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시장 왜곡하는 복지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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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사회부장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온갖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그중엔 안타깝게도 정부가 돈이 없어 못 하는 제안도 있다. 반면, 설령 돈이 남아돌아도 실행에 옮기지 말아야 할 정책구상 역시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복지정책이 누구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포퓰리즘 속성을 갖고 있다 해도 정도를 넘어 위험에 다다른 경우다. 특히 시장 특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상이라면 더 그렇다. 시장질서를 왜곡하면서까지 무분별하게 도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표적 사례가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다. 여성의 독박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자 도입한 남성 육아휴직이 현실적으로 확산하는 데 한계를 보이자 일정 조건에서 일정 기간 의무화하자는 정책이다.

이를 놓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내부에서 신중한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김상희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발표하면서 사회적 합의 추진을 강조할 때부터 예고됐던 바다. 의무화를 통해 해당자 모두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제도화할 경우 승진에서 밀리거나 한직으로 밀려날까 망설이는 남성 직장인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 2017년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 대비 5000명이 더 늘었어도 총 1만2000여 명에 그쳤다. 전체의 10%를 넘지 않는다. 또 남성 육아휴직자의 70%는 대기업과 공직사회에 쏠려 있어 중소기업 종사자에게는 그림의 떡인 점도 사실이다. 김 부위원장이 “모든 사업장이 아이가 태어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달은 당연히 가는 방안”을 거론한 배경이 이해되는 이유다. 북유럽 사례를 봐도 어느 누구도 부부의 공동육아, 고통분담의 중요성을 부인할 이는 없다.

그렇다고 앞뒤 정확한 계산과 분석 없이 마구잡이로 국가정책이 추진돼서는 곤란하다. 폐해는 과연 없는지 정밀하게 살펴볼 바다. 기업의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식의 강제적인 법 만능주의가 낳는 폐해를 수도 없이 봐왔다. 기업의 핵심 프로젝트 추진이나 인력 운영, 인건비에 부담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정작 의무화를 걱정하는 당사자도 많다. 휴직자의 소득대체율 40%를 받고서는 도저히 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다. 이들에게 의무화는 절대 달갑지 않은 제도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정부의 법적 강제는 질적으로 다르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전 계열사에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시행 중인 롯데처럼 민간의 자발은 환영받을 일이고 긍정적 효과를 거두겠지만, 일률적인 법적 강제는 심각한 왜곡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미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정책을 추진하다가 실패를 경험했던 사례도 있지 않나. 정치권이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추진했던 출산장려금 정책은 비판 속에 백지화됐다. 출생 축하금이면 몰라도 출산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돈을 준다는 접근법 자체가 여성 도구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확산되던 터에 “누가 돈 받으려고 아기를 낳나”라는 실효성도 한계로 지적됐었다. 경제성장과 혁신을 질곡 하면서까지 포용 정책을 남발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복지의 경우 한번 시행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경직성이 강하기에 정책에 더 신중해야 한다.

jup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