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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Fifty+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18일(金)
교단에서 무대로 옮겨와… 아이들과 ‘인생 2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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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봉사단이 지난해 4월 울산 북구 무룡초등학교에서 인형극을 공연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굿네이버스 경남울산본부 울산나눔인성교육센터 제공

울산 퇴직 여교사 7人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봉사단’

퇴직한 50·60代 초중고 교사들
40분공연 위해 수요일마다 연습
1시간 넘게 쪼그리고 앉아 연기

“집에서 놀땐 점점 나태해졌는데
무대 오르면 교단에서처럼 활력
25년 경험 살릴수 있어 더 좋아”

3막의 극 통해 성폭력 예방 교육
비상 상황 대처법 등 알찬 내용
아이들 몰입도 대단…교육효과


평생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퇴직했지만, 여전히 학교를 오가는 영원한 교사들이 있다. 현직에 있을 때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이들의 발길을 학교로 가게 한다. 그런데 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책이 아니고 인형이다. 학교에서 직접 수업을 하기보다는 인형극을 통해 초등학교 어린이 성폭력예방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지역 초·중·고 퇴직 여교사 7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의 이름은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봉사단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인형극 연습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지난 16일 울산 남구 무거동 굿네이버스 경남울산본부 울산나눔인성교육센터. 초등학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교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선생님, 세찬이랑 놀고 있었는데요. 이제 장난 그만 치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들어요. 빗자루로 엉덩이를 막 찌르고요.” “새별이도 좋아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요.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고요.” “세찬아, 친구가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야. 다른 누군가가 세찬이 엉덩이를 찔러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장난치면 기분이 어떨까.”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인형들이 캐릭터의 목소리에 맞춰 입을 벙긋거리며 부지런히 몸을 들썩인다. 이 와중에도 인형을 조종하는 공연단은 무대 밖으로 몸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 잔뜩 움츠리고 있다.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봉사단이 울산지역 학교 성폭력 예방 교육을 위해 벌이는 연습의 한 장면이다.

40분짜리 공연을 위한 연습이지만, 작은 무대에 몸을 숨기고 공연을 하기란 쉽지 않은 듯했다. 제때에 인형을 출연시키기 위해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고, 미리 정해진 동선을 따라 쪼그려 앉은 채 움직이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5분만 쪼그리고 있어도 다리에 쥐가 나고 종아리에 알이 밸 정도로 힘겹다고 했다. 연신 허리를 두드리는 단원도 눈에 띄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차례 반복해서 연습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봉사단 스스로가 그렇게 결정한다. 연습을 더 하느라 시간이 걸려도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시간을 넘게 힘들게 연습을 하고 나온 이들을 만났다.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며 무대 밖으로 나오는 봉사단의 이마에는 하나같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모두 울산지역 초·중·고에서 교편을 잡다가 정년퇴직하거나 명예퇴직한 여자 선생님들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봉사한다’는 한마디에 다 같이 모여 인연을 맺었다. 이날 연습장에서 만난 봉사단은 모두 5명이었다. 나머지 2명은 다른 일로 조금 늦게 연습에 합류한다고 했다.

▲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봉사단이 지난해 5월 울산 북구 상안초등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공연을 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경남울산본부 울산나눔인성교육센터 제공

이중 김영숙(66) 씨는 2016년 2월 농서초등학교를 퇴직한 뒤 2017년 6월에 인형극봉사단에 왔다. 퇴직 후 오카리나 봉사단으로 활동하다, 우연히 인형극 봉사단을 접하고 이곳으로 봉사무대를 바꿨다. 그는 “집에서 놀 때는 나태해지기 쉬웠는데, 봉사단에 나오니 교단에 서는 것처럼 활력이 넘쳐난다. 단체에 대한 소속감도 있고, 무엇보다 25년 6개월 동안 아이를 가르쳐왔던 경험을 계속해서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인형극에서 아이들을 주목시키는 ‘홍이장군’ 역할로, 극의 오프닝을 맡고 있다.

동평중 국어교사를 하다 2016년 2월 퇴직한 윤희순(61) 씨도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퇴직 후 무얼 할까 고민하다 인형극과 강연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중 인형극을 택했다. “인형극을 하다 보니 적성에 딱 맞았다. 다시 아이들을 보니 얼굴에서 웃음이 나고, 마음속에는 활기가 솟았다”며 “집에서 쉴 때보다 인형극 연습도 하고 공연을 하는 게 훨씬 보람되고, 가족들에게도 떳떳하더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윤 씨는 인형극 사회자를 맡고 있어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얼굴을 공개하는 인물이다.

동네 나쁜 형 역할을 맡은 박영희(59) 씨는 28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퇴직 후 삶이 허무하게 느껴져 ‘이건 아니다’ 싶어 진정한 행복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하고자 할 때 찾아온다는 생각에서 인형극 봉사단을 찾았다”는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봉사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많은 학생이 이 캐릭터를 보고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여학생을 괴롭히는 개구쟁이 역할을 맡은 김경미(61) 씨는 2008년에 초등학교를 퇴직했다. 퇴직 후 한동안 휴식을 하다 호기심에 인형극을 배우고 봉사활동까지 하게 됐다는 그는 “집에서 쉴 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웃는 얼굴이라는 점이다. 극에 따라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즐기는 듯한 분위기다. 김영숙 씨는 “인형극은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공연의 취지가 너무 좋아 모든 단원이 연습할 때나 실제 공연을 할 때도 다들 밝고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정에 넘친 이들이 인형극 봉사단을 하기까지는 국내 봉사단체 NGO인 굿네이버스의 역할이 컸다. 굿네이버스 경남울산본부 울산나눔인성교육센터는 2017년 퇴직교사들을 모아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봉사단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지키는 교육을 바탕으로 성폭력 예방을 위한 안전원칙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인형극은 모두 3막 40분으로 구성돼 있다. 1막은 ‘나와 친구 사이의 좋은 선 경계를 지켜줘요’란 주제로 서로의 몸과 마음의 소중함 알기, 신체·정서·물리·언어적 영역 함부로 침범하지 않기 등의 내용으로 꾸며졌다. 2막은 ‘내가 불편한 접촉은 거절해도 좋아요’란 주제로 일상에서의 불편한 접촉 거절하기, 상대방의 거절 수용하기 등의 교육내용이 포함됐으며, 3막은 ‘우리 모두 안전을 위해 실천해요’란 주제로 선물 및 놀이를 이용한 유인 및 성폭력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가르친다.

굿네이버스는 이 내용을 봉사단에게 직접 교육해 2017년 하반기부터 울산지역 초등학교에 성폭력예방인형극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에는 40여 개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했다. 올해는 울산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교육할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성폭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번 3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관람하는데, 반응도 좋다. 사회자 역을 맡은 윤희순 씨는 “아이들이 인형극에 대한 몰입도가 대단하다”며 “극의 전개에 따라 화를 냈다가, 웃었다가 하는 모습을 보면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측도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인형극봉사단을 지원하는 굿네이버스 경남울산본부 울산나눔인성교육센터의 김은정 대리는 “인형극은 20대 봉사자들도 어려워하는 일인데도 퇴직 선생님은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즐겁게 하고 있다”며 “여가가 있다고 해도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우리 선생님들은 모두 솔선수범해 연습도 열심히 하고 열정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 곽시열 기자 sykwa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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