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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18일(金)
여리고 순수한 삶과 詩의 뿌리… 시인은 어딜가고 햇살만 반겨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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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안성시 금광면에 있는 박두진 집필실. 시인이 만년인 1982년부터 머물렀던 집필 공간이다.

- (145) 박두진 시인의 고향, 경기 안성 ‘고장치기’

소작농 스무가구 살던 마을
또래들과 나무하고 공 차고
흙길 걸어 보통학교 다닌 곳
18세때 공부위해 고향 떠나
고향서 모든 것 얻었으면서
준것은 없다며 늘 미안해해

보개도서관 입구에 첫 詩碑
시인 얼굴 기념비도 나란히
작년말 박두진 문학관 개관
북카페·천문과학관 등 함께
금강호수엔 ‘문학길’ 만들어
녹 피어난 집필실 안타까워


<고향(故鄕)>

고향이란다. 내가 나서 자라난 고향이란다. 그 먼, 눈 날려 휩쓸고, 별도 얼어 떨던 밤에, 어딘지도 모르며 내가 태여 나던 곳, 짚자리에 떨어져 첫소리 치던, 여기가 내가 살던 고향이란다.


청룡산(靑龍山) 옛날같이 둘리워 있고, 우러르던 옛 하늘 푸르렀어라. 구름 피어 오르고, 송아지 울음 울고, 마을에는 제비 떼들 지줄대건만, 막쇠랑, 북술이랑, 옛날에 놀던 동무 다 어디 가고, 돌이만 나룻 터럭 거칠어졌네.


이십 년 흘렀는가, 덧없는 세월… 뜬구름 돌아오듯 내가 돌아왔거니, 푸른, 하늘만이 옛처럼 포근해줄 뿐, 고향은 날 본 듯 안 본 듯하여… 또 하나 어디엔가 그리운 고향, 마음 못내 서러워 눈물져 온다.


엷은 가을볕. 외로운 산기슭에 아버님 무덤. 산딸기 빨갛게 열매져 있고, 그늘진 나무 하나 안 서 있는 곳, 푸른 새도 한 마리 와서 울지 않는다. 석죽(石竹)이랑 산국화랑 한 묶음 산꽃들을 꺾어다 놓고, - 아버님!… 부를 수도 울 수도 없이, 한나절 빈산에 목메여 본다. 어쩌면 나도 와서 묻힐 기슭에 뜬구름 바라보며 호젓해 본다.

시집 ‘오도(午禱)’(1954년 6월)


▲  2018년 11월 개관한 박두진문학관.
철도가 없는 안성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가자면, 승객들은 대부분 공도읍(邑)에 들어서자마자 내릴 채비를 한다. 시내의 대학교들 앞 임시 정류장을 차례로 지나고 나면 결국 종점인 안성터미널까지 가서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연결 차편도 그편이 더 낫지만, 이번에 시청을 지나 굳이 종점까지 가는 것은 박두진의 고향, 그 자연을 직접 만나고 싶어서다. ‘고장치기’를 먼저 찾기로 한다. “나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지만, 그러나 가장 고향다운 고향은, 안성의 한 촌락인 ‘고장치기’라는 곳이다. 안성읍에서 2㎞ 지점. 신작로 옆에서 조금 들어앉아 있는 논벌 가운데 위치해 있다.”(‘고향 안성의 햇덩어리와 별밭’)

혜산(兮山) 박두진은 1916년 3월 10일 경기 안성읍 봉남리 360번지에서 태어났다. 시인의 ‘태 자리’와 ‘샛말’이라 불렸던 “초가집이 여섯 채쯤 있는 작은 마을”, 지금은 안성여중 운동장이 있는 곳이다. 박두진 일가는 그가 다섯 살이 되던 무렵에 그곳을 떠나, ‘산밑 가터’(가사동)와 ‘양협’(양복리)을 거쳐, 보통학교에 입학할 무렵 동신리 ‘고장치기’로 이사를 한다. “소년 시절의 거의 전부를 나는 경기 안성 시골 농촌 마을을 몇 군데나 전전해 가면서 살았다”(‘고향의 겨울’). 따지고 보면 채 십 리도 떨어지지 않은 인근 마을들을 전전한 셈이고, 현재는 모두 안성의 보개면(面)에 속하는 동리(洞里)다. 글을 아는 선비 집안이었지만 결국 몰락해, 식량을 꾸려나갈 방도로 겨우 “소작 논 다섯 마지기와 밭 한 뙈기를 짓는 빈농”, 그것도 “일제에 의해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소작농”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박두진이 읍내 보통학교까지 걸어 다녔던 등하굣길, “모래 반, 흙 반의 신작로”는 이제 4차선 38번 국도(서동대로)로 변했다. 안성천을 가로지른 보개교를 지나면, 동신초등학교가 보인다. 그 옆이 바로 평촌(坪村) 마을이다. 동신리에는 현재 동문리와 평촌 그리고 신기마을(송동)이 있다. 그 지명도 동문리와 신기마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지었다. 그 이름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가운데에 있는 스무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 평촌(坪村)을 예전에는 ‘고장치기’라고 불렀다. “짚으로 만든 공을 가지고 놀았다”고 해서 그리 불렀다는 말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박두진도 그 유래를 말한 적은 없다. 어찌 됐든, 단번에 입 끝에 착 붙어 오래 기억되는 지명이다.

▲  박두진 집필실 앞에 있는 ‘해’ 시비.

끝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진 벌판이 두 눈을 가득 채운다. ‘사갑들’이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겨울의 빈 들판이라 유난히도 넓다. ‘밭(田)조차 없는 동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지평선 끝에 하늘로 맞대어 “차령산맥의 한 끝마무림”, 청룡산(靑龍山·서운산) 줄기가 벌판을 크게 감싸 안았다. 눈부신 햇살에 두 눈이 흐려지며 현기증마저 인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흔든다.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는 끊임없이 분다는 사갑들의 바람은 이 넓은 분지 지역 안에서 계속 휘돌며 사방으로 향한다. 쪽빛 하늘은 청명한 가을 하늘보다 더하고 머리 위 가장 높은 곳에서 이글거리는 정오의 햇덩어리에 발그림자마저 사라진다. 너른 들판과 청룡산, 짙푸른 하늘, 해와 거센 바람, 과연 시인의 자연은 모두 고장치기에 있었다. 그저 지금 “밤하늘의 별밭”만이 함께하지 못할 뿐이다.

박두진은 열여덟 살에 “가족의 생계를 돕고 공부를 더 하고자”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의 가장 다감하던 소년 시절을 이 고장치기에서 살았다. 가장 여리고 순수했던 인생 중의 알고갱이 시절을 여기서 살았으니 고장치기야말로 나의 고향 중의 고향인 셈이다. 나의 인간 됨의 바탕과 사상과 정서 감정의 질과 기반이 마련된 전기적이며 운명적인 의미를 갖는 곳이다.”

햇살과 바람에 잔뜩 취해, 내친김에 오던 길을 이어 양복리로 향한다. 안성 시립 보개도서관 입구에는 시인의 첫 번째 시비가 있다. 1998년 9월 16일 박두진이 하늘나라로 돌아간 후, 채 두 달도 안 지나 서둘러 세운 감은 있지만, 시비는 군더더기 없이 힘차고 멋지다. 큼지막한 받침석 위에 반원형의 비석을 얹고, 시 ‘고향’의 전문을 가로로 새겼다. “고향이란다. 내가 나서 자라난 고향이란다./ 그 먼 눈 날려 휩쓸고 별도 얼어 떨던 밤에// 어딘지도 모르며 내가 태어나던 곳/ 짚가리에 떨어져 첫소리 치던/ 여기가 내가 살던 고향이란다.” 가뜩이나 작은 글씨가 세월 탓에 많이 흐려져 읽기 힘들지만, 그저 글씨에 색만 다시 입히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박두진이 2004년에 문화 인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선정비’도 나란히 서 있다. 검은 현무암에 시인의 얼굴과 ‘말씀’을 새겼다. “시는 모든 것 위에서 최고의 비판이자 최고의 도덕적 이상 미학이며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성을 실현해야 한다.” 이 고장 출신 서예가, 지산 이광수의 붓글씨에는 시인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담겼다. 도서관 3층에는 얼마 전까지 ‘박두진 자료실’이 있었다. 비록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겉치레 없는 게시물과 알찬 전시 유물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새로 박두진 문학관이 개관하면서 관련 자료들을 모두 옮겼다고 한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고향’ 시비의 모양이 “지평선 위로 반쯤 떠오른 해”와 많이 닮았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시비는 흔히, 그것도 첫 번째 것은 시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시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박두진의 경우라면 당연히 시 ‘해’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터이다. 하지만 안성에 처음 세워진 시비였기에,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선택한 듯하다. 이 시를, 특히 마지막 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설명이 좀 필요하다. ‘고향’은 195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오도(午禱)’에 실려 있다. 시집에서 바로 앞에 놓인 시 ‘아버지’와 한 쌍을 이룬다. 박두진은 6·25 동란 중, ‘죽음의 피란’을 마치고 수복된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인 9월 말에, 기좌리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 주변의 ‘산꽃’ 몇 가지를 꺾어 “가난한 묶음을 만들어 아버지의 무덤 앞에 드리고는 마침내 나는 그대로 흐느끼다가 꺼이꺼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오도 시대’). 그때 무덤 앞에서 낭독했던 시가 바로 ‘고향’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예견했듯이, 혜산은 현재 기좌리의 선산, 아버지 무덤 아래 잠들어 있다.

‘안성객사(安城客舍)’와 안성문화원, 저 멀리 안성종합운동장 등에 가려 이곳에서는 청룡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지막한 청량산(淸凉山)이 주변에 있다. 고장치기에는 도통 낮은 언덕마저 찾아볼 수 없었으니, 어린 박두진은 동네 친구들을 따라 이곳까지 땔나무를 하러 오곤 했다. 유난히 몸이 약한 ‘뒤진이’를 위해 또래 친구들은 낫도 갈아주고, 무거운 나뭇짐도 저만큼씩 앞질러 대신 져다 주었다(‘자연, 인생, 시’). 시인은 이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나중에 고향을 다시 찾을 때마다 고향 친구들의 소식을 물었고, 뜻밖의 반가운 회우도 했고 때로는 덧없는 세월로 인해 서로 서먹해져 슬퍼하기도 했다. “막쇠랑, 북술이랑, 옛날에 놀던 동무 다 어디 가고, 돌이만 나룻 터럭 거칠어졌네.”

박두진 문학관이 지난 11월 16일에 안성맞춤랜드 북쪽 끝자락에 ‘마침내’ 개관했다. 소문을 들은 지도 오래지만, 시인의 20주기(2018년)를 넘기지 않아 다행이다. 박두진의 ‘시’ ‘일상’과 ‘예술세계’라는 주제로 분리한 상설 전시공간에는 시인의 관련 자료와 유품들을 알차게 배치했고 게시물 내용도 잘 고증돼 있다. ‘박두진과 안성’이라는 주제로 개관 기념 특별전이 한창이다. 북카페도 있고 특히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안성의 전경은 그만이다. 남사당 공연장, 천문과학관과 전통공예 체험장 등이 주변에 함께 있어, 소문만 제대로 나면, 이 문학관을 찾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을 듯하다. 마침 방학을 맞아 견학 온 학생들도 일순간 북새통이다. 늘 사람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문화 공간, 이상적인 문학관 모습이다.

시인은 말년에 금강면 오흥리에 작은 조립식 집을 마련한 뒤부터는 주소를 아예 고향으로 옮기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내려와 머물렀다. 박두진의 시 세계는 고향의 자연에서 시작해, 인간과 사회 현실, 역사와 민족에 관한 이해로 강화됐고 마침내 신앙의 세계로 귀착된다. “혹 노년기라는 것이 내게 허락된다면 그때 가서 신에 대한 것을 쓰리라고 작정한 바 있다.”(‘시인의 고향’). 박두진은 이 맹세를 평생 잊지 않았고, 이 ‘집필실’에서 수석시(水石詩) 연작과 종교시들을 완성했다. 고향 안성과 어린 시절의 추억에 관한 산문들도 많이 썼다. “모든 것을 이 고향 땅에서 얻었으면서도 아무것도 이 고향을 위해서 바친 것이 없어 늘 미안해하던” 시인이 자신의 고향에 전하는 마지막 보답이었다.

언덕 위 ‘박두진 집필실’도 자료가 모두 옮겨진 탓에 빈집과 작은 표지석만 남았다. 굳게 잠긴 철문에는 이미 붉은 녹이 잔뜩 피어 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공간을 잘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먼저일 듯하다. 저 넓은 사갑 들판의 ‘하늘바래기’ 논에 물을 대고자 1961년 완공했다는 금강호수, 그 둘레길에 ‘박두진 문학길’이 조성돼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초입에 해당되는 오흥리에는 시인의 여러 시비와 조형물을 조성한 ‘쉼터’도 마련했다.

호숫가 아름드리 미루나무 아래 빈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박두진의 유고 시집 ‘당신의 사랑 앞에’를 이제야 꺼내 읽는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시. “파아랗게 하늘 높고/ 구름 한 점 없고,// 햇덩어리 누엿누엿 서녘으로 기우는/ 노오랗게 붉게 타는/ 해걸음의 강가.// (…) 홀로 걷는 해걸음길/ 알 수 없는 외로움.// 세월이란 무엇이며, 영원이란 무엇일까/ 있음이란 무엇이며/ 없음이란 또한 무엇일까.// 누구일까, 이 지금의 나/ 나라는 나는 무엇일까.// 해 떨어진 노을 언덕 풀밭에 누워/ 별을 보며 달을 보며/ 눈물 글썽이는.”(‘가을, 낙엽, 별’). 대가(大家)의 시어는 늘 간결하고 평이하지만, 그 여운은 길고 생각은 많다. 시인이 쓴 ‘나’라는 글자가 자꾸만 ‘너’라고 읽힌다.

돌아오는 차 안, 호주머니에서 아이 조막만 한 차돌멩이를 꺼낸다. 아까 호숫가에서 발길에 차이는 돌 중에서 햇볕에 유난히 빛나기에 무심코 하나 집어넣었다. “수석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돌이 나를 만나주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여전히 돌은 말이 없다’). 하나 그 깊은 뜻은 아직 모르겠고, 그저 내 깜냥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넘어가는 책장을 누를 문진(文鎭)으로 삼기에는 그만일 듯하다. 무언가 묻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가만 보니 예쁜 돌무늬다. 돌이 참 따뜻하다.

글·사진 = 박광수 불문학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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