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정권 레임덕 키우는 손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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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손혜원은 박근혜 탄핵 국면 때 이어진 7차례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비리 사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젠 그가 지금 여러 비위 의혹과 관련한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형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부패방지법, 부동산거래법, 심지어는 특경법 위반까지 거론된다. 그는 여전히 자신만만하거나 때로 무례하다. 최순실은 적어도 온 국민이 보고 있는 TV 카메라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놓고 “그만해라” “지겹다”며 인상을 쓰지는 않았다.

손에게 쏠리는 의혹은 크게 보면 두 가지, 투기와 이해충돌이다. 은행 대출까지 하면서 친지와 보좌진을 동원해 특정지역에 무려 23필지 17채의 부동산을 사들인 것은 투기 의혹을 살 만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를 하면서 1100억 원의 국가예산을 끌어들여 부동산 재산가치를 올렸다는 의혹은 이해충돌의 핵심이다. 국회 상임위에서 자신이 판권을 가진 작가의 나전칠기 작품을 선전하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지인의 딸을 채용하라고 한 것도 이해충돌과 관련된다. 투기는 시장윤리 위반이고, 이해충돌은 공직윤리 위반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문화유산 보호라는 선의에서 시작했다손 치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겠다 하는 순간 접는 게 맞는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투기가 사실이라면 목숨도 내놓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실세였던 최경환(수감 중) 의원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에 휩싸였을 때 한 말도 “사실이면 동대구역 앞에서 할복자살하겠다”였다. 손의 선전선동이 김태우의 폭로 기자회견도, 여권 내 ‘순혈주의’ 비판도 잠재웠으니 청와대로서는 ‘파문’이 아니라 ‘의거’일 수도 있겠다. 탈당 회견을 하면서 집권당 원내대표를 들러리로 세운 이 초선 의원은 뭘 믿는 걸까. 대통령 부인과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두 사람은 숙명여중·고 동기동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6월 손을 당 홍보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당시 수석부총장이었던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손 의원이 영부인과 굉장히 밀접했고 그게 백그라운드로 작용해왔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홍은동 사저를 매입한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19대 국회 때 문재인의 보좌관을 거쳐 20대 국회에서 손혜원의 보좌관을 지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친여 성향의 민주평화당도 이번 사건에 대해 “썩은 권력 냄새가 진동하는 게이트”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원칙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인데, 이번 사태는 촛불 정권이 그 반대로 향할 수 있다는 걸 드러냈다. 공공의 책무에 무감한 사람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고, 공분을 불러일으킨 정치인을 감싸온 집권당은 공당의 자격이 없고, 오불관언으로 일관한 청와대는 국정 운영의 능력이 없다. 손혜원 사건은 권력 내에서 표준적 세계관이 오작동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그널이다. 이번 사건도 앞선 사례들처럼 권력의 뒷배에 힘입어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정권은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그땐 누아르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폐허와도 같은 목포 기자회견장 풍경이 향후 정권의 축도(縮圖)가 될 수도 있다.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