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란, 어릴적 꿈꾸던 자기를 조금씩 만나는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1년에 200여 회 강연을 다닌다. 29일에도 제주도 서귀포여고에서 강연 중이었다. 그는 “10여 년 전 배 속을 다쳐 크게 앓고 난 이후에는 아침마다 배가 아파서 잠을 깬다”며 “그러나 그 아픔이 나를 잠에서 빠져나와 하루를 살게 하는 은인”이라고 말했다. 서울문화사 제공

새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펴낸 나태주 시인

사랑·행복은 흔하고 사소한 것
세상살이에 대한 나름의 감상

“오늘이란 남은 인생 중 첫 날
우리는 새 날을 사는 새 사람”

20代 실연 뒤 신춘문예 당선
일선 교사 복귀 후 詩作 전념
“죽음 문턱서 감사 마음 배워”

“공주문화원에 있을 때 여직원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평소 말이 없어요. 그러던 어느 날, 뭘 물었는데 드물게 ‘좋아요’ 하는 거예요. 저도 좋았죠. 그래서 ‘네가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네’ 했어요. 그 대화가 그대로 하나의 시가 된 것이고, 이번 책의 제목까지 가게 된 거예요.” ‘풀꽃 시인’ 나태주(74) 시인이 새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서울문화사)를 출간했다. 핑크색 표지가 대번에 눈에 띈다. 70대를 훌쩍 넘긴 작가의 책치곤 파격 같지만 ‘풀꽃’처럼 쉽고 친근한 시를 쓰는 시인을 떠올리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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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은 세상살이에 대한 시인의 감상이자 나름의 해답이다. 시골학교의 교사로서, 시인으로서 평생 나직한 삶을 살아온 시인이 인생은 무엇이고, 사랑과 행복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편안하고 솔직하게 들려준다.

시인은 인생에서 “내일은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면서 “오늘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산문 속 ‘오늘’이라는 제목의 시에 이유가 담겨 있다. “지금 여기／행복이 있고／／어제 거기／추억이 있고／／멀리 거기에／그리움이 있다／／알아서 살자.”(시 ‘오늘’ 전문)

그는 “그야말로 오늘이라는 날은 내 인생에서 남은 날의 총량 가운데 첫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새날을 사는 새사람이고, 첫날을 사는 첫 사람인 것이다”라며 “따라서 내일은 없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다가오는 오늘에 집중하며 살 것이다”고 다짐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 시인은 “돈, 명성, 지위, 권력 등을 얻는 게 성공이라고 치자. 하지만 길게 시간을 두고 보면 그런 것들은 쉽게 변하고 무너진다. 쌓아 올린 공적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빠르고 무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다”며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어린 시절에 자기가 꿈꾸었던 자기를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만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인생은 조급할 것도 없고, 집착할 필요도 없다. 나 시인은 “전국으로 문학 강연을 다니느라 발등이 부어도, 고통과 번민과 망설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 기꺼이 갈 것이고 나를 보자는 사람이 있으면 또 그 사람에게로 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까닭이고 목숨의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사랑과 행복도 마찬가지다. 결코 큰 이야기도, 먼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기까지 나 시인은 지금껏 인생에서 3번 정도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대 중반 여성에게 실연당했을 때. 그때는 세상의 끝 같았지만 실연이 있었기에 그는 신춘문예에 당선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50대 초반 교장시절에 교직으로 더 승진하기보다 일선 교사로 복귀한 일이다. 그 일로 그는 시인으로서 재출발하게 됐다. 그리고 세 번째는 60대 초반 병에 걸렸을 때다. 배 속에서 쓸개가 터지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지만 그 이후로 그는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잠들기 전 기도’라는 시에 바로 이런 시인의 마음가짐이 깃들어 있다. “하나님／오늘도 하루／잘 살고 죽습니다／／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주십시오.”

나 시인은 산문집의 맨 마지막에 ‘일흔의 아내에게’라는 글로 부인 김성예 여사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에게 보낸 글이지만 마치 사랑하는 독자에게 보내는 연서 같다. 여보를 독자 여러분으로 바꾸어도 그대로 뜻이 전달된다.

“여보, 앞으로도 오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세요. 나도 가능한 대로 이 자리에 이대로 있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도 나는 오래 고맙고 미안할 것입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당신에게 드리는 인사. 여보, 잘 잤어요? 그 인사가 내일도 또 내일도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김인구 기자 cl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