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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주필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23일(水)
문 정권의 ‘민심 난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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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손혜원 사태 대응 民心과 괴리
탈원전·소득성장은 靑盲 수준
특보 출신 선관위원 포기해야

日 민주 ‘39개월 천하’ 타산지석
과잉 복지와 反기업, 脫歐入亞
佛사회당·英자유당 폭망도 흡사


정치권력이 가장 경계해야 할 병은 ‘민심 난독증(難讀症)’이다. 발병 1기 때는 듣기 좋은 얘기만 듣고 거슬리는 얘기는 피한다. 집단사고가 지배하기 시작한다. 2기가 되면 적극 반박에 나선다. 상대방 의도를 의심하고 음모론으로 몰거나 법률 대응도 불사한다. 3기 때는 비판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부득이 듣고 보는 시늉을 하더라도 수용할 생각은 없다. 문제가 속출하고 민심 이반이 확산되지만, 이젠 밀리면 끝이다. 버티면서 다른 문제로 덮는 게 상책이다. 말기인 4기 때는 현실보다 역사와의 대화를 즐긴다. 분노를 삼키고 언젠가 훌륭한 업적으로 재평가받을 날을 소망하며 퇴장한다.

손혜원 사태와 김태우·신재민 폭로에 대한 대응에서 문재인 정권은 2기 말이나 3기 초 경향을 보인다. 손 의원이 지난 20일 탈당 회견을 할 때 여당 원내대표가 동석한 것은 민심 난독증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손 의원은 일찌감치 음모론을 제기했다. 원내대표는 “만류했다”, 손 의원은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탈당이 쇼임을 자인한 셈이다. 손 의원의 전 보좌관이 문 대통령의 서울 사저를 매입했다는 야당 주장에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같은 날 김태우 수사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 폭로를 이어간 데 대해서도 대변인은 “아예 보지 않았다”며 무시했고, 관련 비서관은 “사실무근”이라고 잘랐다.

탈원전에 대한 태도는 난독증도 넘어 청맹(靑盲) 수준이다. 탈원전의 문제점은 과학적 근거와 함께 수없이 제기됐다. 국민 여론도 압도적으로 비판적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공론화를 거쳤다”고 거짓말을 하고, 원전 생태계가 무너져내리는데도 문제없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부터 동네 편의점과 식당까지 모두 어려운데, 청와대도 경제 부처도 요지부동이다. 미국과 북한이 핵 동결을 전제로 ‘스몰딜’을 함으로써 최악의 안보 상황이 올 수 있지만, 청와대는 ‘환영’ 논평을 냈다. 대선 캠프의 ‘공명선거 특보’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에 앉히려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권력엔 민심 난독증 증상이 있다. 박근혜 정권을 몰락으로 이끈 것이 바로 이 질병이다. 민심을 추종하기보다 이끌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권력의 문제점이나 정책 비판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하게 듣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이 심판한다. 현대 정당사에서 극적으로 몰락한 정당으로 영국 자유당, 일본 민주당, 프랑스 사회당이 있다. 모두 포퓰리즘과 난독증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 민주당은 타산지석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일본판인 내수 주도형 성장, 반(反)기업 친(親)노조,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중학생 이하 월 2만6000엔 자녀수당, 공립고 무상교육, 월 7만 엔 최저연금, 75세 이상 무상 의료, 토건사업(SOC) 축소 등을 공약했다. 중국을 중시하는 탈구입아(脫歐入亞) 노선으로 미·일 동맹도 흔들렸다. 집권 초 지지율이 70%를 넘었으나 불과 39개월 만에 자멸했다.

민심 난독증의 또 다른 심각성은 준비 안 된 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문 정권도 2016년 총선 직전까지 당시 여당의 개헌선 위협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약했다. 그런데 박 정권의 ‘자망(自亡)’ 탓에 취임 준비 기간도 없이 집권했다. 같은 맥락에서 문 정권의 급락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 야당은 집권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이다. 만약 내년 4월 총선에서 선전하고 2022년 3월 대선에서 승리해도 이명박 정권 초기의 광우병 파동, 박 정권 시기의 세월호 참사 때보다 훨씬 강력한 반대 투쟁이 일어나고, 제대로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또 무너지고, 미숙한 정권이 들어서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청산의 진폭은 커지고, 한(恨)은 깊어지며, 나라는 축적 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치 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 문 정권이 민심 난독증에서 벗어나는 게 정권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 그래야 재집권이든 20년 집권이든 꿈꿀 수 있다. 이를 위해 여당부터 청와대 2중대에서 벗어나 입법부의 중추로서 행정부 견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개헌 없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정하는 지름길도 된다. 문 대통령도 정파를 초월해 정책과 인사를 운용해야 임기 말 참사를 피할 수 있다. 그것이 단임 대통령제 헌법의 명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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