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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23일(水)
層구분 무너뜨린 ‘마술계단’… 상업공간의 신세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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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전체를 연결하며 공간의 주역이 된 런던 로이즈의 에스컬레이터. @Lee Pelling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⑫ ‘공간의 연속성’ 구현하는 에스컬레이터

움직이는 레일에 몸싣는 방식
‘수직이동’엘리베이터와 달리
주변환경 유연하게 체험 가능

런던 백화점에 처음으로 설치
매장 전체 한눈에 볼수있게 돼
쇼핑 공간 폭발적으로 늘어나
미술관 ·철도역 등 적용 확대

서울 센트럴시티 근처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두세 걸음만 걸으면 문도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바닥과 바닥 사이를 움직이며 운송하는 계단인 에스컬레이터는 기능적으로는 교통 시설이다. 따라서 이 작은 카페는 교통 시설에 직접 이어져 있다. 20세기 초 근대 건축가들은 공간의 연속성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이러한 일상의 작은 풍경 속에서도 에스컬레이터가 만들어 주는 공간의 연속성을 얼마든지 경험하며 살게 됐다.

에스컬레이터는 가만히 서 있어도 건물의 층과 층을 이동하는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여서 비스듬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기능이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에 에스컬레이터는 ‘경사 승강기’라 불렸으며, ‘이동계단’ ‘마술계단’이라고도 불렸다. 이런 기계에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고 이름 붙인 것은 1900년이었다. 이 이름은 라틴어 ‘e’(~로부터)와 ‘scala’(사다리)에 ‘-or’를 붙여 만든 조어인데, 직역하면 ‘~로부터 사다리처럼 가로지르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자동계단’(自動階段)이다. 그러나 본래 이름에는 자동이라는 뜻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용어가 오티스사(社)의 등록상품명이 됐고, 이제는 보통명사가 됐다. 확대하다, 증가하다는 ‘escalate’라는 동사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온 단어다.

엘리베이터 1대로 1시간에 약 400~500명을 운송한다. 그러나 계속 움직이며 사람을 태우는 에스컬레이터 1대는 1시간에 엘리베이터의 약 15~20배인 6000~9000명을 수송할 수 있다. 그래서 계산상으로는 전 세계에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4일간 움직이면 세계 인구 전체를 이동시킬 수 있다. 이런 에스컬레이터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기계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크고 비싼 기계의 하나다. 에스컬레이터를 높이 5m에 설치하는 데 6000만 원 정도 소요되므로,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를 하루 몇 개 이용하기만 해도 우리는 엄청난 고가의 기계를 타고 다니는 셈이다.

엘리베이터는 움직이는 상자를 타고 내리는 것이지만,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움직이는 레일 위에 몸을 싣는 방식이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는 층과 층을 분절하지만, 에스컬레이터는 흐름이 정체하지 않게 끊겨 있는 층을 연속적으로 이어준다. 게다가 오르내리면서 주변의 공간을 유연하게 체험하게 해 준다. 엘리베이터가 타고 내리는 지점만 중요한 지하철과 같다면, 에스컬레이터는 버스를 타고 길의 풍경을 연속해 바라보는 것과 같다.

▲  장대한 포물선 곡면의 공간을 움직이는 카나리 워프 역 에스컬레이터. @김광현

에스컬레이터처럼 생겼지만, 수평면 또는 경사면을 천천히 움직이며 사람을 이동시키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데 이를 ‘무빙워크’라고 한다. 영어로는 moving walkway, moving sidewalk인데 우리말로는 자동보도, 이동보도, 자동길이라고 한다. 그래도 넓은 의미에서는 에스컬레이터의 한 종류다. 무빙워크가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는 한쪽에는 의자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사람이 걸어 다녔다. 1900년 파리박람회에는 1시간에 10㎞ 가는 무빙워크가 설치됐는데 이제는 지하철역이나 공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비스듬한 무빙워크는 카트를 많이 사용하는 대형 마트에 주로 설치된다.

1898년 영국 최초로 런던 해로즈(London’s Harrods) 백화점에 ‘움직이는 계단’이 설치됐다. 1891년에 발명한 에스컬레이터가 불과 7년 후에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백화점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과 같이 계단이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고 224개의 가죽 조각을 이어 만든 연속 벨트를 사용한 것이어서, 신문은 이를 “거의 느낄 수 없는 동력으로 올라가는 속세에 내려진 주단”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직원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움직이는 계단’을 다 올라온 손님들에게 후(嗅)자극제와 코냑 한 잔을 주어 정신이 들게 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층 건물을 만들었다면, 에스컬레이터는 백화점을 만들었고 에스컬레이터 없이는 백화점이 성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초의 에스컬레이터는 모두 불특정 다수에게 열린 상점이었던 백화점에 설치됐다. 익명의 소비자들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고안된 백화점 한가운데 에스컬레이터를 놓아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매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줬다. 이로써 위아래의 바닥이 균일하게 통합됐고 가고 싶은 바닥을 선택할 수 있게 됐으며, 이에 따라 상품이 층별로 배열됐다.

근대에서 주거에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적 요건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사람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였다. 그러나 오래된 계단을 에스컬레이터로 대체하고 쇼핑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제시한 것은 건축가가 아닌 오티스라는 회사였다. 사람들은 건축가가 천창에서 빛이 비치도록 열심히 구상한 화려한 대계단이 아닌 에스컬레이터라는 기계적인 이동수단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건축가가 모든 것을 발명하고 제안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이 기계는 고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동시켜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 줬다.

그래서 유명 에스컬레이터 제조사는 이렇게 광고한다. “당신이 설계한 유명 쇼핑센터나 백화점의 주말을 상상해 보세요. 수천 명의 고객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그들이 쇼핑할 시간은 더 많아집니다. 손님과 상품이 잘 움직인다면 당신 사업도 잘 움직이는 겁니다.” 이렇게 에스컬레이터는 상업공간과 같은 말이 됐다.

근대 건축은 내부를 외부와 격리해 더 깊고 더 많은 층을 인공으로 조절하는 오늘날의 건축공간을 만들었다. 그 주요 요인은 에스컬레이터, 에어컨, 인공조명이었다. 이것들은 근대 엘리트주의적 건축가들이 무시했던 상업공간을 어마어마하게 확장해 줬으며, 이것을 하나의 연속체로 경험하게 해 줬다. 이런 환경은 쇼핑센터만이 아니라 공항, 미술관, 철도역이나 지하철 등 많은 빌딩 타입으로 확대됐다.

1910년대 이전에는 근대 도시가 어떠해야 하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이탈리아의 미래파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는 불과 26세에 ‘새로운 도시’(Citta Nuova·1914)라는 프로젝트에서 도시를 몇 개의 층으로 나뉜 교통망, 비행장이나 철도역, 통신탑 등으로 표현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건축과 도시 공간을 교통, 정보, 사람의 흐름으로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2년 후인 28세에 전사했다). 그중 한 계획안에서는 비행기 활주로에 내린 승객이 역의 가장 높은 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단숨에 내려와 가장 아래에 있는 철도역의 플랫폼에 도달하고 여기에서 다시 군중이 돼 도시 각지로 흩어져 갔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상상은 현실의 도시 속에 들어와 있다.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런던의 지하철 주빌리 선의 카나리 워프 역(Canary Wharf station)은 마치 종교 공간과 같다.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은 장대한 포물선 곡면을 한 캐노피의 유리 돔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감싸여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듯이 움직인다. 지하철 입구에 놓인 이 에스컬레이터 공간은 크기와 분위기가 바실리카 대성당이 세속과 만나는 교차점처럼 보인다. 지하철역에서 타고 다니는 사람과 에스컬레이터라는 기계가 이렇게 장대하게 결합될 수 있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설계한 세계 최대의 보험시장인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 본사 건물은 오피스 공간이 높고 넓은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있다. 그중 지하 2층에서 지상 6층까지 보험을 계약하는 낮은 층은 에스컬레이터가 오피스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노란색의 구동하는 부분을 투명하게 노출하며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노출된 서비스 정신, 바쁘게 일하는 공간 속의 역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은 광대한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층을 달리하며 바라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건물 전체를 연결하는 공간의 주역이다.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는 아예 건물 밖에 튜브로 덮인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천천히 타고 오르며 가고 싶은 층에서 내린다. 건물 안에 계단이나 설비 샤프트를 두지 않고 내부 공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1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700만 명에게 파리라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게 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자기 몸을 바로 밑에 있는 땅과 관련을 맺으며 도시에 펼쳐지는 새로운 조망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는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느끼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체험이다. 그래서 퐁피두센터의 에스컬레이터는 파리의 풍경과 몸의 관계를 강력하게 맺어주는 ‘움직이는 카메라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에스컬레이터는 오랜 도시의 풍경도 살려낸다. 중세의 도시 톨레도(Toledo)에는 주차난을 해결하려고 언덕 밑에 마련한 주차장으로부터 여행객을 실어 올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언덕의 측면에 숨겨진 채 설치됐다. 에스컬레이터가 지형에 어울리게 높이 36m인 곳을 6번 꺾이며 올라온다. 이 덕분에 도시의 풍경을 해치기는커녕 퐁피두센터의 에스컬레이터처럼 가로막힘 없이 광활한 중세 도시의 경관을 연속적으로 체험하게 해 준다.

에스컬레이터는 이처럼 경사가 심한 지대에 유효한 교통 수단이 되는데, 이것을 가장 잘 적용한 곳은 역시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Mid-Levels Escalator)다. 800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 중 하나다. 계속 이어진 23개의 에스컬레이터가 고저차 135m가 되는 경사지에 사는 주민의 발이 되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고 이 시간이 지나면 아래에서 위로 움직인다. 그래서 20여 분 타고 다니는 이 에스컬레이터를 법적으로 교통 기관으로 보고 있다. 부산광역시도 이를 참고로 거동이 불편한 고지대 주민들을 위해 가파른 고층 계단에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에스컬레이터는 작고 약한 일상의 생활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스듬히 이어지는 경사로는 내부와 외부를 잇는 아주 효과적인 수법이다. 근대 이전에는 당연히 건물 내부는 층으로 구분돼 있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가 건물 안에 들어오자 공간은 원활하게 연속하게 됐다. 끊긴 영역이 연속돼 환경의 크기를 확장하며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정치철학자이자 건축가였던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수평은 전원에서 펼쳐지는 농업사회를 나타내고, 수직은 상하로 이동하는 공업사회에 대응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정보사회는 대각선으로 이동하는 세계가 된다고 했다. 비스듬히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의 이동 속에 이런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미래 사회의 새로운 이동공간을 상상해 보자. (문화일보 1월2일자 27면 11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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