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2년새 30% 오른 최저임금… 이젠 線 그어야할 단계 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상황 진단과 함께 노사관계의 패러다임 변화 필요성, 최저임금 대안, 양극화 해소에 대한 정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 위원장은 “올해는 노사가 마음을 열고 저성장시대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동훈 기자 dhk@

-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최저임금 국민토론회 일찍 열어
자영업자 등의 의견 수렴했어야
효율적 논의 없어 결국은 ‘파행’

받는 사람 · 줄 사람 모두 어려워
All or Nothing 게임하지 말고
상대 인정하면서 문제 풀어가야

[인터뷰 = 이민종 사회부 부장]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은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 2006년 2만 달러 돌파 이후 12년 만이다.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소득 3만 달러를 넘는 ‘30-50클럽’ 국가로는 세계 7번째다. 가발을 수출하기 위해 머리 기르기 운동을 하던 최빈국(最貧國)시절을 떠올리면 ‘샴페인’을 터뜨리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주위엔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실물경기는 어느 때보다 더욱 싸늘하다. 저출산·고령화 속에 주력산업의 쇠락(衰落), 내수부진, 외끌이로 경기를 힘들게 견인해온 수출 부진 조짐, 최저임금 갈등, 뿌리 깊은 노사 대립주의,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고용부진과 골이 깊어지는 임금 격차, 사회 전반의 양극화, 가계부채 등은 한국경제가 헤쳐가야 할 앞길이 얼마나 험로인지를 보여준다. 한때 ‘전투적 노동운동의 대부’로까지 불렸다가 지금은 평행선을 긋고 있는, 노사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된 문성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장관급)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까. 문화일보가 그에게 심층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노사정 사회적 타협모델로 관심을 끈 경사노위의 수장으로부터 새해 노사정 관계가 좀 더 생산적이고 대화, 협력의 기조로 전환해 경제 전반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해 보고 싶어서였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경사노위 집무실에서 만난 문 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본격 저(低)성장기에 진입했다고 본다. 고도성장기 때의 노사관계와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말 폐암 수술을 받은 문 위원장은 건강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질문에까지 신경을 쓰며 진지한 태도로 2시간이 넘는 인터뷰에 임했다. 문 위원장은 “나는 노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나이(1952년생)도 들고 경험을 했으니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는 게 전체 우리 사회의 협력적 구조를 원활하게 하는 데 있어 작은 밑거름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제 상황과 노사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경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7%를 기록했다. 30만∼40만 명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취업자 수 증가 폭도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지난해 경기, 고용전망은 고도 성장기에나 가능했던 타성적 진단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를 경기 순환적 요인이나 정책실패로 진단해선 안 된다고 본다. 이제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저성장 시대엔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노사관계도 본격적으로 구조적 전환기에 놓인 만큼 고도 성장기 시절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제조업의 주력인 자동차·조선·철강 업황이 모두 어렵고 이들 산업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경제도 똑같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런 문제들을 현명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 2019년은 노사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전환기적인 한 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본 결과다.”

―지적한 대로 제조업 부진이 심각하다. 경사노위의 역할도 중요한데.

“조선업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 수준이 100이라면 지금 수준은 70∼80에 불과하다. 그래도 중국에 선박을 주문했던 대형선사들이 중국 제품이 엉망이라며 다시 한국을 찾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형 조선소 못지않게 중·소형 조선소 역시 중요하다. 중·소형 조선소를 어떻게 살리고 고용을 늘릴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자동차 산업도 미래형 자동차·수소차·자율주행차로 가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 조건을 보면 가능할지 회의적이다. 울산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미래형 자동차 산업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전기차·수소차·자율주행차는 완성·조립보다도 부품이 더 중요한데 현재 대한민국의 부품 산업은 어떤 모습인가. 조립차 공장의 노사관계, 임금구조, 혁신역량을 보면 완성차를 만들 수 있다고 엄두가 나겠는가. 현장을 보면 정말 심각하다. 미래형 자동차 부품 생태계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연구·개발(R&D)이 필요한데, 중소 부품 업계는 대부분 대기업에 종속돼 있거나 R&D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미래형 산업과 청년 일자리, 지역 경제를 포괄하는 집단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경사노위는 그런 논의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다.”

문 위원장은 자동차·선박·중장비·철강·엔진 등 금속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산업별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 2대 위원장을 했다.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은 점을 토대로, 인터뷰 중 수시로 자동차산업 등을 예로 들며 논리적 근거의 잣대와 틀로 제시했다.

―2년 연속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견해는.

“언론이 최저임금 때문에 경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최저임금이 지닌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작금의 경제 상황이 꼭 최저임금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다. 난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자주 찾는다. 2, 3년 전부터 창원·울산·거제 등 현장을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지역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초부터는 급격한 속도로 고용이 줄고 소득 분배가 악화했다. 이미 경제가 상당히 구조적으로 어려워져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까지 급격히 올라 영세 소상공인, 중소기업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나.

“2017년 하반기부터 최저임금 1만 원 국민 대토론회를 광화문에서 열었어야 했다. 중소기업, 영세 소상공인 등 정책과 연동된 주체 모두에게 현안에 대한 의견, 전망, 처지를 솔직히 들었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최저임금 1만 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용이 들지 않겠는가.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은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지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비용의 3분의 1은 정부, 3분의 1은 노동자, 3분의 1은 사용자가 부담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문제는 결국 교섭을 통해 풀린다. 교섭에 필요한 조건은 상대방 입장에 대한 이해다.”

그는 이 대목에서 과거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각성’에 관한 뒷얘기를 들려줬다. 금속노조에 가입해 노동운동을 하던 때 임금인상 교섭을 위해 사업주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 하는데 밖에서 “승리하자”라는 구호와 외침이 들리더란다. 문 위원장의 뇌리엔 퍼뜩 ‘노동계가 승리하자고 외치면 사업주는 내가 패배하는 거냐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임금 인상을 사용자를 굴복시키는 과정으로 보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그는 곧바로 사업주에게 “앞으로 집회과정에서 승리 같은 말을 쓰지 않겠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이후 문 위원장이 교섭에 나선 사업장에서는 단 한 건의 파업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 위원장은 “임금을 인상하면 사업주도 분명히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투쟁 일변도로 가는 건 맞지 않는다. 회사가 어렵다면 협력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데, 그걸 외면하고 싸우면 안 된다”고 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속도 조절과 함께 부작용 해결 취지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를 이원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는데.

“우선 지난해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을 놓고 효율적인 논쟁을 했느냐부터 접근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했다. 2018년 최저임금이 경제가 어려워진 조건에서 전년 대비 16.4% 올랐는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들은 처음에는 힘이 들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 오른 최저임금이 집행되는 과정을 겪어보니 어려움을 체감하게 됐다. 그래서 산입범위를 넓혔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처지에선 당연한 제안이다. 문제는 그게 합리적 수준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2019년도 최저임금을 얼마나 올릴지 논의에 착수했을 때 노동계 입장은 1만 원까지의 인상에서 변함이 없었다. 경영계는 합리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보이콧을 했다. 노동계는 산입범위 확대를 전면거부했고, 국회는 소상공인들의 얘기를 듣고는 산입범위를 대폭 넓혔다. 노동계는 당연히 반발했다. 이런 걸 지켜보면서 올해 최저임금 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이 많다.”

―합리적인 대안이 있나.

“지난해에 최저임금 결정이 파행으로 치달은 원인에는 공익위원들의 편파성, 경영계·야권의 문제 제기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구간설정위원회 설치는 정부의 중간적인 입장인 셈인데 그렇다고 지금 구간설정위를 두는 게 과연 급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로 시간을 두고 풀자는 태도지만 경영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노동계는 산입범위를 지난해 넓혔으면, 통상임금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이제 그걸 두고 어떻게 할 거냐를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카드 수수료 인하, 임대차, 프랜차이즈 수수료 인하 등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사용자, 노동자 어느 쪽의 편을 들어주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올해 논의는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아직 시간이 많다. 좀 더 폭넓은 이야기를 했으면 싶다. 나 역시 금속노조위원장을 하면서 최임위 근로자 위원을 지냈다. 최임위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떤 해엔 사용자가, 어떤 해엔 노동계가 퇴장해 남은 이들이 공익위원과 논의하는 일이 반복됐다. 최임위 위원 때 나는 그러지 말고 노사끼리 이야기를 충분히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대체로 노동계는 두 자리 숫자의 인상을,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한다. 최임위에서는 서로 양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최저임금 받는 사람과 줄 사람 모두 어려우니, 총체적 여건을 개선하려면 얼마나 최저임금을 올리느냐만 놓고 싸우지 말고, 법·제도로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7개국뿐인 3만 달러 소득 국가가 됐다면 전부냐, 제로냐, 양자택일 식의 ‘All or Nothing’ 게임을 하지 말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저성장기에 접어든 경제 조건에선 이게 합리적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경사노위 인근을 산책하며 노사정 관계를 어떻게 풀지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그는 “고용유지와 투입비용에 대한 사회적 분담을 고민하고 불필요한 산업의 잉여인원 재배치에 따른 안전망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떨친 문 위원장 뒤편으로 묵묵히 일하는 노동의 숭고함을 형상화한 공공미술작품 ‘해머링맨’이 묘하게 자리해 있다. 김동훈 기자 dhk@

“勞, 투쟁 DNA 벗고 低성장기 경영계 어려움 이해해야”

―최저임금이 더 많이 올라야 한다고 보나.

“이제 최저임금 논의는 실질적으로 정리가 됐다고 본다. 2년간 거의 30% 가까이 올랐다. 두 자릿수로 올리지 않아도 대통령 임기 내에 1만 원 달성이 가능해졌다. 여전히 노동계는 많이 올리고 싶어 하지만, 적절한 선을 그어야 할 단계에 왔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과정에서 상여금, 복리후생비용이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등 임금 체계 관련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가닥이 잡혔다. 카드 수수료 개편, 임대차 비용, 프랜차이즈 문제 등을 두고 사회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다. 이런 게 단계적으로 해결 절차를 밟으면 최저임금 문제는 더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며 마지막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가 최저임금이었다. 2~3년이 더 지나면 최저임금 연봉 총액이 2500만 원이 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본다. 그때부터는 최저임금 인상 대신 물가수준을 조절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언론이 최임위가 안고 있는 문제를 많이 지적해 인상 속도를 조절하게 됐고, 카드수수료 개편 등의 성과가 있었다. 최임위도 복잡한 구조를 지닐 필요 없이 ‘임금구조위원회’로 개편돼 차별임금을 없애는 기구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11월 22일 출범한 뒤 문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관심을 기울인 경사노위는 ‘개문발차(開門發車)’ 논란을 겪었다. 한국노총과 함께 양대 노총의 한 축을 이루는 민주노총이 불참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노총의 빈자리가 아쉽다”고 사실상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노총 출신인 문 위원장은 눈물까지 보이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는 시대적 의무다. 꼭 참여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노조의 기득권 향유 문제, 노동운동의 지향성 쪽으로 질문을 돌렸다.

―민주노총이 아직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결국, 경사노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보다 앞서) 더 시급한 게 한국노총의 역할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문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문제 등이 다뤄진다. 이미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2월 국회에서 해당 사안이 마무리돼야 ILO 100주년 행사와 연동도 가능하다. 문 대통령도 ILO 100주년 행사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ILO 핵심 협약 비준 문제는 공무원노조, 전교조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이 사안은 애초 당·정·청이 지난해 말에 합의하기로 했지만, 경사노위로 옮겨져 사회적 대화를 통해 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역할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 삐걱거려 사회적 대화가 잘 안 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면 안 된다.”

―오는 28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나.

“민주노총 산하노조의 주력은 자동차·조선·철강 등 제조업이다. 노사정이 미래를 공동으로 설계해야 한다. 자동차산업만 해도 노사 간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숱하다. 수소차 등 자동차 산업 인프라 조성, R&D, 특히 부품 R&D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하루빨리 경사노위에 참여해 책임 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자동차·조선·철강 산업의 애로사항을 풀기 위해서도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들어와야 한다. 민주노총이 이번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변화하길 바란다. 민주노총 내부엔 아직도 전면적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 대의원대회에선 투쟁보다 교섭을 원하는 세력이 힘을 얻지 않을까 예상한다.”

―민주노총에 권고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싶다.

“민주노총은 1995년 합법적 지위를 얻기 전까지 상당한 탄압을 받았고 그로 인해 ‘투쟁의 DNA’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 또한 노조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조는 노동자의 요구를 모아 교섭을 진행하고, 교섭이 안 되면 단체행동을 하고, 단체행동을 하다가도 교섭을 통해 문제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 노조는 투쟁만 하는 조직이 아니다. 노조의 본질은 투쟁과 교섭의 병행이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경사노위 참여로 결론을 짓더라도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는 경제적 영향을 받는다. 조선소만 해도 선박이 잘 팔리면 노조는 성과급을 달라고 사업주에게 얘기한다. 반면 상황이 어려워지면 회사가 거꾸로 성과급을 깎자고 나온다. 이런 식의 줄다리기는 기업별 노조 차원에선 다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경제 상황 자체가 고도성장기가 아니라 저성장기여서 공세적 요구를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이런 배경, 조건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요구만이 전부가 아니라 저성장기에 접어들면 경영계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걸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이해 없이 요구할 건 요구하겠다고 나오면 경사노위로 들어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을 겪을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양극화다.

“3만 달러 소득에 진입했다 해도 실제로 가구를 살펴보면 그렇게 벌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소득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중에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얼마 되지 않고 나머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10개 중 2개만 좋은 일자리이고 나머지는 안 좋은 일자리다. 격차가 벌어져 있다. 청년들의 미래가 사라졌다. 다들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과거엔 차를 한 대 팔아도 가격경쟁력을 위해 대기업은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았고 중소기업은 원가를 절감해야 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과 더불어 함께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양극화 문제에서 거대노조가 자유롭지 않다. 거대노조의 기득권 문제, 일자리 세습 등도 비판을 받았다.

“노사 모두 양극화, 격차가 벌어진 데 책임이 있다. 일자리 세습은 내가 노조 활동을 하던 때에는 모범단체협약에 담겨 있을 정도였다. 그 뒤로는 세상이 바뀌어 문제가 됐고 많은 사업장에서 없애고 있다. 그런 조항이 있든 없든 내 자식을 내 자리에 넣기가 어려워졌다. 청년 일자리 부족 현상이 심각한데 그렇다고 기득권을 쥔 대기업 노조가 기득권을 내놓아야 한다,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모두가 해야 한다. 노조를 했던 이들 중에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가진 이들이 나누고 기업도 잘될 땐 사회적 기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도 수출 대기업 위주의 고성장보다 격차 문제를 어떻게 좁힐지, 정책을 짜야 한다. 아울러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미래형 자동차 산업으로 나아가는 테스트 베드이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통한 상생의 구조를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청년이 월급으로 자기 집을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안정적 노사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노동계에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설득할 복안은 있는지.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는 탄력적 운영과 맞물린다.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300시간, 프랑스는 1500시간 수준이다. 우리도 2000시간 내로 진입했고,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당연히 탄력 근로제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임금을 유지하는 게 목표이고, 경영계는 생산성 유지를 위해 탄력 근로제 운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두고 양대 노총의 입장이 엇갈린다. 민주노총은 탄력 근로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도입하되 건강권·임금 보전 문제는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사노위 노동시간 제도개선위원회가 이를 논의 중이다. 위원회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로 넘어가는데 당사자 입장이 아닌 정치적 입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탄력 근로제와 ILO 핵심 협약 비준을 ‘빅딜’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에도 불쾌한 이야기일 것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경영계가 요구하는 탄력 근로제 확대 적용과 노동계가 요구하는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 관련법 개정의 빅딜 가능성을 두고 ‘두 사안이 완전히 별개의 것이므로 생각할 수 없다’고 못 박지 않았나. 탄력 근로제, ILO 핵심 협약 비준 문제는 2월 임시국회 처리로 시간표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 표현으로 노사를 자극하기보다는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존중하는 자세로 논의하도록 유도하는 게 맞는다. 사회적 대화의 기본 원칙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자세다.”

문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처럼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며 가능하다”고 했다. 독일과 네덜란드만 봐도 사회적 대타협의 결론이 간단했다고 제시했다. 경제가 어려워도 고용을 유지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노사가 분담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최대 현안으로 양극화와 함께 대립 프레임의 해소를 꼽았다. 여야, 보수 대 진보, 노와 사 프레임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건 이제 맞지 않고 실제로 싸우기보다 관념적으로 갈등을 빚는 경우도 많은데 이에 매몰돼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미 노사 대립 프레임이 흘러간 과거가 됐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노사만 해도 협력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야는 서로 편을 가르는 식으로 논쟁을 벌이면 안 된다. 정말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프레임을 만들어 싸우기보다 자동차 부품 사업을 살릴 방안을 파악해 법과 제도, 재정적 지원을 어떻게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과거 그를 지칭하던 대명사였던 ‘문전투’와는 완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리 = 이민종·정진영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