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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07일(月)
액운 막듯 눈뜨고 자는 물고기…뒤주·문갑 자물통에 자주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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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철, 어해 10곡병,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담채, 158×372.3㎝,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게는 옆걸음 때문에 ‘횡행거사’
임금 앞서도 강직한 선비 상징


요즘 우리나라가 온통 수산시장이 된 것 같다. 갑자기 사람이 미꾸라지가 되더니, 이제 쏘가리에 이어 꼴뚜기가, 그리고 망둥이가 나타났다. 이렇게 어황이 좋으면 다음엔 숭어가 뛸 차례인가. 아무튼 요즘 뭍에서 물고기가 만선을 이룬다. 공익적 제보건 내부 고발이건 의인 아니면 개인적 일탈, 자신의 잘못 덮기라 하더라도 전후 맥락이나 진실 여부와 공익성 같은 본질은 안중에 없이 사람을 물고기, 생선에 비유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 물고기는 남다른 의미의 생물로 ‘생명’과 ‘건강’의 상징체다. 그래서 많은 속담에 나오지만 그림으로 그려진 것도 많다. 이렇게 민물이건 바다건 모든 물속에 사는 생물을 그린 그림을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어해도(魚蟹圖)라 불렀다. 그림으로 그려진 물고기는 그 종류도 다양해 잉어, 쏘가리, 붕어, 송사리 등 물고기 외에 게, 새우, 거북, 가재, 조개류, 문어, 오징어, 홍어, 전복, 자라, 소라 등이 있다. 수염 달린 잉어는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협곡을 뛰어넘어 용이 된다는 고사 때문에 ‘등용’(登龍)해 벼슬하는 ‘입신양명’의 의미로 그려졌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이라 적는데 ‘궁궐’의 궐과 같은 발음이라 급제해서 궐에 들어가는 장원급제나 관직에 나간다는 뜻이다. 낚시에 꿰인 쏘가리는 벼슬자리를 꽉 물고 놓치지 않는다. 맡아 놓았다는 표현이다.

메기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뛰어오르는 습성 탓에 ‘출세’를 뜻했다. 물고기가 세 마리가 있는 ‘삼여도’(三餘圖)는 사람에게 하루 중에는 ‘저녁’, 일 년 중에는 ‘겨울’, 일생에선 ‘노년’이 가장 여유로우니 그 시간만 활용해도, 즉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시간은 차고 넘친다는 의미였다. 물고기 아홉 마리가 있는 그림은 ‘구여도’(九如圖)다. 시경에 나오는 송축의 의미를 지닌 시에서 따와 십장생이 아닌 구장생에 ‘같다’는 뜻의 여(如)자를 붙여 장수와 번영을 기원했다. 또 중국의 과거 전시의 합격자 발표행사를 전로(傳)라 하는 점에 착안해 게와 갈대를 그려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전려도’(傳려圖)를 그렸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다. 그래서 나쁜 일이나 액운이 드는 것을 지키고 막기 위한 벽사의 의미로도 많이 그렸다. 뒤주나 문갑의 자물통이 물고기 모양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간을 넣어두던 다락의 문에도 같은 이유로 물고기 그림을 붙였다. 절의 물고기 모양 풍경이나 목어, 목탁도 물고기의 이런 속성을 빌려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눈 감지 말고 항상 부지런히 자신을 닦으라는 뜻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또 알을 많이 낳아 다산을, 특히 배가 부른 물고기는 풍요를 상징했다. 그래서 여성들의 삼작노리개에 쌍으로 물고기 장식을 달았다.

▲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거북은 장수 또는 하늘과 땅의 조화를, 복어는 발음대로 복을, 붕어와 조개는 다산을, 새우는 해로(海老)의 발음을 빌려 백년해로나 매사 순조롭게 풀려나가기를, 소라는 학식과 웅변을, 숭어는 많은 자식을 의미했다. 가재 또는 새우와 대합을 함께 그리면 하합상하(蝦蛤相賀)라 해서 ‘화합’을 의미한다. 게는 청렴을 상징해 팔자도(八字圖) 중 청렴할 렴(廉)자의 한 획으로 그렸다. 단단한 게딱지를 의미하는 갑옷 갑(鉀)을 으뜸 갑(甲)으로 새겨 벼루나 그림 속 게는 으뜸의 뜻을 지녔다. 게 두 마리(二甲)에 갈대(蘆)가 그려진 이갑전려(二甲傳려)는 소과와 대과 두 시험 모두 급제하라는 뜻이다. 게는 단단한 껍데기와 옆걸음 때문에 ‘횡행거사’라고도 한다. 임금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옆으로 걷고 언제나 바른말을 하는 강직한 선비란 뜻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 말 잘 듣는 ‘개’ 같은 수하가 아니라 ‘게’같이 직언하는 신하가 아닐까. 추한 입으로 더 이상 귀하고 뜻깊은 상징체인 물고기를 욕보이지 말라.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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