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적폐청산 정부’의 新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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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 동국대 법과대학장·법무대학원장

전직 대통령 2명과 국가정보원장 3명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이념이 다른 전임 정권은 적폐청산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에는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다. 그동안 일반시민은 현대 국가의 4대 권력, 즉 행정·사법·입법·언론 권력 가운데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으로 입법부와 언론을 지목하는 것에 거의 의견이 일치돼 있었다. 따라서 국가정신을 바로잡는다는 외형상의 거창한 구호에 따른다면 적폐청산의 칼날은 주로 입법부와 언론을 향해 있었어야 할 터이다. 그러나 문 정부의 적폐청산에서 두 곳은 예외였다.

원래 공동체 사회의 범죄는 크게 나눠 불법범죄와 위법범죄 두 가지가 있다. 위법범죄는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제3자 뇌물공여 등 사후적으로 만든 인공적인 범죄다. 한편으로는 죄가 같아 보이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적극적인 업무 수행으로도 볼 수 있는 양면성이 특징이다. 그 반면에, 불법범죄는 살인·강도·강간·내란·간첩·반역 등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자연 질서 위반 범죄다. 적폐청산의 대상자들은 거의 모두가 위법 범죄자들이다. 만들어진 처벌인 것이다. 그러니 정치보복이라는 비난이 따를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 영국 휘그당(진보당) 소속의 변방 아일랜드 출신 에드먼드 버크가 바다 건너 이웃 나라의 불타는 프랑스 혁명을 보고 책 한 권을 집필했다. 책 이름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 줄여서 ‘성찰’이다. 이 책은 보수주의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버크는 또 다른 독재정권의 출현과 복수가 복수를 낳을 것임을 예견했다. 그의 예견대로 약 75년간 굴곡된 정치 상황이 이어졌다.

버크는 말한다. 개혁에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 발전의 연속성을 깨고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개혁은 후대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다. 이러한 버크의 보수주의는 당대에는 최고의 진보사상이었다. 보수주의자 버크의 믿음은 다음과 같다. 우주의 질서는 태초부터 한 번도 평등해 본 일이 없다. 절대평등은 환상이다. 국가개혁은 지금 당장 살아 있는 우리만의 특권이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선조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과의 협력이고 믿음이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만이 이 땅의 주인이 결코 아니다.

사실 주관적인 가치인 행복을 국가가 가져다주겠다는 것은 국가 가부장제다. ‘기회는 균등하고 절차는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은 대중의 심금을 울릴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가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통제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결과의 정의로움, 절차의 공정성, 기회의 균등성을 국가가 판단할 능력이나 권한은 없다. 국가가 아니라 자유시장이 판단하게 내버려 둘 때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관계의 조화가 이뤄진다.

이에 보수주의는 말한다. “내 인생은 자유인인 내가 가꿔 간다. 나는 나 스스로가 내 삶의 주인이다. 국민은 국가로부터 간섭과 통제 그리고 지나친 보호를 받지 않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믿지 않는다.”

‘적폐청산’이라는 용어부터 잘못이다. 과거의 잘못은 사람을 법정에 세우고 교도소에 잡아넣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잘못된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그 요체다. 전 정권에 대한 요란한 적폐청산 작업에도 불구하고 요즘 문 정부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악취를 풍긴다. 문 정부가 머릿속의 이념적 이론으로 또 다른 적폐청산 열차를 출발시키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