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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18일(金)
언제까지 ‘쇼통’에 기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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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주목받는 탁현민 사의 표명
“밑천 다 드러났다”며 휴가
약발 떨어진 이벤트식 政治

기업인 줄 세우기式 간담회
기자 들러리 세운 기자회견
이젠 成果 보여야 공감 얻어


역대 청와대를 통틀어 한 행정관의 존재감이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지난 7일 사표를 제출하고 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휴가를 떠났다. 이미 지난해 6월 사의 표명을 했을 때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만 일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11월 24일 첫눈이 내리자 야당은 일제히 그의 사표 수리를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탁 행정관보다 임 실장이 먼저 청와대를 떠나는 아이러니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바닥이 났고, 밑천도 다 드러났다”면서 이번에는 누가 만류해도 떠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젠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설 듯하다.

여성 비하 논란으로 청와대 입성 때부터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 등에서 사퇴 주장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그를 놓지 못했고, 되레 그를 사퇴시키라는 장관만 먼저 물러났다. 지금까지 형성된 문 대통령의 ‘선하고 의리 있고 소통하는 이미지’가 대부분 탁 행정관의 탁월한 기획력 덕분이라는 데 여권 핵심의 누구도 이견이 없다. 지난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의 ‘도보 다리 회담’과 3차 평양 정상회담, 각종 기자회견, 공식 행사 등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오죽했으면 야당에서 “청와대에서 딱 한 사람 가져오라면 무조건 탁현민”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비슷한 이벤트가 반복되면서 문 대통령의 선한 이미지는 독선(獨善), 의리는 내 사람만 쓰는 아집, 소통은 ‘쇼통’으로 드러나면서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80%에 이르던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한 것이 객관적인 수치다.

문 대통령은 연초 들어 ‘혼밥’ ‘불통’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2일 중소기업회관에서 신년인사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7일 청와대에서 200여 명의 중소·벤처기업인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10일에는 청와대 출입기자 200명이 모인 가운데 타운홀 미팅 방식의 신년기자회견을 했고, 15일에는 130명의 대기업 및 대한상의 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2019 기업인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들 행사 모두 문 대통령이 주연(主演)이고 기업인이나 기자들은 조연에 불과했다. 이런 장면들은 ‘문 대통령이 여론과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하고 있구나’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번 행사들을 보면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언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5일 대기업 회장 초청행사만 해도 한진, 부영, 대림을 제외한 대기업 회장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65분간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난센스다. 대화는 10명이 넘어가면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런 모임도 한두 마디 하다 보면 끝이 나는데 130명이 무슨 대화를 나누겠는가. “요즘 반도체 경기가 어떠냐”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등 추상적이고 의례적인 대화만 오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의 애로 사항은 이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처럼 기업의 의견을 수렴해 수십 차례 정부에 전달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몇몇 대기업 총수를 따로 만나든지 개별 면담을 하면 될 일인데 무슨 토크쇼 하듯이 바쁜 총수를 전부 불러 놓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적이다.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텀블러를 하나씩 받아간 회장들은 이 문구가 무엇을 압박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불가피한 해외 출장 때문에 CEO가 참석하지 못한 일부 회사는 벌써 뒷말이 나오는 것도 비정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자동차 빅3 CEO,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 기업 CEO 5명, 록히드마틴 등 12개 주요 대기업 CEO 등 경제 이슈 중심으로 관련 업종 CEO 몇 명만 불러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진짜 간담회’를 했다. 문 대통령도 한 번에 모든 기업을 다 만날 것이 아니라 수시로 업종별, 이슈별 기업인들을 만나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고 해결책도 제시해야 한다. 현장 목소리를 듣기만 할 뿐 정책 수정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난해 1월 문 대통령은 ‘내 삶이 달라진다’는 문구가 적힌 백보드를 배경으로 신년기자회견을 했지만 1년이 지난 뒤 똑같은 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무슨 자신감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탁 행정관의 사의와 함께 쇼는 끝이 났다. 이젠 성과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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