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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8년 12월 31일(月)
새해 맞아 대문에 붙였던 歲畵…조선시대 행운·건강 빌던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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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지해신장(돼지) 대한제국 130.5×67㎝,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화공들 연말엔 그림 제작 진땀
돼지는 다산·부 상징 주요소재


다사다난이라 했던가. 하지만 언제고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한 해라도 있었던가. 무사태평을 꿈꾸고 희원하나 세상사는 언제나 시끄럽고 번잡한 것이 인지상정이니 늘 이뤄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해가 바뀌면 병이나 사고를 예방하고 행운과 건강을 꿈꾸고 빌어보는 것이 힘없는 장삼이사들의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 세시풍속의 하나로 해가 바뀌면 이런 소망을 담은 그림을 그려 대문에 내붙였다. 세화(歲畵)라고 하는 것으로 주로 대문에 붙였기 때문에 문화(門畵) 또는 문배(門排)라고도 부른다.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에 붙이는 입춘방은 요즘도 간혹 보아 알고 있지만, 중국의 연화(年畵)는 알아도 세화는 금시초문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서기 전부터 중국에서 집에 들어오는 악귀를 막고자 문을 지키는 장수, 즉 문지기를 그려 붙이던 풍습은 명·청 연간에 연화로 정착했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기부터 궁중을 중심으로 시작돼 권문세가들의 풍습이었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민간에까지 퍼져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연말이 되면 도화서 화원과 화공들은 12월 20일까지 세화를 그려 진상했고, 이를 임금은 왕족과 삼정승 육판서에게 내렸다. 초기에는 소수에게 주어 60장 정도가 필요했으나 점차 늘어나 중종 연간(1506~1544)에는 신하 한 명당 20장씩 내려줄 만큼 많은 양이 필요해 연간 약 400장이 필요했다. 따라서 화원에서는 세화 제작을 위해 별도로 화공 중에 오직 이 일만 임시로 하는 자비대령화원까지 뽑아 해가 바뀌기 약 3개월 전부터 매달려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방 관아에서는 소속된 화원들이 그려 목사나 현감들이 선물했고, 민간에서는 광통교 인근의 지물포나 시장에서 사 서로에게 연하장처럼 보냈고 이를 받아 대문에 내다 붙였다. 특히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를 보면 “여러 관가와 척리의 문짝에도 모두 이것들을 붙이고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떠 갔다”는 글에 이어 “설날 도화서에서 세화의 표본을 그려 내걸면 시골 환쟁이들이 몰려와 본떠 갔다”고 했을 만큼 새해 첫날 수복강령을 비는 간절함은 고하가 없었다. 이렇게 수요가 늘자 대량생산을 위해 판화로 찍기도 하고, 판에 윤곽선을 새겨 찍은 후 그 속을 색칠하는 ‘가채판화’도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손으로 그린 회화작품이 역시 격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임금으로부터 직접 세화를 하사받는 경우 가문의 영광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고려 말 문신 이색(1328~1396), 조선 초 성현(1439~1504), 조선 후기 양주익(1722~1802) 등은 이를 글로 남겼다. 하지만 종이와 물감이 귀했던 만큼 세화 진상의 범위를 제한 또는 폐지하자는 상소가 올라올 만큼 과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록상 숙종 이후 잠시 뜸했다. 태조가 붕어한 태종 때는 국상 중이니 3년 동안 세화 제작을 금하기도 했지만 정조대에 오면 양주익, 채제공(1720~1799)이 세화를 받았다는 기록이 다시 나온다. 1867년 고종 때 편찬한 육전조례를 보면 연말에 자비대령화원 30장, 본서 화원 20장씩 세화를 진상하라고 규정해 이런 전통을 꾸준히 이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대궐에는 도교에 나오는 문신들을 사람 키만큼 크게 그려 붙였다. 또 세화에는 액막이 신인 울루, 신장, 처용, 선녀, 산신, 수성노인 등 인물이, 세종 때는 사농공상의 평민들의 연중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도 그려졌고 조선 후기에는 ‘모란병’ ‘금강산도’ ‘관동팔경도’ 또는 글씨를 하사했다. 또 닭, 호랑이, 용, 사자나 개는 물론 삼재가 든 이는 매를 구해 붙였다. 돼지 하면 탐욕과 게으름이 떠오르지만 실은 다산과 부 그리고 행운과 복의 상징이라 당연히 세화의 주요 소재였다. 불교에서는 우주의 본질인 시간과 공간을 관장하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공사가 분명하고 풍상으로 인한 세상 모든 것을 창조력과 책임감을 갖고 주인처럼 두루 살피는 것으로 돼 있다. 또 한자로 돈(豚)은 우리 말로 ‘돈’ 즉 재물을 의미한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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