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남 위하는게 자신 위하는 일… 기부에 익숙하면 행복해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이클 리어던 조셉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이 18일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목장에서 복지사업 기금 마련을 위해 육성 중인 경주마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으며 운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조셉 이사장은 “제일 가난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만큼 해주고 가난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베푼다는 가톨릭 정신의 원칙을 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아산상 大賞’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마이클 리어던 조셉 이사장

새해 맞아 거창한 계획 세우면
중도 포기해 실망…‘스트레스’

알코올 중독자가 술 끊을 때도
‘오늘만 마시지 말자’ 마음먹듯
‘오늘 하루만 하자’는 생각으로
하루 한 사람만 도와도 좋은 일

어려운 이들 한 분씩 밥 주다가
양로원도, 요양원도 만들어져

조직 커져 살펴야 할 것 많지만
일은 믿을 사람 맡기고, 믿어줘
자연파괴·부정행위 금지‘원칙’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북로 성이시돌센터 입구에 들어서면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곳의 경우 자세히 보면 의미는 더 남다르다. 같이 붙은 사진 때문이다. 평생을 이국땅인 한국의 가난한 자에게 헌신하고 지난 4월 선종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한국명 임피제) 신부다. 성이시돌센터는 그래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갈등과 반목에 휩싸여 있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울림이 큰 메시지로도 읽힌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는 1954년 임피제 신부가 제주도에 부임한 뒤 도민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든 방직공장과 목장, 사료공장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지금은 축산사업과 사업 수익으로 운영하는 요양원, 호스피스, 어린이집, 청소년 수련시설 등의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펼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지난달에는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수여하는 아산상 대상을 받았다. 센터 입구에 새겨진 또 다른 글귀도 오랜 역사와 교훈을 담고 있다. “한 마리 돼지로부터”라는 글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수백 명이 함께 일하는 기관으로 성장했지만, 최초 시작은 임피제 신부의 고국인 아일랜드에서 보낸 새끼 밴 암퇘지 한 마리였다. 임 신부가 암퇘지 새끼를 저소득 주민에게 나눠줬고, 이후 양과 젖소·말을 키우고 16만5289㎡ 규모의 목장으로 확대하면서 제주도에 근대 목축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2003년부터는 경주마 목장을 만들어 말 육성사업을 하고 있다. 수익은 각종 사회복지사업을 통해 모두 제주도민에게 베풀고 있다.

협회는 시작을 알렸던 ‘양돈’사업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양돈사업을 하는 많은 제주도민과 경쟁하지 말자는 임피제 신부의 뜻 때문이다. 협회에서 양돈기술을 배워 자립한 이들이 현재 제주 양돈사업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협회는 지난 4월 임피제 신부의 선종 이후, 그를 옆에서 보좌하던 마이클 리어던 조셉(한국명 이어던) 신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조셉 신부 역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내며 남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지난 18일 제주에서 만난 조셉 신부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지만 능숙한 한국어로 농담까지 던지는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였다. 맥그린치 신부의 나눔과 베품의 정신을 이어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정도 많고 술도 많이 마시는 아일랜드 사람과 비슷하다. 한국이 좋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다양한 기관을 운영하는 이사장으로서 경영 원칙도 분명했다. 연말을 맞아 활발해지고 있는 기부와 봉사의 의미부터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대개 연말쯤이 돼야 곳곳에서 봉사하고 기부하는 분위기가 활발해지는데요.

“인간으로서 성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생각 없이 살면 안 되니까요. 지금이 연말이니까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기부나 봉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행동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오히려 불편할 거예요. 매년 연말까지 기다려 큰일을 하기보다 평소 생활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달 안으로 5000만 원을 기부하겠다는 식보다는 일 년 내내 조금씩 기부하면 익숙해져서 본인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사실 남을 위해 해주는 건 자기한테 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매일 기도하고 미사하는데 어떤 때는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귀찮고 재미없다는 느낌이 들 때죠. 그래도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면 스스로 좋은 사람 됐구나 하고 깨닫고, 기도를 통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나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누면 얻는 게 많아요.”

―매일 조금씩 봉사하고 기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많은 것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요즘 배가 나와서 다이어트도 하고 단식도 하는데, 단식할 때는 배가 완전히 들어가지만 그만두니까 다시 배가 나와요. 생활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꺼번에 하는 것보다 중간중간 매일같이 생활화하면 건강하게 사는 것과 마찬가지죠. 보통 장례식 때 보면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뭔가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런 거죠. 정말 부모님한테 잘했고 진짜 사랑한 가정은 조용합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만 술 취해서 시끄럽죠. 결국 마지막에 후회합니다. 후회하지 않고 성찰하면서 살자는 말입니다. 한국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특별한 날이 있고, 성탄절도 있어 그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연말은 성찰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면 그다음 해에는 다 잊어버리죠. 일 년 내내 어떻게 잘 살 것인지 생각하고, 연말에 마지막으로 또 좋은 일 하고. 누군가와 화해하고 연락 안 했던 사람들한테 연락하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이나 연말이나 이럴 때 그날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성찰해야 합니다.”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새해를 맞아 너무 큰 계획을 가지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또 안 되니까 실망하고 포기하죠. 금연하고 금주하겠다고 하고 며칠 지나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힘들면 자기가 실망하고 못하게 되니까, 자기 자신한테 스트레스를 주는 겁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죠. 너무 큰 부담이 되면 다들 포기합니다. 신부 중에서도 알코올 중독자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알코올 중독 모임에서 사람들한테 죽을 때까지 술 못 마신다고 그러니 오히려 스트레스받아서 술을 마시게 된다더군요.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면 달라집니다. 오늘만 마시지 않게 해주세요. 단 하루만. 매일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키기 어렵지만, 오늘 하루는 가능합니다. 또 중간에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오늘 하루는 남을 위해서 배려해야겠다.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겠다. 이런 식으로 해서 오늘 하루 술 안 마시고 잘 넘겼다고 하고 생각하면 이뤄 내는 거죠.”

구체적으로 조셉 신부는 평상시 ‘주위에 할머니 한 분이라도 도와드리라’는 말을 주변에 자주 한다고 했다.

“하루 한 사람, 한 사람만 도와줘도 아주 좋은 일이 됩니다. 이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갈 데가 없어서 양로원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살 수 있게끔 요양원을 만들었습니다.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사무실 옆에 또 사무실을 붙이고, 또다시 사무실을 잇다 보니 지금은 꽤 커진 요양원이 됐죠. 시작은 여기에 오는, 옆에 있는 할머니 한 분한테 밥 한 그릇 반찬 하나 주는 식으로 시작하면 좋다는 의미입니다. 요양원처럼 꼭 크게 커지지 않아도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조셉 신부는 이날 협회의 여러 기관을 소개하던 중 만난 성이시돌센터 카페 근무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연말 저녁 약속을 잡았다. 협회는 봉사와 베품이 주된 활동인 기관이지만, 봉사 재원 마련을 위한 목장과 사료업체는 물론 요양원, 어린이집 등에서 많은 직원을 고용하며 월급을 주는 회사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조셉 신부도 협회의 살림을 이끌어가는 CEO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기관이 아주 많은데, 한꺼번에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웃음) 어차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또 믿어야 하는 거죠. 5개 정도의 여러 수도회 부서에서 운영합니다. 그래도 예산이나 결산할 때 다 보고 잘되고 있는지 매년 확인합니다. 세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면서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복잡해서 구체적인 사항까지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잘 보는 사람이 하니까요. 또 우리는 일반 회사처럼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회사가 아닌 거죠. 예를 들어 작년에 1억 원 벌었으면 올해 1억5000만 원 벌어야 하고 이런 게 없습니다. 유지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목적 사업들, 필요한 사람들한테 도움만 줄 수 있으면 됩니다. 아마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골치가 꽤 아플 겁니다.”

―여러 기관을 운영하면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될 수 있으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기관 사람들한테 제대로 해주고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지켜보니 이곳이 직영관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임피제 신부도 그러셨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아무도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중간에 실수는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사람을 믿습니다. 너무 많이 믿으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으면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결국 골치 아픈 건 사람이고 가장 좋은 점도 사람입니다. 사람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 모두 관계 없이는 살지 못하죠. 관계 안에서도 오해하고 힘들 수 있고 미워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지만 그래도 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제일 가난한 사람한테 할 수 있는 만큼 해주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베푼다는 가톨릭 정신입니다. 천주교에서 시작했지만 특별히 천주교 신자라고 해서 잘해주는 건 없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분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도 많습니다. 목장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종교를 전혀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곳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조셉 신부를 비롯해 한국 사람이 가장 많지만, 캄보디아, 짐바브웨, 네팔에서 온 사람도 있다. 경주마 목장에서 말을 조련하는 기술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얼마 전에는 예멘의 난민 한 명도 이곳에 와서 일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이 함께해서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힘들 때는 서로 위로해 준다는 게 조셉 신부의 설명이다.

“난민 친구는 지난주에 예멘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이 폭탄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난민 친구의 종교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슬람교인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우리가 해줄 것이 없을까 해서, 아버지와 동생을 위한 미사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호주, 네팔, 캄보디아 등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 같이 기도했습니다. 서로의 종교가 이슬람, 힌두교, 개신교 등 다양한데도요. 이런 다양한 모습이 좋습니다. ‘우리끼리 우리만’ 강조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목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해야 합니다. 항상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목장 사제관에서 인터뷰에 응한 마이클 리어던 조셉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은 충만한 삶의 조건으로 공감을 꼽았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는 자세부터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그런 열린 마음 때문일까? 성이시돌협회의 목장 주변엔 항상 사람들로 넘친다. 무료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가톨릭 성지이기도 하지만, 관광명소로도 알려지면서 목장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이가 많다. 특히 이시돌목장 내의 테쉬폰(곡선 형태의 텐트 모양과 같이 합판을 말아 지붕과 벽체의 틀을 만들어 고정한 후 틀에 억새, 시멘트 등을 덧발라 만든 건축물)은 인기 명소가 됐다. 젊은이들은 물론 웨딩 촬영장소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날도 많은 관광객이 목장을 찾아 자연을 즐겼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조금 더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으니 성이시돌 브랜드를 더 키우자는 제안과 목소리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사업적 수익, 비즈니스를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모델을 쉽게 만들 수 있을 텐데요.

“직원보다 외부 사람이 많이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것도 갈등이긴 합니다. 옆에 식당이 없어서 식당 몇 개 지으면 아마 돈 좀 벌 수 있을 거라는 거죠. 우리 땅이니까 할 수는 있는데, 그런데 돈만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 현재의 분위기가 깨질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오고는 있지만, 보통의 관광지처럼 돼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넓은 땅을 임대할 수도 있겠으나 돈보다는 여기 분위기나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실 주변에서 많이들 찾아옵니다. ‘임 신부님이 대단하시니까, 임 신부님이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자기들 욕심에 하는 얘기들입니다. 이시돌이 너무 잘돼서 자기와 이런 사업을 하면 더 잘될 거다. 도와주고 싶다 해서 보면 다들 욕심이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죠. 그래서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돈 많이 버는 것보다 같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협회 내부에서도 ‘더 성장할 수 있는데 왜 그렇지 않냐’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조셉 신부는 ‘네가 더 열심히 일하면 더 잘될 거다’라고 말한다. 윗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열심히 하면 더 잘될 수밖에 없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설명한다.

“사실 이런 것들을 판단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협회 안에는 그런 갈등이 있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할 건지 아니면 지금 하는 것을 유지할 것인지. 교회도 마찬가지죠. 개신교든 천주교든 교회 발전과 건물을 짓기 위해 많이 신경 쓸 수 있지만 이건 하느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 잘 자리, 머물 자리 없이 지내셨죠. 교회는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곳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계속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중심으로 하지 않습니다. 임 신부님도 처음에는 이런 모습의 목장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을 데려와서 놓을 자리가 없으니까 땅 사고 돼지 키우고 하면서 확장하게 된 거죠. 여기는 교육 목장으로 하자. 교육받고 나가서 자립할 수 있도록 사람들한테 선진농업 기술을 가르치자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이곳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조셉 신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걱정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한국 사회 현안으로 옮아갔다.

―다양한 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요.

“8∼9년 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당시에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협회에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노조 문제인데, 이 친구들이 사람을 미워하는 게 골치 아팠지만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잘 해결돼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답답한 점은 물론 제가 부족한 점도 있지만, 위에 있는 사람만으로는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결국 세상 바뀌는 것은 위에서 부터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바뀌는 겁니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젊은 층에선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서로에게 불만도 많고 미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좀 편해질까요.

“밑바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니까. 미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한테 예수님은 7번까지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용서를 너무 부담스러워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힘든 사람은 바로 본인입니다. 노조 했던 그 친구 예를 보면,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당시 목장장을 미워했는데, 그 사람이 나간 뒤에 그 미움이 저와 협회에 돌아왔습니다. 이 친구는 결국 미움으로 가정과 친구 등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미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연결이 되고, 집에 가서 가정 분위기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용서하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면서 용서하지 못하면 본인이 가장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전에 신학생을 지도했을 때 나이 든 학생이 있었는데 제게 ‘아, 신부님 진짜 미워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전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 오케이 됐어요, 상관없어요. 다들 날 좋아할 수 없잖아. 계속 미워하세요. 그런데 그러면 당신만 힘들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용서해야 하는 법은 따로 없죠. 그래서 저는 상처를 인정합니다. 먼저 상처를 받아들이면 용서가 쉬워집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 젊은 사람들 관계가 너무 스마트폰으로만 연결되는 점도 문제입니다. 스마트폰으로만 이야기하면 관계가 줄어들어요.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합니다. 저도 한국말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앞에서 같이하면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고, 같이 있으면 몸짓과 눈빛을 통해서 이야기하게 되는데요. 스마트폰으로 하면 그게 안 되고, 외로워집니다. 진짜 사람이 많을 땐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안 좋은 얘기를 하면 더욱 그렇고요.”

―좀 더 충만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감(동감)입니다. 영어 단어로 compassion인데, 의미가 맞을까 모르겠네요. 같이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불쌍히 여겨준다는 뜻인데 자기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겁니다. 누구와 대화하면, 상대방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노조와 갈등이 있었을 때도 처음 합의했을 때는 민주노총 쪽에서 우리와 합의해주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싸우고 나서 받으면 기분이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는데요. 저는 노조가 욕을 할 때도 이 사람의 입장이 맞는지 생각해보고, 마음으로 이해해주려고 했습니다. 모든 관계 안에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해줘야 합니다. 보통의 노사 문제를 보면 직원들과 회사가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합니다. 양쪽을 이해하게 되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의 입장을 이해해주면 됩니다. 아까 그 예멘 친구도 영어만 조금 하고 한국말을 못해서 그런지 아버지와 동생이 사망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도 이슬람이라 받지 말자는 말도 있었고, 같이 있으면 말도 통하지 않아 힘들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건이 일어나 직원들이 다 나와서 같이 기도하면서 그 후로 그 친구는 물론 이곳 직원들이 달라졌습니다. 동감과 공감입니다. 직원들에게 아버지와 동생이 죽었는데 이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상처만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감하면서도 완전히 빠지지 않고 나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합니다. 노조 문제도 그런 식으로 해서 해결하게 됐습니다. 양보하고 했던 게 아니라 공감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합니다.”

―세대갈등도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과제인데요.

“20년 전 서울에 와서 들어보니까 학년별로 차이가 크더군요. 한국의 깡패도 아는 사람이 몇 명 있는데 형·동생 따지는 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아일랜드 깡패들은 그냥 싸우는데 한국 안에는 이런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남자들이 화장품 쓰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그래도 문화가 다르다는 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상대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감과 비슷한데 남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계속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젊은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면 됩니다. 친구들과 조카 중에 두 명이 동성연애자예요. 부모님들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만 나도 나이 먹어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옛날에는 이런 이야기를 못했겠지만 결국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이죠. 상대방을 인정하면 행복할 수 있지만,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문화 차이나 생각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를 보면 아시겠죠. 저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청년들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래 살긴 했지만 제 DNA에는 한국 문화가 없으니까요. 또 한국 문화가 엄청나게 빨리 바뀌고 있습니다. 산업화도 빨리했고요.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생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맞습니다 해도 뒤에서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상대방한테도 그럴 수 있다고 얘기해도, 내가 잃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고, 그리고 부모님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순 있지만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거죠. 세대 간에도 공감지수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조카들도 보면 짧은 치마를 입던데요. 옛날에 봤으면 동생한테 뭐라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고 ‘아, 이게 아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셉 신부의 깊은 신앙과 철학은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쌓아온 듯했다. 공감에 대한 강조는 ‘다름’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그는 “그런 점에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문화 차이로 인해 힘들어하는데 그들도 자신들의 문화와 한국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해결된다”고 했다. 사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1977년 더블린 아일랜드 국립대 수의학과 졸업 △1978년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수의사 △1985년 메이누스 아일랜드 성패트릭 주교대학 신학교 졸업 △1986년 사제 서품 △1987년 서울 신림10동 도시 빈민 사목 △1988년 서울대교구 신정동 성당 보좌신부 △1997년 로마 그레고리오 신학교 선교학 졸업 △현재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인터뷰 = 이용권 기자 (사회부)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