 에기본 권고안에 4차 산업혁명 관련 내용이 담긴 의미는 정보가 공개되고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고, 첫 번째 제안으로 국가 에너지종합정보센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전력뿐 아니라 모든 에너지원의 통계, 호환성이 중요한데 한 기관에서 관리해보자는 의미다. 센터가(모든 정보를) 하나로 묶어 관리하면 실무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허브로 존재하고 각 기관이 정보보호법을 피해 갈 수 있는 방향에서 접근해보면 된다. 두 번째는 에너지 플랫폼 구축인데, 이는 전기, 열, 가스 같은 에너지 생산 소비 데이터를 수집·분석·가공하는 플랫폼까지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통계를 기반으로 플랫폼을 구축해 스마트 시스템으로 실증해보자는 것이다. 다만 이는 에너지 시장의 왜곡이 해결됨을 전제해야 한다. 정확하게 수준이 정의되고 정상화돼야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온다.

전기 등 에너지 소매 부분은 경쟁 도입이 가능한데 에너지 공기업 혹은 에너지 영역에서 경쟁이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부분은 식별해볼 필요가 있다. 경쟁 가능한 부분은 공개하고 불가능한 부분은 공공성을 강조해야 한다. 계통, 송변전, 원전은 공공성이 필요하며 신재생에너지도 여전히 공적 영역 안에서 활성화해야 한다. 다만 전기 판매부분은 개방해도 상관없다고 본다.

△유 = 유럽은 공기업들이 메이저기업이다. 스마트에너지시스템 구축을 위해 다양한 부분의 수직·수평 통합을 하면서 관리하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다. 우리는 공기업 간의 진출이 어렵고 민간은 가격 때문에 들어오질 못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게 가야 한다.


―3차 에기본과 관련해 여러 좋은 내용이 오간 듯하다. 마지막으로 정리해달라.

△강 = 권고안을 기초로 정부가 다양한 안을 만들 텐데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관련해 이해당사자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이견을 조정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클 것이다. 정부도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달라고 워킹그룹에 주문했는데 당장 실행하진 못하더라도 별도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고, (특정이슈를) 공개해 민간사업자 등이 가격 산업구조·시장구조 등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길 희망한다.

△유 = 10개월이 넘는 긴 시간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에너지 믹스를 40년까지 가져갈 것인지를 다루지 못한 듯하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서 방향성을 담아 마무리되길 바라는 기대가 있다. (워킹그룹 논의에선)전기차 1000만 대가 제시됐는데, (권고안이 나온 이후) 수소차 활성화 얘기도 나왔다. 정부가 방향을 고민해야 하고 언론이나 국민도 이를 기다려줘야 한다.

△이 = 진영 논리라든지 이데올로기에 따라 에너지 정책을 두고 싸우는 것은 굉장히 소모적이다. 정부가 정부안을 수립할 때 핵심 키워드는 혁신성장을 위한 산업경쟁력이어야 한다. 에너지를 인프라로 한 우리나라 전체 산업이 당연히 들어가야 하겠지만 에너지 산업 자체를 성장동력으로 잡을 기회도 이번 정부안 확정 과정에서 잡아야 한다. 권고안에는 통합 시스템 구축, 4차 산업혁명 등 토양을 갖추기 위한 제안이 들어가 있다. (향후 정부안에서는)에너지 믹스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기술의 (진보) 역할 등이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이 담겨야 한다.

정리 = 박정민 경제산업부 기자 bohe00@munhwa.com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문화일보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