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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08일(火)
名畵속 하나님의 모습… ‘카리스마형’ 노인 or ‘소박·평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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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그림은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 오른쪽은 보스의 3면 제단화 ‘열락의 정원’으로 왼쪽 날개 부분의 에덴동산에 하나님이 있다.

■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⑤ 신의 얼굴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선
건장한 체격에 흰머리와 수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 창조’
성서를 토대로 남성모습 설정

보스 ‘열락의 정원’선 정반대
다소 왜소한 체격에 착한 인상
종교 권력의 부패 심했던 시대
성서 본래의 뜻 찾자는 메시지

신과 인간사이 경계에 선 ‘예수’
카라바조, 그림통해 부활 의심
불경한 해석 탓 당대평가 유보
20세기 들어 ‘천재성’ 재조명


삶은 해답 없는 문제풀이다. 답을 구하기 위한 공식만 있을 뿐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삶의 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삶의 종착지인 죽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초기작 ‘홍수’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를 시작하는 것’이라는 역설을 토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에 인간은 능력 밖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이성으로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그게 신이다. 신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게 됐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언젠가는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 타당하게 보인다.

신성이 가장 강한 신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올린다. 서양 문명의 한 축인 헤브라이즘의 핵심인 유일신이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실체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구약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서술하고 있다. 타지 않는 불꽃과 소리로. 결국 빛과 공기의 진동으로 신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 덕분이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그려낸 하나님이다.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카리스마 넘치는 하나님이다. 신비스러운 모습의 노인으로 흰머리에 수염을 휘날리는 건장한 체격이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해답은 성서에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니.’(구약 창세기 1장)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복제해 만들어낸 존재는 남자인 아담이다. 그러니까 서양인이 생각한 신은 남성인 셈이다. 동양 여러 나라에서 세상 창조의 신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켈란젤로가 본 신의 모습은 지성이었다.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게 지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완벽한 비례로 조율된 인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동조하는 주장이 20세기 말에 나와 주목을 끌었다. 1990년 미국 세인트존스 메디컬센터의 프랭크 린 메시버거 박사는 미켈란젤로의 그림 속 하나님이 그려진 배경 형태가 인간 두개골 단면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이성의 시대로 불리는 르네상스 정신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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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그림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캔버스에 유채, 195×140㎝, 1601년, 런던내셔널갤러리 소장. 오른쪽은 카라바조, ‘성 토마의 불신’, 캔버스에 유채, 146×107㎝, 1601~1602년, 포츠담 신궁전 소장.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화가로 불리는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년경∼1516)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순진무구한 성자 이미지다. 1500년경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3면 제단화 ‘열락의 정원’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이다.

‘열락의 정원’은 세 가지 이야기를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세 개의 화면으로 그린 것이다. 하나님이 등장하는 부분은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에덴동산이다. 천지창조 중 마지막 날 에피소드를 담았다. 최초 인류인 아담의 창조 장면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젊은 모습으로 나온다. 갈색 톤의 머리는 숱이 적고 수염도 풍성하지 않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격의 하나님에게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 평범하고 착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얼굴은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고 하관이 빈약한 인상이다. 이성, 지혜, 예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감성과 순진함 같은 모습만 읽힌다. 표정에서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세상 창조’라는 위대한 과업으로 지친 것은 아닌지. 인성이 짙게 스며든 하나님이다. 그래서 보스를 이단 종교 숭배자로 해석하려는 경향도 있다. 보스는 왜 이런 이미지의 신을 창조했을까.

보스는 쾌락과 욕망으로 타락한 당시 사회상에 비춰 인간의 미래가 염세적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종교 권력의 부패가 도를 넘어섰던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죽은 다음 해(1517년) 종교개혁이 시작됐으니까. 마르틴 루터는 ‘원래의 성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시대적 당위성을 내세워 종교개혁을 이끌 수 있었다.

보스 역시 인간이 구원받는 길은 자각을 통해 원래의 성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도덕적 자극을 주려고 이런 그림을 그렸다. 하나님을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설정한 것도 성서 본래의 뜻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의 인간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이 그림의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존재는 예수다. 서양 예술에서 예수는 언제나 캐스팅 1순위 주인공이다. 신성이 지배했던 중세에는 신의 존재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르네상스 이후에는 역사적 인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많은 예술가는 예수를 통해 자신이 해석한 신의 모습을 창출하곤 했다.

예수가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십자가 처형 후 부활에 근거한다. 그래서 예수 부활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영감을 자극하는 훌륭한 주제다. 바로크 시대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1610)도 예수 부활 에피소드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서에서 영감받은 모티브에 사실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파격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따라서 카라바조의 성서 주제 작품은 주관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 상황 연출 때문에 상당히 불경스러운 작품으로 종종 시비에 휘말리곤 했다.

카라바조는 예수 부활을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601년과 1606년에 그린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다.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의 한 여인숙에서 제자 두 명과 함께 식사하는 상황을 그렸다. 자신이 부활한 예수라고 밝히는 장면인데, 여기에는 현실적 시각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카라바조가 예수로 대변되는 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 속 흰 두건을 쓰고 예수 옆에 서 있는 인물을 통해서다. 남자는 예수 부활 스토리가 믿기지 않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냐. 지금 그런 헛소리를 믿으라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 죽을 지경인 얼굴이다.

카라바조의 현실적 시각은 ‘성 토마의 불신’이라는 작품에서 정점을 보인다. 예수 처형 후 추종자 검거에 나선 로마 총독부의 눈을 피해 숨어 있던 열두 제자 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장면이다.

제자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알려진 토마는 그만큼 의심이 많았다. 다른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를 믿었지만, 토마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수는 옆구리 상처까지 보여주며 설득하려 했지만 토마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결국엔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고야 마는 불손함을 보이는 장면이다.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의 심정이겠지.

카라바조의 그림 속 토마의 얼굴은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옆의 두 제자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의 상식적 판단이 짙게 묻어나는 순간이다. 토마의 손에 상흔을 맡긴 예수의 얼굴에서도 인성은 읽힌다. 부활한 신의 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치 ‘아프니까 조심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신에 대한 도발적이고 불경스러운 해석 때문인지 카라바조는 죽음과 함께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시대의 흐름을 바꿨지만 그의 작품은 3백여 년 동안 평가가 유보된 채 흘러왔다. 20세기 들어서야 카라바조의 진가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천재성은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다.

▲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카라바조와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는 예수를 아예 역사적 인물로 해석하는 태도다. 거리의 여자에서 예수의 제자가 된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라투르는 막달레나가 예수의 부인임을 암시하는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기독교 입장으로는 이단 숭배인 셈이다. 이런 위험한 발상 탓에 그 역시 죽음과 함께 미술사에서 폐기된 역사가 되고 말았다. 지난 세기 중반에야 재평가가 이뤄졌지만, 아직도 명쾌한 해석을 내리기가 주저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막달레나는 예수의 십자가 형장에 있었고 임종을 지켰으며, 부활을 처음 확인한 성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르네상스 이후 많은 화가가 주제로 삼는 예수 십자가 처형 에피소드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깊은 슬픔 속에 오열하는 모습으로.

그런데 라투르는 임신한 막달레나를 그리고 있다. 대표작 ‘촛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라는 제목으로 여러 점을 남겼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이 임신한 막달레나다. 그러면 복중 태아는 누구일까. 그녀가 바라보는 탁자 위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기물들이 놓여 있다. 성서와 십자가, 채찍 그리고 죽음과 연관돼 보이는 해골 등이 그렇다. 그리고 자신을 소멸해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의미는 예수의 희생과 맞닿아 있다. 이런 은유를 품은 그림 속 막달레나의 아기가 예수와 관련돼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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