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주주의 시계’ 뒤로 돌리는 文정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호 논설위원

청문회도 못 연 상임 선관위원
여당 ‘선수 출신’의 심판인
셈 대통령의 독재적 권력 행사例

국민연금 통한 대기업 손보기
연금사회주의 의심도 더 키워
민주주의 퇴행 실상 돌아봐야

권력자는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을 ‘공동선(善)’이라고 여긴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전체주의 독재 권력도 민주주의를 참칭한다.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들도 명분은 국익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無知), 또는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위장술이었다. 독선과 아집에 빠진 채, 반대와 비판에 귀를 막고 일방 통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反)민주주의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가 독재적 권력 행사로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빈발하는 배경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근 사례 중에 대표적인 것이 문 대통령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 강행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한 인사다. 지난 24일 문 대통령이 위원 임명장을 준 다음 날 문 대통령의 내정대로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원으로 취임한 조 위원은 양식 있는 사람이면 누가 봐도 부적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9월 발행한 ‘대선 백서’에 그는 문 대통령 캠프의 ‘공명선거특보’로 이름이 올랐다. 5월 9일 대선 후 4개월 동안 정리해 공표한 공식 기록으로, 공명선거특보는 조 위원뿐이었다. 2016년 총선에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편파 심의를 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런 인사인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1일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서를 보냈다. 야당이 ‘여당 선수 출신이 심판일 순 없다’며 문제 삼은 것은 당연하다. ‘행정 착오’라는 민주당은 ‘공명선거특보 임명 사실이 없음’이라고 적힌 지난해 12월 12일 발행 ‘확인서’를 지난 9일 뒤늦게 제시했지만, 그 전말 또한 미심쩍다.

그런 상황에선 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고, 다른 인사로 교체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설령 조 위원이 선거 캠프에서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선거 관리의 생명인 ‘중립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부적격임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함께 보수 성향인 바른미래당, 진보로 분류되며 여당에 우호적인 민주평화당 등이 일제히 부당성을 지적하며 강력 반대하는데도 끝까지 고집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선관위 출신 역대 상임위원들과 달리, 차관급 사무차장과 장관급 사무총장을 거치지 않고 1급으로 2012년 퇴임했던 조 위원을 장관급 상임위원으로 ‘파격’ 내정한 사실을 두고도 ‘의도가 있는 무리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하는 형식 절차를 거쳐, 임명을 밀어붙였다.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등 임기 6년인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앙선관위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책무를 지닌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대법관인 위원장은 비상근직이어서 유일한 조 상임위원이 2020년 4월 15일 제21대 총선,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선 등을 실무적으로 총괄 관리하게 된다. ‘공명정대한 선거’가 대의(代議)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인식이나마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조 위원을 임명하지 않았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과정에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예는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연금 사회주의’ 의심을 더 키운 ‘국민연금 주주권 적극 행사’ 주문도 그중의 하나다. 문 대통령은 결정권을 가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를 앞둔 지난 23일 “대기업·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미리 선언했다. “공정경제를 위해선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틀린 것은 바로잡고,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오직 수익률이 기준이어야 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대기업 손보기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비쳤다. ‘국민연금 코드 운용을 통한 사실상의 대기업 지배 의도’라는 비판도 나왔다.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일부 오해가 있는 듯하다.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해나가겠다”고 밝혔으나, 근본 인식의 위험성은 마찬가지다. 탈법·불법의 엄단은 필요하지만, 그럴 수 있는 법령들이 있는데도 국민연금 주주권을 끌어다 댄 것은 견강부회의 제왕적 발상일 수 있다. 이런 유(類)의 민주주의 퇴행 실상을 문 대통령부터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