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 남용 수사, 정상인 조직에 상처 주는 항암치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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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내달 퇴임하는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

“검찰 수사받는 대법원장… 참담
묵묵히 정도 걷는 판사들 상처
법원의 신뢰 훼손이 가장 걱정”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가 법원의 정상적인 조직에도 상처를 입히는 항암치료처럼 진행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지난 11일 울산지법원장 집무실에서 만난 최인석(62·사법연수원 16기·사진) 법원장의 말이다. 최 법원장은 지난 7일 32년 동안의 판사 생활을 그만두기 위해 대법원에 사표를 냈고, 오는 2월 14일을 끝으로 법원장에서 물러난다. 그동안 수도권에서는 한 번도 근무한 적이 없어 스스로 시골판사라 칭한 그는 사표를 낸 이유에 대해 “1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고, 여러 가지로 물러날 때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법원장은 먼저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된 데 대해 “참담하다는 말 외에는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다”며 침통해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는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양 전 대법원장 시절 2년 정도 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한 적은 있다고 했다.

최 법원장은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한 조직의 사기 저하와 법원의 신뢰 추락을 가장 걱정했다. 그는 “이번 검찰의 수사는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과정 중 하나로 보이지만, 묵묵하게 정도를 걷고 있는 일선의 많은 판사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게 됐다”며 “이와 함께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지켜온 법원의 신뢰 훼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개인적 경험과 상식, 법원의 시스템으로 미뤄보면 재판거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 재판에 개입하려 해도, 재판부만 중심을 지키면 된다”며 “그런데 실제 판사들은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함부로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법부 내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판사에서부터 법원장까지 근무하면서 블랙리스트를 보거나 듣지도 못했다”며 “교과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 법원인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법원장은 법원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말을 아꼈지만 “국민의 권리보다는 수사와 재판 편의에 함몰돼 압수수색 등 영장청구가 너무 많고, 또 이 영장은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있다”며 “국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모두 기본과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지난해 11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된 뒤 법원 내부 게시판에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가히 홍수를 이루고 있고, 법원은 검사의 업무에 협조하는 데만 몰두, 검찰을 무소불위의 빅브라더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다만, “비판 시점을 놓고 여러 가지 말이 있었지만 32년 동안 판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계속해왔다”고 주장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최 법원장은 진주 대아고, 부산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7년 부산지법 마산지원에 판사로 첫발을 디딘 뒤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장, 제주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울산=곽시열 기자 sykwa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