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차이나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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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중국 경기 급락 전망 잇달아
과거 리스크보다 상황 심각
무역분쟁 탓만 아닌 구조 위기

‘사드 보복’ 再版 안 되려면
정부와 기업 대응 논리 같아야
시장 불신 해소 노력이 절실

지난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에선 어김없이 중국발(發)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걱정이 쏟아졌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장기적인 성장률 하락의 길에 들어섰다”면서 “이는 매우 근본적인 차원이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미국과 유럽 경제가 온전한 건 아니지만, 기저의 논제는 ‘중국은 어디로’였다.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이 미·중 무역분쟁을 제기한 미국 탓으로 날을 세웠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리더들도 미국에 쓴소리를 해댔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실효성 있는 화답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난 4∼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2019년 전미(全美) 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도 언론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는 발언에 주목했으나, 핫이슈는 중국이었다.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중국을 불확실성의 최고 수준인 ‘블랙박스’에 비유했다. 이쯤 되면 중국의 정책이나 경기 변화에 따라 교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겪게 될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 수준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판을 뒤흔들 ‘블랙홀’ 같다. 2∼3년 전만 해도 ‘피벗 투 차이나(pivot to China·중국으로 중심축 이동)’를 주장하면서 주요 2개국(G2) 패권 전쟁에서 중국 승리를 전망했던 이들이 이제는 ‘차이나 엑시트(China exit·중국 탈출)’를 골몰하고 있다. 차이나 머니(China money)의 세계적 공세가 절정에 달했던 2015∼2016년, 한국에 대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보복이 진행된 2016∼2017년의 현상들과는 판이한 질적인 변화다. 중국 정부는 “정책 부양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데, 세계의 시각은 “2008년 이후 전망이 가장 비관적인 한 해”라는 데로 수렴되고 있다.

중국의 위기를 무역분쟁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건 구조적이어서다. 지난해 중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6%로, 1990년 3.9% 이후 가장 낮았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더 낮은 6.2%로 예상했다. 5%대로 전망하는 투자기관도 있다. 완만한 회복의 ‘U자형’, 극적 반등의 ‘V자형’이 아니라, 하강 후 장기 정체의 ‘L자형’이다. 뇌관은 수출과 내수만이 아니라 부채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GDP의 13%에 달하는 4조 위안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집행했다. 중국 자본의 식욕이 이즈음 가장 왕성했고, 그 기세가 거셀수록 지방정부와 기업의 부채가 급증했다. 중국의 현재 부채는 GDP의 250% 수준이다. 그런데,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액이 전년 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16년에 비해 29.2%나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부채에 기댄 호황이 끝나고 기업들의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져 자산매각에 나서면서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를 예상하기도 한다.

중국 경제의 후퇴는 곧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 식어간다는 의미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7%에서 3.5%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주요 요인이다. 중국의 위기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검은 백조(black swan)나, 적당한 해결책이 없어 두고 보는 회색 백조(grey swan) 정도가 아니다. 안이하게 관망하다가는 큰 위기에 봉착할 회색 코뿔소(grey rhino)가 분명하다.

중국 경제 경착륙의 후폭풍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가 대비할 자구 수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수출 시장 다변화, 다자간 무역 통상 네트워크의 강화 등과 같은 교과서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경제 주체 간, 정부와 기업 간의 정교한 협력 시스템이다. 우리는 ‘사드 보복’ 당시 중국에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당했다. 대중(對中) 외교와 경제교역의 논리가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그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면 정부는 실물 시장에 귀를 기울이고, 기업은 기민하게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 연초부터 대통령과 정부가 기업과 소통에 나서고 있으나 오히려 서로 불신만 더 쌓여가는 일들을 보면서 걱정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