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8.19 월요일
전광판
Hot Click
음악
[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16일(水)
“정주영 회장 기린 ‘진혼교향곡’… 前세대에 대한 고마움 담아”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투병 중인 류재준(사진 아래) 작곡가는 림프종 발병 전 모습보다 얼굴이 조금 부어있다. 그는 “우선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며 “올해 전 세계 동시 발매되는 앨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곡가 류재준

뻔한 삶 싫어 고3때 음악 시작
원했던 음악 배울수 없어 절망
펜데레츠키 있는 폴란드 유학길

삼고초려 끝에 펜데레츠키 사사
“대위법 뭐냐” 질문에 퇴짜 맞고
같은질문으로 두번 더 거절당해

교수와 2년동안 전세계 돌면서
음악·문학·미술·정치가 만나
“모든 게 연결돼 있다”고 강조

‘진혼곡’ 특유 슬픈 마무리 싫어
밝은 앞날 상징 열정적 마침표
스승도 “레퀴엠식 교향곡” 명명

2년전 림프종 발병 투병중에도
“올 스승과 내는 음반 잘 됐으면”


책에 빠져 살던 현대고 3학년 류재준은 세상이 너무 뻔해 보였다. 남들과 같은 삶을 살며 일반적인 성공의 길을 가기 싫다는 치기 어린 생각도 들었다. 집에서는 법대나 의대에 가길 바랐지만 그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음대에 진학해 작곡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주위에서 ‘음악은 어릴 때 시작해야 한다’ ‘작곡은 메이저가 아니다’라고 만류했지만 음악 전공자인 학교 이사장이 좋은 음악가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뜻을 지지해줬고, 음악 선생님과 미술 선생님이 그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사업가인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집을 나오기도 하며 화성법을 공부했다. 그렇게 그는 1989년 서울대 작곡과에 합격했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류재준(49) 작곡가가 걸어온 길이 궁금해 2018년 마지막 날 서울 서초구 방배동 그의 집을 찾았다. 2017년 10월 림프종이 발병해 투병 중인 그는 치료를 마치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에 부기가 남아있었지만 밝은 표정으로 맞아줬다. 그에게 “언제 음악을 처음 접했느냐”고 첫 질문을 던졌다.

“중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처음 들었어요. 아버지가 가끔 카세트테이프를 사오시긴 했지만 집에서 음악을 즐겨 듣진 않았거든요. 충격이었어요.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가 고3 때 다시 살아난 거죠. 큰아버지는 의사시고, 아버지는 사업을 하셔서 저도 그런 삶을 살길 바라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니 지원을 제대로 안 해주셨어요. 지금 같으면 대학에 못 갔을 거예요. 대입 학력고사 세대라서 가능했죠. 실기 비중이 30%여서 성적만으로도 들어갈 수 있었어요. 화성법이 미적분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제가 의사가 됐으면 의료사고 몇 건 냈을 거예요. 법대를 갔으면 인권변호사가 됐을 거고요(웃음). 고등학교에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 성함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정자 이사장님과 김경숙 음악 선생님, 이현주 미술 선생님이 제 인생에서 어떻게 예술을 해야 하는지 기본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렇게 작곡과에 들어갔지만 그는 대학에서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다.

“제가 생각하던 음악을 배울 수 없었어요. 저도 모르는 소리를 접하며 해외 사조를 강요하는 수업을 들었죠. 소리와는 관계없이 수리적, 논리적으로 곡을 써야 했고요. 제가 알고 싶은 걸 알 수 없는 상황이 괴로웠어요. 대학 다닐 때도 집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아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어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돈을 벌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술 마시며 놀기도 했고요. 그래도 대학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음악을 경험한 게 도움이 됐어요. 그러면서 절망도 했어요.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자 수보다 청중 수가 적더라고요. ‘이래서 어떻게 먹고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계란 곳이 처음 투자한 걸 뒤에 들어온 사람 돈 받아서 유지하는 시스템 같았어요. ‘리먼 사태’ 같은 느낌이 들었죠. 1980년대엔 인터넷도 없었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등 소련 작곡가의 곡은 연주를 못 했어요. 배울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 없었고, 있는 자료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죠.”

그런 답답함이 대학을 마친 그를 유학의 길로 이끌었다. 1992년 폴란드 크라쿠프음악원 대학원으로 간 그는 세계적인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를 찾았다.

“폴란드에 도착하자마자 펜데레츠키 교수님께 연락을 했는데 외국에 나가계셔서 만나지 못했어요. 얼마 후 다시 전화를 했더니 오라고 해서 제가 쓴 악보를 보여드렸어요. 제가 작곡한 걸 보시더니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탈리아에만 500명이 넘는다’며 ‘대위법(對位法·독립성이 강한 복수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 기법)이 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아는 걸 설명했더니 ‘나 말고 다른 사람과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펜데레츠키 교수에게 거절당한 그는 지도교수 이름을 공란으로 놔둔 채 학교에 입학했다. 1992년 중앙음악콩쿠르 작곡부문 1위를 한 그는 병역 특례를 받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여기서 1년 더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학교에 남았어요. ‘펜데레츠키 교수에게 잘렸다’고 말했는데도 받아주더라고요(웃음). 죽어라 공부하고 다시 펜데레츠키 교수를 찾아갔어요. 똑같이 ‘대위법이 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다시 1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말씀드렸죠. 근데 ‘너는 아무래도 작곡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며 7∼8㎞ 거리에 있는 집으로 걸어왔어요. 다른 학교로 옮기려고도 했지만 ‘이유라도 알고 가자’는 생각으로 이를 갈며 1년을 더 공부했어요. 펜데레츠키 교수를 찾아간 날이 매년 7월 16일이에요.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지금까지 날짜를 기억하겠어요(웃음). 또 1년을 지내고 1994년 7월 16일에 다시 찾아가서 제가 생각하는 대위법을 15분 동안 이야기했지만 ‘작곡가가 아닌 사람으로 문제 있다’는 말을 듣고 또 퇴짜를 맞았어요. 너무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 1시쯤 전화를 했어요. 직접 받으시길래 ‘대위법은 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더니 ‘짐 챙겨서 아침에 공항으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세 번째 도전해서 성공한 거죠. 나중에 ‘전화를 받으며 왜 누구냐고 안 물어봤느냐’고 물었더니 ‘새벽에 내게 전화할 미친놈이 너밖에 더 있겠느냐’고 답하시더군요(웃음).”

이후 그는 펜데레츠키 교수와 2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음악가, 문학가, 미술가, 정치가 등을 만났다. 그는 “펜데레츠키 교수가 내게 가르친 게 없다. 기회를 줬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날 아침 공항에 나갔더니 ‘나는 가르칠 생각이 없다. 기본적인 오케스트레이션(오케스트라를 위한 작곡과 편곡)과 대위법은 다른 데서 공부해도 충분하다’며 ‘내 옆에서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지켜보라’고 말하셨어요. 또 ‘세상에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모든 게 연결돼 있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시작하는 음악을 해보라’고 강조하셨어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등의 책을 읽으라고 하셨고, 저를 첼로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보냈고, 아이작 스턴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게 했어요. 최고의 슈베르트, 모차르트 연주자와도 연결해줬고요. 그러고는 ‘이제 더 하는 건 무리’라며 ‘너 혼자 크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동등한 작곡가로 저를 봐주세요.”

폴란드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특례보충역 복무를 위해 귀국했다.

“의무적으로 들어와야 했어요. 일을 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학교에도 있다가 2001년 다 그만뒀어요. 몸도 안 좋았지만 학교에서 제자를 지도하는 게 곡을 쓰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 떨쳐내고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5∼6년 동안 펜데레츠키 교수님과 함께한 2년 동안의 경험을 녹여냈어요.”

2004년 ‘타악기를 위한 파사칼리아’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06년 폴란드 라보라토리움 현대음악제에서 위촉해 만든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유럽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서서히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던 그는 2008년 폴란드 최고 음악축제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제에서 초연된 ‘진혼 교향곡(Sinfonia da Requiem)’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0회 서울국제음악제 폐막 공연에서도 연주된 이 곡은 2001년 타계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날 리셉션에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진혼 교향곡’은 아버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아버님 시대에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신 분들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말했다.

▲  2018년 11월 1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혼 교향곡’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 그레고리 노박(앞줄 오른쪽)이 류재준(〃 왼쪽) 작곡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현대가(家)의 의뢰를 받고 쓰기 시작해 7년 만에 완성한 곡이에요. 기본적으로 진혼곡(레퀴엠)은 슬프게 끝나는데 그렇게 끝내기 싫었어요. 밝고 힘찬 앞날을 보여주는 열정적인 마무리를 하기 위해 교향곡 형식으로 작곡했어요.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준 전 세대 분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전 세대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정주영 회장님을 비롯해 전 세대에 대한 고마움을 곡에 담았어요. 펜데레츠키 교수님이 음악을 듣고 난 뒤 ‘레퀴엠의 요소를 가져온 교향곡’이라며 곡명을 정해주셨어요. 지금은 그런 곡을 못 쓸 것 같아요. 작곡가는 타고나야 해요. 물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하죠. 계속 발전하는 게 아니라 어느 시기에만 쓸 수 있는 곡이 있어요. 2008년 초연 때 박수를 끊어야 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게 지금의 저를 증명하는 건 아니에요. 작곡가에겐 성취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걸어가는 거죠.”

그는 2009년부터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2010년에는 핀란드 난탈리 음악제와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 상주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또 2009년엔 실내악 그룹 앙상블오푸스를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

“2008년 폴란드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제에 임성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님이 오셔서 ‘서울에도 이런 음악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펜데레츠키 교수님과 함께 서울국제음악제를 만들었어요. 첫해에 ‘진혼 교향곡’을 한국 초연했고 10주년에도 그 곡을 연주했어요. 20주년에도 할 거고요. 장기적으로 서울국제음악제와 앙상블오푸스를 통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요. 우선 건강부터 챙겨야죠. 요즘은 곡을 쓰기가 힘들어요. 생체리듬이 깨져서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해요. 국내에 대단한 연주자가 많아요. 후원만 잘해주면 발전 가능성이 높죠. 작곡가는 연주자가 납득하고 빛낼 수 있는 곡을 써야 해요. 작곡가가 항상 바르고 옳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열정이 있어야죠.”

2015년 폴란드 정부는 그에게 1급 훈장인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수여했다. 이 상은 폴란드의 문화나 문화유산을 수호하는 데 기여했거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룩한 개인 또는 기관에 주는 것으로, 역대 수상자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와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등이 있다.

“상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주시면 감사하지만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니까요(웃음). 상금이 없는 훈장보다는 상금을 주는 게 좋아요. 앙상블오푸스 연주회를 열고, 서울국제음악제를 안정적으로 개최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그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뭐냐”고 말을 건네자 “2019년에 펜데레츠키 교수님과 함께 음반을 내는 일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국-폴란드 교류 30주년을 맞아 양국 정부가 지원하는 앨범을 제작해요. 제가 쓴 ‘피아노 콘체르토’와 펜데레츠키 교수님이 1991년에 한국 정부 의뢰로 만든 ‘교향곡 5번-코레아’를 한 앨범에 담아요. 워너뮤직이 전 세계 동시 발매하는데 5000만 원 정도 드는 녹음비가 부족해요.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후원을 거절해서 고민이 많아요. 그걸 푸는 게 가장 절실하죠.”

음악계 잘못된 관행·사회병폐에 문제 제기…“자기 논리 있다면 말할 수 있어야”

5년전 난파음악상 수상 거부
“친일파 아닌 賞 취지 때문에”

음악제 티켓 5만원 이하 책정
“값비싼 그들만의 클래식 안돼”


“상식과 인류의 보편적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류재준 작곡가는 클래식 음악계의 잘못된 관행과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신문에 기고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이런 그의 행보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누굴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건 절대 안 되지만 자기 논리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누구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3년에는 ‘난파음악상’을 거부했고, 2017년부터 서울국제음악제 일부 공연 티켓 가격을 5만 원 미만으로 정하기도 했다.

“제가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된 상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홍난파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고, 음악적 업적도 있다고 봐요. 누구나 공과가 있죠. 친일을 문제 삼은 게 아니고 그 상의 제정 취지가 잘못돼서 상을 안 받은 거예요. 제가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홍난파 선생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다’라고 돼 있었거든요. 또 문화가 기본적인 복지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연 티켓 가격을 낮춘 거예요. 서울국제음악제가 국가지원을 받는 행사라 가능했죠. 좋은 연주자를 모시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티켓 가격도 올라가겠지만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특선 메뉴를 맛보는 식으로, 클래식 공연이 ‘그들만의 리그’가 돼 가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기업 협찬 방식도 사회공헌 개념으로 바뀌어야 해요. 티켓을 미리 사주는 게 아니라 공연 비용을 후원해 관객이 후원 기업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는 또 전 정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며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유명해지려고 그러냐’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뭘 얻기 위해 곡 쓰기를 중단한 게 아니에요. 너무 힘들고 아팠거든요. 제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는 게 밝혀졌고, 다시 열심히 곡을 쓰고 있어요. 제가 외국에서 번 돈으로 앙상블오푸스 연주회를 열고, 서울국제음악제 비용도 충당해야 하거든요. 다들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뭔가를 하듯 저도 제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인터뷰 = 김구철 부장(문화부)
e-mail 김구철 기자 / 문화부 / 부장 김구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많이 본 기사 ]
▶ 물·바람에 몸 숨기는 ‘투명 미사일·잠수함’ 나올까
▶ 조국 딸 유급에도 장학금… 野 “정유라 사건 再版”
▶ 조국 딸, 의전원 2차례 낙제하고도 장학금 의혹
▶ 北, 미사일발사 비판 박지원에 “망탕 지껄이지 말라”
▶ ‘한강 시신’ 피의자 “또 그러면 또 죽는다” 막말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다른 학생 장학금 빼앗아 가” 학교측 “절차상 하자는 없어”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2차례나 유급을..
mark조국 딸, 의전원 2차례 낙제하고도 장학금 의혹
mark‘한강 시신’ 피의자 “또 그러면 또 죽는다” 막말
“75억 투자약정 사모펀드 실질적 오너는 조국의 친..
물·바람에 몸 숨기는 ‘투명 미사일·잠수함’ 나올까
나라 이 지경인데… 총선에만 목매는 민주-한국당
line
special news 탬파베이 최지만, 최고의 날…9회말 끝내기 역전..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28)이 9회 말 짜릿한 역전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다.최지만은 19일(한국시간) ..

line
美, 호르무즈 비용 포함 ‘50억달러’ 방위비 분담금 ..
팀 쿡 “삼성, 관세 안낸다”… 트럼프 “생각해보고 있..
北, 미사일발사 비판 박지원에 “망탕 지껄이지 말라..
photo_news
안 떨어지는 스타 몸값, ‘드라마 폐지’의 주역
photo_news
구혜선 “합의 상황 아니다” vs 안재현 소속사 ..
line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illust
스위스재단 “루브르 소장품은 복제품…‘젊은 모나리자’가 진품..
[인터넷 유머]
mark답답한 남편 스타일 5 mark외부 음식 반입 금지
topnew_title
number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여성 저항하자 벤츠 훔..
韓 ‘개도국’ 박탈위기… “쌀 등 핵심품목 관세..
“고양·파주 차량까지 몰려 교통지옥…신분당..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000여명 “22일 무기한..
임성재 ‘30명 최종전’ 진출… 한국인 첫 신인..
hot_photo
제네시스 ‘민트 콘셉트카’ 출격
hot_photo
강한나 “웃을 장면 아닌데 웃고·..
hot_photo
옷처럼 입는 로봇 개발…“걷기·달..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