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文정권은 아직 차베스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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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국제부장

‘사회주의 정권은 벼랑 끝에 놓였다. 경제는 추락했고 인플레이션은 치솟았다. 국내총생산은 5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식량난과 범죄 만연, 의약품 부족, 전기 공급 제한 등 국가 시스템은 마비 상태다. 300여만 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했다. 부정선거와 야권 인사 탄압은 외부의 내정개입까지 불러왔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2019년 실상이다. ‘위대한 해방자’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가 건설한 나라,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2005년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서 당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는 다보스포럼에 맞서 각국 좌파 운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역설했다. 카라카스 실험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 및 복지 프로그램 강화, 석유·철강·통신·교통 등 기간산업 국유화, 정부와 노동자의 국유기업 공동 경영 등으로 요약된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로 이념적 좌표를 상실한 좌파 운동가들에게 21세기 사회주의는 대안체제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 좌파 진영에서도 차베스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2007년)라는 책을 비롯해 연구 서적이 쏟아졌다.

베네수엘라는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결성을 주도한 오일 파워의 핵심 국가였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은 1970년대 고유가 호황에 힘입어 선진국 진입 프로젝트까지 추진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위해 각종 재정 지출도 마구잡이로 늘렸다. 1980년대에 저유가에 처했지만 한번 시행된 선심성 복지정책을 거둬들이기는 어려웠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1989년 석유산업 민영화 등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차베스는 반짝 희망을 줬지만 이후 저유가 장기화로 몰락과 파탄은 불가피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는 차베스의 그림자가 비쳐 보인다. 24조 원 규모의 사회기반시설(SOC) 예비타당성 면제가 대표적이다. 대북정책의 종착역이 북한 핵 보유 인정과 경제지원이라는 의구심도 불러일으킨다. 차베스 노선을 계승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금 볼리바르 초상화 앞에 서서 미국의 압박을 비난하고 있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또한 볼리바르 평전을 손에 들고 국민 저항을 역설하고 있다. 세계 역시 중국과 러시아, 북한, 시리아 등 전체주의 국가는 마두로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과이도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마두로 대신에 과이도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포진한 좌파 운동가들은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를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해방시켰던 볼리바르가 자신이 세웠던 국가인 그란 콜롬비아(1819∼1831년)의 분열을 지켜보면서 말년에 불러준 씁쓸한 통곡의 묘비명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제 통치가 불가능하다. 마치 혁명에 몸을 던진 사람이 바다를 쟁기질하는 것처럼….’ 국가의 운영은 이상의 실현 영역이 아니고 실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