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회의 탄핵하라”던 현직 부장판사 “포토라인은 현대판 멍석말이 맞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촉발시킨 검찰 포토라인에 대한 찬반양론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17일 자신의 SNS에 “포토라인은 현대판 멍석말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동료법관 탄핵 검토안을 의결한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대해 “법관회의를 탄핵하라”며 맞선 바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검찰 포토라인에 대해 “넘어뜨리기 힘든 상대를 미리 대중에게 던져줘서 힘을 잔뜩 빼놓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또 포토라인이 국민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포토라인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봐야, 대개는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식의 짧은 한마디를 듣는 데 그치는데 그게 뭐 그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지난 11일 처음 검찰에 소환될 당시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에게 심경을 밝힌 대신 검찰청 포토라인은 그냥 지나쳤다. 포토라인이란 피의자가 소환될 때 잠시 멈춰 서도록 수사기관 출입구 앞바닥에 테이프로 만들어 놓은 선을 일컫는다. 이후 법조계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15일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포토라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아래는 김 부장판사가 올린 글 전문.

“현대판 멍석말이”

멍석말이라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대강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터라...
동네나 문중 등에서 사사로이 행하는 징벌이라 법에 근거가 있을 리 없고, 현대 형사법의 원칙으로 보면 그냥 집단폭행이고, 야만인데... 마음이 더 불편한 것은 그 집행이 비겁하다는 데 생각에 미치기 때문이다.
생명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미미한 명분에 기대어 멍석을 마는 것인지는 모르나(확인 불가, 그냥 추측),,, 정작은 맞는 자로 하여금 가해자를 모르게 가리고, 패는 자들은 그 익명에 기대어 공분을 푸는 것이다. 더하여 앙금진 사감까지 풀 수 있다면 그건 덤이고...
범한 위법이 무엇인지, 그 증거가 무엇인지, 변명할 기회를 주고 절차는 지켰는지, 비위에 적절한 매질의 정도는 무엇인지, 그런 것은 상관 없다.
정제되지 않은 공분만 있고, 집단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과정을 통해 그 공분은 자신이 갈망하던 것을 채운다.
요즘 검찰청 앞 포토라인을 두고 “현대판 멍석말이”라고 한 강민구 법원장님의 표현에 대해 말들이 많다.
국민의 알 권리 보호니, 취재진의 혼선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느니 반론들이 없지 않다.
그것을 반박하려고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꺼내 들기도 전에, 퍼뜩? 내 머리에 드는 생각은 포토라인도 멍석말이와 매일반 비겁하다는 것이다.
범죄 혐의가 분명하고, 증거가 충분하면 피의자가 아무리 뻗대더라도 정면으로 승부를 걸면 될 일이다.
근데 왠지 넘어뜨리기 힘든 상대를 미리 대중에게 던져줘서 힘을 잔뜩 빼놓려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 그래도 편하지 않다 싶으면 중간 중간 피의사실을 공표하며 상대의 전의를 온전히 꺾어 놓는 느낌...
물론 포토라인 설정의 주체도 모호한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이러한 것을 의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혹여 그런 불손한 의도를 가진 수사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화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런 관행으로 사람의 생명이 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라면 그 결과만 놓고라도 고민을 할 이유는 충분할 거라서, 글을 계속 이어보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봐야, 대개는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식의 짧은 한마디를 듣는 데 그치는데 그게 뭐 그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까 ...
또 말하고 싶은 피의자는 포토라인이 없어도 충분히 제 말을 언론에 전할 수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수사기관이 유출하든 유출하지 않든 혐의 사실이 유포되고, 그 유포된 혐의가 포토라인에 서는 수사대상자의 굳은 표정으로 형상화 되면, 대중은 이미 그 사람을 죄인으로 볼 공산이 커진다. 그리고 공분을 노출하기 시작한다.
공분이 쌓이면 판단하는 자의 운신의 폭은 현저히 줄어들 염려가 있다. 그 공분에 거스르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재판이라는 지탄이 돌아온다. 판결은 공익보다는 진실이 앞서는데도 말이다.
‘공분털기’식의 제도를 이제 하나씩 들어낼 때가 되었다. 대중이 원한다고 휘발성 강한 소재를 쏟아내는 데에만 열중하다 보면 대중의 상식이 중독되고, 이성이 마비될 수 있다. 대중도 기다릴 줄 알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성숙해야만 한다.
그냥 대중의 갈증만 맞추는 관행을 자꾸 만들어가면, 그래서 왜곡된 사실이 대중에게 쉽게 노출이 되면, 그리고 이런 뒤틀린 사실인식에 위안이 되는 판결을 할 위험이 높아지면, 여론에 휘둘리는 사법의 후진성을 탈피하려는 바램은 영구미제로 남을 것이다. 소문과 기사로 판결한다는 비아냥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