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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09일(水)
“농사 지어보니 더 절박한 농촌… 도움되고 싶어 5급공무원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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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3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고향 뒤편에 개간한 밭에서 농촌 생활과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귀향 3년째 이동필 前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돌아오겠다’고 부모님께 약속
장관 퇴임한 바로 다음날 낙향
다시 공무원 되려니 꽤 낯설어

이웃 덕에 매년 매출 늘었지만
생산한 농산물 유통 쉽지 않아
농민들 대부분‘밭떼기’로 넘겨

초등교 졸업생 4 ~ 5명뿐인데
‘지방소멸’위기의식 없어 깜짝
지역공동체 회복·삶의 질 위해
농촌에 문화시설 많아졌으면…


마을 뒤편 야트막한 야산 아래 밭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작업복 차림에 등산화를 신고 일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농부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밭(1500㎡)을 빙 둘러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개간한 곳이다. 인근에는 호두나무와 아로니아도 새로 심었다. 귀향 3년째를 맞은 이동필(64)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모습이다.

악수를 청하니 손은 다소 거칠었고 얼굴은 검게 그을렸다. 박근혜 정부 초대 장관 임명 이후 3년 6개월의 최장수 농식품부 장관(2013년 3월 11일~2016년 9월 4일)을 지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촌부가 다 됐다.

지난 3일 그의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에서 이 전 장관을 만났다. 인터뷰는 4일 안동시 풍산읍 안동농협 농산물 공판장에서도 이뤄지는 등 이틀간 진행됐다. 4일은 그가 시골농부에서 경북도 공무원으로 임용돼 처음 출근한 날이기도 했다.

“장관직과 연구원을 지내는 등 40여 년 동안 공부와 행정을 하다가 낙향해 텃밭을 일구다 다시 공무원으로 되돌아가니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무척 낯서네요.”

그는 이렇게 운을 떼고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5급·시간제 공무원) 임용에 대해 말을 꺼냈다. “실제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 살아보니 현장 상황이 너무 절박해요. 특히 고령화와 지방 소멸 문제에 대해 지역 농협과 지방자치단체가 중장기 비전을 갖고 진정성 있게 노력해야 하는데…, 고민 끝에 ‘훈수’라도 하기 위해 응모했어요. 공무원들이 잔소리로 듣고 흘려버릴지 모르지만요.”

그는 지난해 11월 초 경북도 경력공채에 지원해 서류와 면접 등 공모절차를 거쳐 임용됐다. 올해부터 2년 동안 경북도의 스마트팜 혁신 밸리 조성과 농어업 6차 산업화 추진, 경북 농업의 규모화, 농업 경영인의 청년화, 친환경 농업 활성화 등 경북도 농촌살리기를 위해 일한다.

그는 낙향한 뒤 스스로를 돌아보는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이철우 경북지사를 만나면서 농촌살리기에 관심을 두게 됐다. “지난해 추석 때 이 지사께서 집을 찾아왔어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농촌 삶의 고단함과 실상 등을 이야기하던 중 지나가는 말로 도와달라고 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 후 몇 차례 연락이 와서 고민 끝에 공모에 응하게 됐어요.”

그는 “도지사 자문관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작 5급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당황했지만 늙고 지쳐 쓰러져가는 고향, 농촌을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체면을 벗어던지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농촌의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장관직을 퇴임한 바로 다음 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학교를 마치고 대학원 공부를 해보겠다고 집을 나설 당시 어머니, 아버지에게 공부를 마치면 집으로 온다고 약속했다.

“40여 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탄핵정국 속에 사람의 도리를 잊지 않으려고 집 마당에 사원재(思源齋·근본을 잊지 않겠다는 뜻의 음수사원에서 따온 말)와 애일당(愛日堂·어머니와 지내는 하루가 사랑스럽다는 뜻)을 짓고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면서 어머니(87)와 지내고 있어요.”

그가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난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어려운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집을 나섰지요. 아버지는 30대 초반인 1960년대 농촌지도자로 단촌면에 농업협동조합을 설립했어요. 이후 20여 년 동안 조합장을 지냈지요. 아버지는 농산물 유통 문제로 고민하시다가 조합 사무실에서 쓰러져 돌아가셨어요.”

농협의 새농민회와 이 전 장관 가족은 고향 집 뒤편 이 전 장관 아버지 산소에 새농민상 수상 비석을 세웠다. 그는 아버지가 조합장을 맡을 동안 어머니는 누에를 기르고 담배와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5남매를 키웠다고 했다.

그는 장관 재직 시절에 했던 ‘1234’ 구호를 고향에서도 실천하고 있다. 재직 시절 ‘한 달에 두 번 이상 현장에 나가 3시간 이상 머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자’는 구호였으나, 낙향 후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 두어 차례 들에 나가서 일하고 삼시 세끼 노모와 함께 밥을 먹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나 하겠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북도청에서 1주일에 3일 근무하는데, 앞으로도 농사와 ‘1234’는 계속 실천할 계획입니다.”

그는 농사를 지난해까지 3차례 지었다. 매출은 첫해 0원, 다음 해에 300만 원, 지난해에는 850만 원이었다. 8250㎡의 땅에 마늘, 콩, 팥, 양파 등을 심었다. “매출이 해마다 많이 증가했지요. 이웃 주민들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농사짓는 요령이 조금씩 늘어난 것도 있고요.”

하지만 그는 생산한 농산물을 팔기가 어렵다고 했다. “의성은 마늘이 유명한데, 여러 농협 가운데 마늘을 취급하는 곳이 3개가 있어요. 마늘을 팔려고 규격과 가격을 알아보니 농협마다 제각각 달랐어요. 무엇이 과연 의성 마늘인지 소비자가 알기 어려운 것이지요. 더구나 취급물량도 전체 생산량의 15%나 될까. 대부분 농민은 밭떼기로 상인들에게 넘기는 전근대적인 유통을 하고 있어요.”

그는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공수신퇴(功遂身退·다 내려놓고 돌아간다)’를 되뇌었다. 낙향하자마자 주변에서 적폐니 뭐니 하고, 세상이 시끄러워 농사만 짓고 죄인처럼 지내며 거의 두문불출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저 지경인데, 자숙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서 바깥출입을 하기 싫었어요. 국무위원까지 한 사람이 그저 이름 석 자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 외에 무슨 영광을 더 누리겠어요.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말씀한 대로 청복(淸福)을 누리고 싶어요. 이제는 이웃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격의 없이 지내지요. 사람 사는 이치가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이 전 장관은 3일 오후에는 집 부근 단촌문화센터 서예교실에 참여했다. 회원은 29명으로 모두 70~80대 어르신이다. 그는 시골 마을에 이런 곳이 있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글씨를 연마하고 정신도 수양하며 특히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창구로 1주일에 한 번씩은 나가 어르신들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낙향 후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문화생활입니다. 문화시설이 많으면 이웃과 재미있게 살면서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져 멀리 있는 사람들도 살려고 찾아올 텐데, 그렇지 못해요.”

그는 농업·농촌에 대한 위기감도 조언했다. 개방화와 고령화 등으로 농촌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농가 인구도 감소해 고향에 대한 향수가 옅어지고 있고 농업을 이해하고 농촌을 동경하는 이들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은 정신 바짝 차리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해요. 경북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한때 우리나라 근대화의 선도자 역할을 했지요. 그런데 귀농해 보니 주인 정신은 사라지고 공동체는 무너지고 있어요. 농협과 지자체도 고향을 살리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지역을 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보다 그저 편을 가르고 표나 관리하는 곳이 적지 않아요. 모두가 ‘각개전투’하면서 자기 몫만 챙기는 데 급급하면 어떻게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요. 건물을 짓고 도로를 뚫는 일보다 지역에 닥친 위기감을 공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마음, 즉 사람들의 ‘혼’을 살려야 해요.”

▲  이동필(왼쪽)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3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단촌문화센터 서예교실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그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고향창생(故鄕創生)’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주민과 공직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행사에 참석했는데, 학생이 4~5명뿐이어서 무척 놀랐어요. 내가 다닐 때는 최소 인원이 200명이었는데요. 더 심각한 것은 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문제로 여기는 주민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학교가 사라지면 지역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고민할 때 지역이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는 최장수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데 대해서도 회고했다. “비결이 있겠어요. 공부 못하는 학생은 유급시키잖아요. 그 시절 농정부문은 농업재해에다 쌀 관세화와 자유무역협정(FTA)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았어요.” 그는 특히 어려웠던 것은 쌀 목표가격 설정과 관세화 결정이었다고 했다.

“재임 중 쌀 목표가격을 17만83원(80㎏ 한 가마 기준)에서 18만8000원으로 올렸어요.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1년에 2만t씩 5%의 낮은 관세로 수입해 주기로 약속했는데, 그동안 관세화를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 무려 41만t 정도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어렵사리 농업계의 동의를 구해 관세율을 513%로 정하고 관세화를 결정하게 됐지요. 요즘 다시 쌀 목표가격을 결정하고 직접지불제도를 정비한다는데, 당장 눈앞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는 한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전 장관은 작금의 농정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은 것 같았다. “농가 소득과 나이를 기초로 농가의 유형을 구분해 맞춤형 농정을 추진하고 싶었어요. 전업농과 영세 고령농, 그리고 신규 창업농 등 대상별로 정책을 추진하면 그만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그는 경영체 데이터베이스(DB)를 보강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고 퇴임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추진해 온 규모화 농정이 후퇴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농업이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 박천학 차장(전국부)
의성 = kobbla@munhwa.com
e-mail 박천학 기자 / 전국부 / 차장 박천학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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