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靑 ‘취재원 색출’과 민주주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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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DGIST 석좌교수 커뮤니케이션학

정부 정책이 조기에 언론에 누설됐다는 이유로 관련 공직자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감찰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의 수립 과정 자체가 국민 전체의 공적 소유물 아닌가. 공직자라도 그가 소유하고 있는 휴대전화에 담긴 내용은 기본적으로 사생활 보호 대상 아닌가.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보원을 보호할 책임을 갖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가늠자들이다.

지난 9월 5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고위 관리가 쓴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세력의 일부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익명으로 실었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충동적이고, 적대적이며, 옹졸하기 짝이 없고, 효과적이지 못한 대통령 리더십에 적잖이 좌절하고 있지만, 미국의 민주적인 제도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나마 ‘몇몇 어른(adults)’이 정부를 지키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당연히 트럼프는 노발대발했고, 글쓴이를 색출하라고 참모들에게 재촉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한마디로 우리처럼 고위 관리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할 수도, 언론기관에 저자를 밝히라고 명령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원내대표 폴 라이언은 그런 조사를 할 수 있는 의회의 역할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이 사태를 접한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사자가 상처를 입으면 매우 위험한 동물로 변한다. 트럼프가 바로 그렇게 상처 입은 동물이 됐다”고 했다. 지금 전 세계가 위험한 동물로 변한 트럼프를 보고 있지 않은가.

일부 정책의 사전 누설에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사후 누설까지 겹치면서 청와대가 입은 상처가 휴대전화 수거를 넘어 어디로 향할지 심히 걱정된다. 하물며 우리의 대통령 측근에 성숙한 어른이 있는가.

우리가 다 기억하는 것처럼, 박근혜의 몰락은 치졸한 편협함에서 출발했다. 아버지의 후광이 자신이 꿰어찬 권력의 대부분임을 잊은 채, 집권 2년이 가까워지면서 다양성을 감내할 능력을 갖춘 성숙한 민주시민의 역량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오직 한쪽만의 편협된 시각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확연해졌다. 뒤이어 2016년 4·13 총선을 앞둔 이른바 친박(親朴)들의 넌더리 나는 공천 공작은 그런 편협함의 극치였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편협함에 치를 떤 촛불 시민의 열망 때문에 탄생했다. 그런데 지금, 적폐청산의 이름 아래, 언제나 ‘정권의 충견’ 검찰, 감찰, 감사를 동원한 무차별 솎아내기 또한 민주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치졸한 편협함의 산물로 보인다.

문 정부 집권 2년이 다가오면서 박근혜의 얼굴이 다시 어른거린다. 청와대 담에 물이 새기 시작했고, 수석들에 밀쳐진 허수아비 내각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안타깝게도 그럴수록 치졸한 단속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수립 과정 전체가 국민의 것이다. 그것이 공론화의 과정을 더 많이 거칠수록 정파를 넘어 국민의 아이디어와 공감을 담는다. 박근혜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자유한국당을 보면서 작금의 청와대 행태에서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면, 그것은 촛불 시민에 대한 반역이다.

권력이 언론의 취재원을 색출하려는 어떤 시도든 그것은 명백하게 언론 자유에 대한 침해다. 공직자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 자체가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민주주의 파괴다. 제발 박근혜의 편협함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