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내가 오늘 은행 안털면 뭘 줄거냐?… 이것이 美향한 北의 태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이 미국 워싱턴DC 헤리티지재단 사무실에서 지난해 12월 18일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어떤 원칙이 무너지면 연관된 다른 원칙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을 가져와 한·미 동맹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수많은 위법 저지른 범죄자와
경찰이 테이블에 마주앉은 셈
가해자에 보상하면 안되는데
한국은 北변호사처럼 비쳐져

김정은 신년사도 美양보 주장
非核化 교착 책임을 떠넘기기
폼페이오·비건과 대화 안하고
트럼프와 직접 담판만을 원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이뤄질 경우 그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오로지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들에 대한 것이 담겨야만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비핵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브루스 클링너(58)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동북아시아담당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공으로 평가받기 위한 조건과 관련해 “2018년 3번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을 보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약속한 문장들은 애매하게 돼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20년 이상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에서 근무했다. 북한 핵위기 당시 1993년부터 1994년까지 CIA 한국지부장으로 근무했고,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CIA 한국 담당 부국장을 맡아 한·미 동맹 및 한국 정치와 경제, 북한 핵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다. 지난해 초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낙마한 후 주한 미국 대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18일 워싱턴DC에 위치한 헤리티지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메일을 통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 등에 대한 견해도 추가로 들어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평가해 주십시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와 관련해서 진정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상황을 표현하자면 세 가지 디버전스(Divergence·분화)가 존재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디버전스가 있고, 미국과 한국 사이에 디버전스가 존재한다. 또 어떤 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 디버전스가 있다. 보다시피 분명한 것은 미국과 북한 간 차이는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우리(미국과 북한)는 아직도 비핵화에 대한 공통된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심지어 한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북한은 기존 협상에서 합의된 것과 같이 핵 미사일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대북 제재하에서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안돼, 규정을 위반한 것은 바로 당신이야. 그러니 당신이 좀 더 (비핵화와 관련된 조치를) 해야 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바라보는 비핵화라는 의미는 매우 전형적인 것이다. 11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서 요구하는 대로 북한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라는 정의를 국제적인 군비 통제(Arms Control)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 무기를 전부 없앤다면 자기들도 무기를 전부 없애겠다는 식이다. 비핵화에 대한 정의가 아주 멀리 벌어져 있다.”

―한·미 간 불일치(divergences)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 디버전스가 있다는 것은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한 점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는 모든 미국 관리는 ‘미소 버전’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강경한 메시지다. ‘그만해’ ‘지금 너무나 빨리, 너무 멀리 왔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 비핵화를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긴장 관계가 되면서 미국과 한국이 조용하게 (대북 정책을 놓고) 논쟁을 지속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한 상황을 2018년 11월에 우리는 목격했다. 내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국 관리들은 ‘당신이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와 이야기하는 모든 미국 관리는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 어떠한 시각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 관리들에게 ‘그렇지 않다. 11월 상황을 보지 않았느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익명의 미국 관료들의 한국에 대한 언급은 공적인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즉 미소 버전으로 이야기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최근에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들도 모든 미국인이 북한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는 점, 비핵화를 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찬성한다는 점을 목격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정부 인사나 국회의원 등은 북한을 변호하면서 미국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1월이나 2월에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북한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사를 만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고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도 취소했다. 우리는 북한과 같은 방에 앉지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자리에 앉기는 빠른 측면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비핵화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것처럼 일방적인 양보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종전 선언이나 평화 협정 서명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혹시 트럼프 대통령이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서명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이 원하는 사항은 북한과 실무 및 고위급 협상을 할 때까지, 그리고 북한이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보일 때까지 정상회담을 어느 정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비핵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한반도는 어디인가에 대한 정의의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북한이 어떠한 혜택을 받아갈지에 대한 입장 차도 줄여야 한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처럼 설익은 방식으로 마무리가 되면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세안 정상회담 당시 핵시설 공개와 핵사찰 허용, 핵폐기 일정을 요구했는데.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항상 하는 일은 미국과 한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다. 북한은 ‘그래. 우리가 11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했다. 미국 금융 시스템 안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미국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치 범죄자가 ‘나의 행동은 사회 탓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북한은 항상 ‘문제는 불신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북한은 결의안 위반이 문제가 아니고, 협박도 문제가 아니고, 공격도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2010년에 한국군 46명이 사망한 천안함 폭침도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불신 때문,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올바르게 처신하기 전에 미국이나 세계의 모든 다른 국가가 북한에 혜택을 주는 조치를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경찰관과 범죄자가 앉아 있는 상황과 같다. 미국은 경찰관처럼 북한에 ‘당신의 범죄 기록을 살펴봤는데 아주 많은 위반 기록과 폭력 행위, 협박 행위들이 있더군. 그런데 당신이 새로운 삶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이 어떠한 변화를 보여주려고 하는지, 어떠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겠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당신의 과거 행동에 부과됐던 처벌 중 일부를 기꺼이 경감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북한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내가 오늘 은행을 털지 않는다면 나에게 무슨 보상을 줄 거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법이 작동하는 상황이 아니다. 불행히도 현재 한국은 북한의 옆에 앉아서 북한의 변호사처럼 말하는 것으로 미국에 비치고 있다. ‘나는 내 고객이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혜택부터 받아야만 한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북한이 왜 비핵화를 위한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고 보나요.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나 비건 특별대표 수준에서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양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 것은 수십 년에 걸친 긴 상황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국제 협약들에 서명했지만 모조리 어겼다. 또 북한은 그다음에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합의들에 서명했지만 역시 지키지 않았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핵무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어떠한 실질적 의사를 보여준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서 평가하면.

“신년사는 미국이 외교적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더 양보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이행을 맹세했지만, 12월에 다른 핵 보유국(미국)의 무기 포기를 먼저 요구하는 수십 년 된 (비핵화) 정의를 다시 주장했다. 이것은 북한 체제의 특징이다. 김 위원장은 외교적 교착 상태를 남 탓으로 돌리고, (협상에) 무거운 조건을 부과했다. 그리고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간단히 말하면 김 위원장은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으나 아주 날카로운 가시도 함께 내민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북한의 긴 요구 조건―한·미 연합 훈련 중단, 미국 전략 자산 한반도 전개 금지, 한국의 미국 무기 구입 중단, 국제 제재 완화, 종전 협정의 평화 협정 대체―을 반복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요구해온 핵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자료와 같은 어떠한 새로운 비핵화 조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비핵화 성공을 이뤄내고 싶으면 2차 정상회담에 나오되 합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이 “하나의 축에 있는 두 개의 바퀴 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빨리 가면 그냥 원을 그리게 될 뿐이다”며 “한국이 비핵화에 적절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너무 진전시켜서는 안 된다”고 남북 관계 속도 조절을 당부하고 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에는 어떤 결과물이 있어야 합니까.

“우선 정상회담 전에 실질적인 비핵화가 있어야 한다. 나는 전통적인 보텀업(상향식) 방식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것을 뒤집고 자신을 협상 대표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치러진)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성공적인 결과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합의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합의했던 군축협정과 같아야 한다. 나는 소련과 합의했던 군축협정 방식을 옹호해왔다. 합의문은 매우 길고, 정교하게 구성됐다. 모든 사람이 해야만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합의문에는 강력한 검증 방식도 담고 있다. 온갖 항목들에 대한 매우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며, 고통스럽기까지 한 협상이었다. 그런데 2018년 이뤄진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을 포함해서 우리가 북한과 만들어낸 모든 합의문은 매우 짧다. 또 그 합의문들은 애매해서 양측이 모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문제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완벽한 합의문이나 의미 있는 비핵화 체계가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 합의에는 비핵화에 대한 정의, 핵무기 및 시설의 위치, 검증 방식 등이 담겨야 한다. 북한이 유엔 결의문을 준수하는 조치를 취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북한이 과거 비핵화 맹세를 이행할지, 북한이 강력한 검증 방식도 받아들일지도 확인해야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데이터 제공을 약속할지도 확인해야 한다.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에 길면서 정교한 합의문이나 합의 사항들이 나와야 한다.”

―한국 정부가 북한 변호인이라는 인식은 과장된 표현 아닌가요.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적인 전임자들과 닮았다. 햇볕 정책이나 햇볕 정책의 변주곡을 옹호한다. 프런트 로딩(초기 이행조치)으로 양보와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각종 위반을 범했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결국 올바르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과 한국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내 생각에 미국과 한국의 시각차는 경찰과 사회복지사가 범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같다. 한국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범죄자에게 직업을 주고, 아파트를 주고, 돈을 주면, 그 사람이 바르게 생활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은 북한에 국제적인 행동 규범이나 유엔 결의안하에서 바르게 행동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공은 북한 행동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코트가 아니라 북한의 코트에 놓여 있다. 초기 조치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 관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개 ‘종전선언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왜 (미국은) 서명을 하려 하지 않나. 보다시피 선언안은 매우 짧다. 상징적인 것이고 정치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의미가 없는 것이다’며 종전 선언을 옹호한다. 그러면 좋다. 바꿔서 말해보자. 종전선언이 의미가 없고, 상징적이며, 아무런 실질적 영향이 없다면 왜 사인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한국이 종전선언을 통해 이루려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종전선언에 서명하는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무엇인가. 만약 종전선언이 북한이 위협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과 북한 중에 어느 쪽이 1953년(한국전쟁 종전) 이후에 더 많이 상대방을 공격하고 살해했는가. 그것은 북한이다. 따라서 적대 정책에 대한 우려를 달래줄 태도와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은 북한이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행동을 바꿀까. 어떻게 종이 한 장(종전선언)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해 공격하지 않겠다고 문서를 포함해 20번이 넘게 한 맹세보다 북한의 행동에 더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전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종전선언에 어떠한 유용성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종전선언에 잠재적인 부정적 파장들이 있다고 본다. 파장 중 하나는 제재 이행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적 결의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적이 없는데 제재를 어떻게 부과할 수 있는가. 다른 하나는 안보 측면의 문제다. 한국에서는 ‘종전선언에 서명하면서 어떻게 평화 협정에 서명을 안 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이 벌어질 것이다. 평화협정은 유엔 사령부에 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평화가 존재하는데 핵 억제력을 보장해주는 군대가 왜 여전히 한반도에 주둔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한국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안보적인 측면에서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어떤 원칙이 무너지면 연관된 다른 원칙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이 존재한다. 우리(미국)가 (한·미) 동맹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그들(한국)은 옹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의미가 있으려면 합의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나요.

“2018년에 3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정상회담 합의문들을 살펴보면 합의문 내용은 너무나 일방적이다. 합의문들에는 한국이 북한에 약속한 것들이 긴 항목들로 들어가 있다. 반면 한국이 원하는 내용이나, 북한에 행동 변화를 바라는 것은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에 한 문단 들어가 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2007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있는 경제 조항의 부활을 약속하고 있다. 2007년 합의문에는 한국이 북한에 약속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관련한 항목이 9개 문단으로 들어가 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있는 한 문단은 수십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9개 문단의 경제적 약속을 되살린 것이다. 2018년 3번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을 보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약속한 문장들이 애매하게 돼 있다. 비핵화 내용이 2005년 9월 6자 회담 공동선언보다도 약하다. 물론 북한이 얻고 싶어 하는 많은 것을 3번의 공동선언 합의문에 넣으려고 할 때 한국이 ‘좋다’라고 말했을 수 있다. 이제는 한국이 뒤로 기대 앉을(협상의 주도권을 가질) 차례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오로지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들에 대한 것이 담겨야만 한다. 이번에는 애매한 문장을 넘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비핵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이 유엔 결의안하에서 요구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수용한다는 내용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관여정책에 대해 (미국과) 매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햇볕정책을 선호하는데, 이것은 등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거북이를 설득해서 머리를 내놓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에서는 (남북 또는 미·북) 불신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원인은 불신이 아니다. 원인은 북한의 행동이다. 한국은 습관적으로 북한 사람을 공격하거나 살해하지 않는다. 한국은 버릇처럼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북한의 대남 선전 방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북한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모욕적인 단어를 사용해 심각한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언급을 했었다. 북한은 한국 정부에 북한에 비판적인 단체들이 거리에서 반(反)북 시위를 하는 것을 막으라고 요구한다. 이 시위는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행동이다. 북한은 또 한국 정부에 한국 언론들이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 것을 금지시키라고 요구한다. 북한의 행동은 북한 체제의 본성을 아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북한과 미국 간 불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북한 간 불신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북한 행동의 문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가해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 북한 체제에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는 북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요구가 담긴 미국(제재)과 국제법, 유엔 결의안에 집중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미국은 1953년 한국전쟁 종전 이후 북한을 공격한 적이 없다. 반면 북한이 미국을 공격한 적이 있다. (북한은 미 정찰함 푸에블로호 납치, 미 해군 정찰기 격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을 저지른 바 있다.)

―올해 미국과 한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어떤 점에 주력해야 할까요.

“지난 25년간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와서 낙관적인 면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동안 8개의 합의문이 있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물론 그러한 실패가 우리가 9번째 시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꺼이 관여와 외교, 협상, 대화할 의향이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이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이 진행이 안 되거나 과거 대화에 진행이 없었던 것이 미국의 잘못이었던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북한은 나와의 만남을 거부하기도 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점은 북한이 대화하려고 하면 미국은 기꺼이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 강조해야 할 점은 우리가 진전을 이루려면 협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장짜리 합의문이나 문서, 아주 형편없이 쓰인 문서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합의문을 만들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억제력과 방어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조언을 한다면.

“나는 한국이 비핵화에 적절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너무 진전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축 하나에 두 개의 바퀴가 있는데 두 개 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너무 빨리 가면 그냥 원을 그리게 될 뿐이다. 관여와 압박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더 강조할 수는 없다. 두 개가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만 한다. 한국은 스스로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라고 이야기한다. 한국 관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한국은 전달자군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아니요. 한국은 전달자가 아니라 중재자예요. 우리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죠’라고 말한다. 중재자라는 것은 동맹국에 대해 좋은 입장이 아니다. 한쪽(미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고, 지금도 한국을 지키기 위해 2만8000명의 아들과 딸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다른 한쪽(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한국 병사를 숨지게 하고, 2015년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로 2명의 한국 병사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지속적으로 한국에 협박을 가해왔다. 심지어 지금도 협박 중이다. 동맹과 적 사이의 중간 지점은 한국이 있기에 좋은 자리가 아니다. 한국은 둘 사이를 중재하기보다 (대북 제재)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는, 북한에 대해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편에 서야 한다. 한국은 북한의 옹호자로 행동하기보다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보다 협력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인터뷰(글·사진) = 김석 워싱턴 특파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