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손혜원 투기의혹을 통해 본 ‘이해충돌 금지 원칙’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송재우 기자 jaewoo@

‘주식백지신탁’만 명시… 출장비 대납·부동산 구입 등은 처벌 못해
청탁금지법 입법때도 범위 모호하다며 제외…개정안은 4년째 ‘낮잠’

공직통한 사익추구 금지 규정
‘공직자윤리법 2조 2항’ 유일
“백지신탁탓 기업인 공직 제한”
비상장 주식은 관련규정 없어

김기식의 피감기관 지원 출장
전직 공직자 對정부 로비활동
孫, 목포 관련 상임위 질의 등
‘이해충돌 금지 위반’에 무게

美 1962년 法제정 엄격 규제
위반땐 최대 징역 15년 처해
리조트 매출 등 ‘대통령 특수’
트럼프 일가도 이해충돌 논란

손혜원 무소속 의원 주변인들의 목포 부동산 집중 매입을 둘러싸고 부동산 투기냐, 문화유산 지키기냐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손 의원의 행태가 공직자가 지켜야 할 ‘이해충돌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이해충돌을 금지하는 제도는 외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시행돼 왔지만 한국에서는 2011년에야 관련 조항이 처음 신설되는 등 아직 제도로 안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손 의원 논란을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 이해충돌 금지란

공직자는 직무를 수행할 때 공정한 자세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임무·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인 자격으로 이해관계를 갖게 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돼 직무수행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을 ‘이해충돌’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직자의 배우자가 근무하는 회사가 공직자가 근무하는 기관에 도시계획안 심의를 신청했다. 해당 공직자의 상사가 신청서 평가를 맡았다면 잠재적인 이해충돌 소지가 있고, 공직자 자신이 평가를 맡을 경우 상당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해충돌 상황은 공직자의 부패행위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이에 따라 이를 법으로 금지하고 현존하는 법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다만 공직자의 공적 의무와 이해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개인적 이해관계는 금전적 차원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어서 명확한 규정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2. 현행 이해충돌 금지 제도는

현재 공직자의 이행충돌을 방지하는 법은 공직자윤리법 제2조 2항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에 규정된 것이 전부다. 2011년 신설된 이 조항에는 ‘공직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되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사용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공직자윤리법은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주식백지신탁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주식백지신탁제도는 장·차관, 1급(차관보급) 이상 등의 공직자와 그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보유주식을 수탁기관에 맡겨 60일 이내(연장 가능)에 처분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특히 보유 주식가액이 3000만 원 이상인 경우 한 달 내에 반드시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배우자 등 가족에게 양도하는 것도 금지된다. 백지신탁한 주식과 관계된 직무에도 관여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충돌 방지 제도는 공직자가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분야의 업무를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는 아니다.


3. 제기됐던 이해충돌 논란

정치권에서는 이해충돌 관련 논란이 계속 제기돼 왔다. 최근 정부부처 전·현직 관계자들이 사법처리되기도 한 공직자 재취업도 이해충돌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재취업한 전직 공직자들이 주로 재직 중 인맥을 통해 청탁하거나 로비 활동에 주력함으로써 사실상 이해충돌 방지의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역시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신이 출연한 연구소에 기업인들이 고액의 교육비를 납부하도록 한 것과 피감기관 예산으로 본인과 보좌진의 해외출장비를 지급하도록 한 것 등은 모두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었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 파견된 판사를 통해 지인의 재판 관련 청탁을 한 것, 손 의원이 지인 등을 통해 목포에 수십 채의 부동산을 구입한 뒤 상임위원회 활동에서 관련 질의를 한 것도 이해충돌 금지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4. 법적 미비점

공직자윤리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공직자윤리법에 관련 조항이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셈이다.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분야에 업무를 못하도록 차단하는 장치도 없다. 결국 행정부나 사법부의 경우 입법부인 국회의 감시나 자체 감찰 등을 통해 최대한 이해충돌 소지를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경우는 더하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를 감시·심의하거나 판단하는 기능은 지금 국회에 없다”며 “관련 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일탈 행위를 규제할 거의 유일한 장치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상황이고, 윤리위 제소가 이뤄지더라도 실제 징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다만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업무 특성상 일정 수준의 이해충돌 원칙 위배는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5. 청탁금지법내 조항 삭제

당초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제정 시 이해충돌 관련 조항을 넣는 방안이 검토됐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와 함께 이해충돌 방지를 ‘김영란법’의 세 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에는 공직자 자신이나 4촌 이내 친족이 직무 관련자이거나, 직무 관련 단체에 재직하는 경우에는 아예 해당 직무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아예 사익과 연결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원안은 이해충돌 원칙을 위반할 경우 재산상 이익을 환수하고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고, 직무상 알게 된 비밀로 재산상 이익을 얻을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토록 했다. 원안대로 법안이 처리됐다면 손 의원이 이 법을 위반했는지를 두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 규정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반대에 부닥쳐 이해충돌 조항은 사라졌다. 대상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금융 업무를 하거나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의 경우 가족들의 사유재산권 행사, 투자 행위를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거나 국무총리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등 사회 전반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관장하는 경우 자식들이 국내 기업에 취업할 수는 있는 것이냐는 등 극단적 사례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6. 주식백지신탁제 도입후

주식백지신탁제도는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A가 B 회사의 주식을 다량 소유하고 있으면서 B 회사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거나 통과시키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시행됐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은 당선된다면 자신이 보유한 1000억 원 상당의 안랩 주식을 백지신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안 전 의원은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도 백지신탁 공약을 했다. 안 전 의원 외에도 주식을 많이 보유한 국회의원은 주식과 관련한 상임위원회 배정을 피하거나, 백지신탁을 하고 있다.


7. 신탁제도의 운영 및 문제점

일각에서는 주식백지신탁제도가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가로막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장관 등 공직자가 되려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인재를 널리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절 기업인으로는 처음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된 황철주 후보자가 백지신탁제도를 이유로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정부는 황 후보자와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백지신탁한 주식을 팔지는 않고, 보관만 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반대 여론에 부닥쳐 무산됐다.

백지신탁제도가 비상장주식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총가액이 3000만 원만 초과하면 상장 여부와 상관없이 백지신탁 대상이 되는데, 비상장 주식은 매각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비상장 주식은 공직자가 퇴직한 뒤 고스란히 돌려받게 돼 이해충돌 방지라는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8. 해외의 사례는

전 세계에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나라로는 미국이 꼽힌다. 미국은 일찌감치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62년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공직자 이해충돌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공직자가 공무 수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등 이해충돌 관련 조항을 어길 경우 최대 징역 15년에 처한다. 정부윤리법에도 이해충돌 방지를 엄격히 규정해 놓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공직에 내정된 후보들은 2년간 자신의 전 고용인, 고객들과 직접 관계된 특정 거래나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법도 행정부 공무원이나 피고용자, 국책은행 직원 등이 자신 또는 배우자, 파트너,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이나 단체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사안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 외에도 영국, 독일, 일본 등도 각기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9. 트럼프 일가도 논란

사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일가를 둘러싼 공직자 이해충돌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20일 취임 축하연을 자신이 소유한 워싱턴DC 트럼프호텔에서 연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4월 6∼7일에는 개인 별장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첫 미·중 정상회담까지 치렀다. 마러라고 리조트의 회원비는 트럼프 대통령 대선 승리 이후 전보다 2배가량 많은 20만 달러(약 2억2600만 원)까지 뛰었고, 트럼프호텔 매출 역시 껑충 뛰는 등 대통령 특수를 톡톡히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이자 백악관 보좌관인 이방카도 최근 중국에서 5건의 상표권 예비승인을 받는 등 이해충돌 방지 위반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방카 보좌관은 지난해에도 중국 당국으로부터 총 34건의 상표권을 승인받은 바 있다.


10. 국회 계류중인 법안

여야는 2015년 3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삭제된 부패방지법을 처리하며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추후 논의한다’고 했지만 4년이 다 되도록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공직자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이해충돌을 막는 것을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안철수 전 의원이 2016년 8월 이해충돌 방지를 담은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권은희 의원도 지난해 4월 이른바 ‘김기식 방지법’이라고 명명한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내놨다.

권 의원의 개정안은 공직자의 가족 등 사적인 이해관계자가 직무에 관련된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거나, 고위공직자 임용·취임 전 3년 내 민간부문 업무 활동 명세서를 공개하도록 명시했다. 같은 당 채이배 의원은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본인이나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 관련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모두 아직 제대로 된 법안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민병기·김남석·김영주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