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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12월 28일(金)
“선입견 없이 세상 마주보니 100년을 살아도 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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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폭력과 강간, 아들의 자살 등 고난의 100년을 살아온 마틸데는 “완벽한 삶은 없으며 행복이 당연한 것도 아니다”라는 인생관을 가졌다. 자신의 인생사 고백이 혹여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봐 ‘마틸데’라는 가명을 썼고 뒷모습만 촬영했다. 위 사진은 책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 프리츠, 아그네스 등 100세 노인들.(왼쪽부터)

- 백 살이 되어보니 / 케르스틴 슈바이크회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책세상

유럽 각국 노인 10명 인터뷰
직업·인생 궤적 서로 다르지만
열정·자유 등 6가지 가치 강조

“커다란 행복보다 날마다 최선
고통 겪을지라도 삶은 선물”
담담하고 객관적인 자세 보여


지구 행성에서 한 세기를 버텨온 사람, 100세 노인에 대해선 신비로움 같은 게 느껴진다.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100세를 넘긴 노인들은 뭔가 긴 호흡의, 차원이 다른, 몸과 마음을 다루는 비밀스러운 지혜가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은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의 100세 노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일 출신 여성으로 작가이자 기자인 책의 저자는 10명의 100세인을 인터뷰해 책을 썼다. 이들 노인은 대개 세계 1차 대전 중에 태어나 2차 대전을 30대에 겪고, 물질 문명뿐 아니라 가치관과 문화가 전도돼 가는 격변기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다.

100세라는 나이를 제외하면 농부, 엔지니어, 화가, 탐험가, 사업가, 사제 등 직업도 다르고 가치관과 살아온 삶의 궤적도 다양하다. 여성이 7명으로 다수다. 이들에게 어떤 공통된 삶의 지혜가 있는 것일까.


100세를 넘긴 사람은 일생이 순탄했으니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1915년 독일 콘스탄츠에서 태어난 마틸데는 두 살 때 아버지가 1차 대전에서 죽고, 의붓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으며, 13세에 남자 동급생에게 강간을 당했다. 어머니의 강요로 원치 않는 결혼을 했으며, 더구나 혼외관계로 낳은 막내아들이 15세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살한 사건은 그녀의 인생에서 최악의 비극이었다…. 100년간 고된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행복할 권리’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커다란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돼.” “대부분의 사람은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듣기 싫어해. 하지만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은 법이지.”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 매일매일.”

100세의 인생도 사랑과 성, 이별, 고통, 상실 등 일반적인 삶의 경험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다만 특정한 윤리나 이상에 매달려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담담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1910년생 독일 뮌헨 출신의 안네 마리는 남편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먼저 그 원인을 찾는다. 그녀는 “우리의 경우는 너무 단조로운 것이 문제였어. 우리는 공존한다기보다는 병존했거든”이라고 분석하고 스스로 변화한다. 서로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데 확신이 있다면, 속 빈 강정 같은 정절이 무슨 대수인가라는 태도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유럽인이어서인지 등장하는 100세인 대개 살아오면서 자신이나 배우자의 혼외 문제를 겪었지만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저자는 100세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여섯 가지 가치를 걸러냈다. 첫 번째가 열정이다. 성적 열정도 중요하지만, 일생 동안 우리 안에서 타올라 우리로 하여금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게 하는 열정을 말한다. 이런 열정은 직업적 소명일 수도 있고 가족, 친구나 배우자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역시 사랑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맞고 서로를 보완한다고 해도, 파트너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의 100세인들은 존경과 존중이 전제돼야 사랑이 유지되며, 사랑 없이는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우정이 세 번째다. 1913년 스위스 출신의 아그네스는 “친구가 가족보다 나아”라는 걸 보여주는 100세인이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친구는 선택할 수 있다. 대개 100세인의 기나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가족보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생활이 등장하는 요즘, 친구는 새로운 가족이다.

저자는 자유와 용기를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꼽는다. 저자가 말하는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절제와 훈련이다. 100세인들은 아침에 체조를 빼먹지 않는 등 규칙적인 하루의 리듬을 중시하고, 담배를 피우더라도 일주일에 한 갑으로 철저히 제한하는 등 절제력에서 남다른 면모를 보인다. 또 100세인들은 삶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다시금 용기를 내 삶의 고삐를 이끌어가는 공통점을 보인다. 다시 시작하는 용기,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이다. 이들은 ‘탄식’을 하지 않는다. 우정을 중시했던 아그네스도 “스스로 돕지 않으면 아무도 도울 수 없다”고 말한다. 용기와 삶을 향한 의욕은 난관에 부딪혀도 냉소적으로 되지 않고 낙관적이게 도와준다. 1914년생 독일 출신 남성 프리츠의 “삶은 계속되는 거야. 계속되어야 하지. 언제나 새로운 용기를 내야 해”는 그런 태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책에 나오는 100세인들의 공통된 핵심적 가치는 마지막 여섯 번째인 ‘선입견 없는 태도’다. 등장하는 100세인들은 관용적이고 열려 있으며 호기심이 많다. 선입견 없는 사람은 인생에서 훨씬 많은 놀라움과 자극, 통찰, 새로운 친구를 얻으며 새로운 사랑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다.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의심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팔짱을 낀 채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보다 충만한 삶을 살 확률이 높다.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고 그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며, 때로 인생에 운명의 장난이 개입할지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마틸데의 “저녁이 되면 밤이 되는 거야. 아무도 막을 수 없어”라는 말처럼, 100세인들은 남은 인생의 시간에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았다. 또 2차 대전의 전쟁통을 누비며 살아 남았던 1914년생 폴란드 출신 후베르트 신부의 “난 무척 행운아였어. 전쟁은 내게서 시간만 앗아갔을 뿐 힘을 앗아가지는 않았지”처럼, 고난의 시간에서도 행복을 건져 올린다. 464쪽, 1만68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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