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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21일(月)
‘파격적 매화’ 그린 우봉… 추사 등과 조선후기 르네상스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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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룡 홍매(대련), 종이에 담채, 각 127×30.2㎝, 서울 개인소장
추사와 ‘미학적 입장’ 달랐지만
상호 이해·존중속 함께 꽃피워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이겨내고 맑은 향기를 풍긴다.

전에 없던 미세먼지가 매콤하게 코를 찌르고 희뿌옇게 눈을 가리고 사람들은 공약을 남발하며 약속을 안 지켜도 자연은 시간을 비켜서지 않는다. 이른 봄 아니 조금 서두른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매화는 추위를 뚫고 꽃을 피워올려 곧 봄이 올 것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희망을 가지란 뜻일 게다. 남녘에는 봄을 기다리는 성질 급한 민초들을 달랠 생각으로 매화가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행장을 꾸려 당장 탐매여행을 떠날 처지는 못되니 우봉 조희룡(1789∼1866)의 매화 그림을 떠올리는 호사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조희룡은 조선 후기 수많은 문인 묵객의 마음을 빼앗았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매화에 심취해 매벽(梅癖)에 빠져 살았다. 그가 남긴 작품 중 대부분은 매화로 특히 빼어난 것이 많지만 그중 백미는 ‘홍백매대련’이다. 그의 이 작품은 절제되고 단아한 매화가 아니라 호방하고 힘이 넘치는 서양의 표현주의나 야수파를 연상시킬 정도로 파격 그 자체다. 나무는 나이 먹어 뒤틀린 고목이지만 용틀임하듯 가지를 뻗어내며 꽃을 토해내듯 피워낸다. 단숨에 내달리듯 붓을 들어 그려내는 매화나무는 중간중간 미처 먹이 배어들 틈이 없어 획의 일부가 비어 있는 여백 또한 특별하다. 화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듯 그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두 폭이 묘하게 한 폭을 이룬다.

조희룡은 고람 전기(1825∼1854), 유재소(1829∼1911), 유숙(1827∼1873) 등과 같은 중인 출신으로 통역, 의사와 같이 탄탄한 직업을 가진 중인계급들과 어울리며 계모임인 ‘벽오사’를 꾸려 그림과 글을 그리고 썼다. 당시 정조, 순조, 헌종 연간에 상공업이 발달하고 경기가 좋아지며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 그들이다. 이들은 벼슬을 살지 않는 일반백성으로 사대부들과 달리 자유롭고 격의 없는 글과 그림으로 새로운 문화를 이끌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조희룡은 당시 이런 여항인의 중심에 섰던 ‘묵장의 영수’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제자라고도 알려졌지만 추사와는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데다 생전에 추사와 교류했지만 스스로 “스승을 따로 둔 적은 없다”고 할 만큼 자존감이 강했다. 또 둘의 미학적 입장은 너무나 다르면서도 같았다. 추사는 그림의 바탕에 ‘문자향’ ‘서권기’를, 우봉은 ‘재주’를 으뜸에 두었다. 우봉은 자신의 ‘석우망년록’에 “글씨와 그림은 손재주다. 재주가 없으면 비록 총명한 사람이 종신토록 배워도 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손끝에 있는 것이지 가슴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추사의 예술관이 관념적이고 사의적이라면 우봉은 그 반대편에 있었다. 1849년 여름, 우봉은 여항화가 14명과 함께 고람 전기의 이초당에 모여 추사를 초빙해 7회에 걸쳐 작품품평회를 열었다. 이때 유재소의 ‘추수계정도’를 보고 추사는 “원나라 문인의 화풍을 따르는구나. 그러나 문인화의 법도는 따르지 못하고 형식만 취했다”고 했으나 우봉은 “가을 국화인 양 아담한 사람이구나. 먹은 또 천연스럽구나. …언덕과 골짜기에 시로써 다니는구나”라고 평했다.

문화란 이렇게 다른 것들이 만나 부딪치지만 소리 나지 않고 공존하는 아량이자 이해이며 존중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추사와 우봉은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며 김구가 꿈꿨던 문화국가의 본령이다. 그런 점에서 2019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문화’란 두 글자가 기껏해야 스포츠와 각종 문화시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수준에서 다뤄진 것은 실망스럽다. 물론 그보다 긴박하고 시급한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적어도 집권 3년 차라고 하는데 이 정부의 문화정책은 여전히 미세먼지가 덮인 하늘처럼 오리무중이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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