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어설픈 ‘분배 실험’ 문제 더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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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록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정치학

양극화 심각성엔 모두가 공감
플라톤과 孔子 시대에도 걱정
권력과 富의 공정한 분배 중요

정책에는 정교함·치밀함 필수
文정부 소득성장 되레 역효과
처칠 “국민의 지옥行 막아야”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위기가 내재돼 있는 경제 체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질적·양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경제에 발목이 잡혀 지지율이 급락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도 올해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희망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만,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성현들이 언급했듯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그리스 공동체의 유지·발전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던 플라톤은 ‘그 누구도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4배 넘게 부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를 불안하게 하며, 국가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플라톤보다 약 130년 앞선 공자 역시 논어에서 ‘불환과 환불균(不患寡 患不均)’, 즉 백성은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며 부의 공정한 분배가 정치의 본질임을 설파했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를 포함한 세계 100여 명의 학자가 참여해 2017년 12월에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펴냈는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갈수록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극단적 수준에 이르렀다. 이들은 불평등을 이대로 방치하면 정치·경제·사회적인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불평등은 불가피한 게 아니므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줄일 수 있고,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불평등 해소를 위해 누진적으로 소득세를 더 높이고, 불로소득인 자본이득에 과세를 강화하고, 임금을 인상하고, 공공교육 투자를 확대하는 등 다양하고 적극적인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을 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불평등 해소가 중요한 이유는 카를 마르크스의 경고와 예언이 식상하다면 이미 19세기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오레스티스 A 브라운슨의 다음과 같은 경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전쟁 중에 가장 무서운 건 부자와 빈자의 전쟁이다. 그것은 아무리 늦춰도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 최악의 공포와 함께.”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의 양극화’는 시민혁명을 가져왔고, ‘부의 양극화’는 사회주의 혁명을 불러왔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피케티 등의 학자들이 권고한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 알 수 있다. 비록 정책 기조가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정책에는 부작용과 풍선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책 설계와 집행에는 정교함과 치밀함이 수반돼야 한다. 국정 운영이 어설픈 정책 실험이 돼선 안 된다.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 정부는 비록 법과 원칙, 그리고 절차를 준수해야 하지만 적폐청산을 포함한 개혁 정책이 신속·공정·과감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 국민 그 누구도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역주행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사회의 다양한 기득권 세력은 역대 정부의 개혁 정책을 때로는 견강부회까지 동원해가며 반대해 왔다. 따라서 문 정부의 분배 정책도 결코 성공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에 자리를 내어준 지는 오래다. 자본주의 성립 이후,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잠시 억누른 적은 있었지만 결국은 경제권력이 이겼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실토한 바 있다.

이제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 석학 제프리 삭스 교수의 경고처럼, 정부가 재벌의 일탈을 규제하지 않으면 재벌이 정부를 인수할지도 모르는 지경을 우려하기에 이르렀으며, 부의 불균형 심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문 정부는 약 700만 명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2000만 명의 임금 노동자, 600만 명 가까운 자영업자, 700만 고령자, 그리고 100만 명이 넘는 실업자의 경제적 빈곤 문제 해결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끝으로, “내 임무는 국민을 천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한 윈스턴 처칠의 명언을 문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