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만 45國 2500명… 양궁세계화, 기술유출 아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7일 충북 괴산군 김형탁양궁훈련원에서 김형탁 원장이 활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 ‘이론·실기 겸비’ 양궁원로 김형탁 훈련원장

1980년대 여자대표팀 지휘
최분희·서향순·김진호 배출

6년동안 대만 사령탑 역임
한국인 지도자 첫 해외 진출

“외국선수들 기량 좋아지면
한국양궁 경쟁력 강화 도움”

국내첫 과학적 분석기법 도입
이미지 트레이닝도 처음 활용

“활은 단순히 팔로 쏘는게아냐
몸·정신 하나돼야 과녁 명중”

김형탁(66) 김형탁양궁훈련원 원장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양궁 지도자로 꼽힌다. 2002년부터 2년간 세계양궁연맹 코치위원을 맡아 세계양궁 교본을 집필했다. 2004년부터 충북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에서 운영하는 김형탁양궁훈련원에서 그동안 45개국 2500여 명에 달하는 외국 선수들이 김 원장의 ‘특별훈련’을 체험했다. 그리고 2015년 세계양궁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양궁연맹으로부터 ‘양궁지도자 공로상’을 받았다.

김 원장은 특히 한국양궁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1989년부터 6년간 대만 양궁대표팀 감독을 맡아 처음으로 한국양궁을 해외에 ‘수출’했다. 아시아 5∼6위권이었던 대만 양궁은 김 원장이 사령탑을 맡은 뒤 ‘진화’를 거듭했다. 대만은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에서 한국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며 여자양궁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획득했다. 김 원장이 ‘설계’한 대만 양궁은 성장을 거듭, 지금은 여자부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김 원장의 장남은 1984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김 원장은 병마와 싸우는 아들이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우려해 따뜻한 대만의 감독직을 수락했지만, 병이 재발해 1994년 숨을 거뒀다. 7일 김형탁양궁훈련원에서 만난 김 원장은 “대만은 오토바이가 많기에 매연으로 인해 한국보다 공기가 탁했다”면서 “아들의 목숨과 맞바꿨기에 한국양궁을 전 세계로 알리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원장이 물꼬를 튼 뒤 한국양궁은 전 세계로 퍼졌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출전국 중 7개국 사령탑이 한국인이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10명의 한국인 지도자가 8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김 원장은 “한국양궁을 다른 나라에 전수하는 건 절대 기술유출이 아니다”라며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져 한국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게 되면 한국양궁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김 원장은 과학적인 분석, 이미지 트레이닝, 맞춤형 훈련프로그램 제공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국내 최초로 양궁에 과학적 분석 기법을 도입했다. 개개인의 훈련을 영상으로 녹화, 자세를 교정했다. 과녁에 꽂힌 활의 위치를 하나하나 컴퓨터 데이터로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 훈련을 진행했다. 김 원장은 또 이미지 트레이닝 기법도 최초로 활용했다. 선수들에게 활을 쏘기 전 눈을 감고 과녁에 명중하는 장면을 상상하라고 주문했고, 훈련을 마친 뒤엔 언제나 명상 시간이 이어졌다. 세계랭킹 100위권이었던 덴마크 출신 마야 예어는 한국에서 김 원장의 지도를 받은 뒤 2013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보배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김 원장은 “활은 단순히 팔로 쏘는 것이 아니다”면서 “몸과 정신이 하나가 돼야 화살이 정확하게 날아가 꽂힌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광운전자공고 1학년이던 1971년 양궁과 인연을 맺었고, ‘고교 신궁’으로 이름을 날리다 고교 졸업 직후 경주여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20세 감독. 그런데 사실상 무급 봉사였다. 자신보다 한두 살 어린 동생 선수들이 어려운 형편에 운동하는 게 안쓰러워 사재를 털기 일쑤였다. 김 원장은 “당시 지도했던 최분희는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이인숙은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신부 공무원 시험에 합격, 오전에는 공무원, 오후에는 양궁 감독 ‘1인 2역’을 하다 1979년 인천 인일여고 감독을 맡으면서 공직을 떠나 지도자의 길에 전념했다. 김 원장은 “1983년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선임됐고, 1984 LA올림픽과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여자대표팀을 이끌었다”며 “서향순은 LA올림픽에서 한국에 여자양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고, 김진호는 서울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지난해 12월엔 국립체육박물관(2021년 개관 예정)을 위해 양궁 자료 2000여 점을 기증했다. 김 원장이 기증한 자료는 그의 스승인 고 석봉근 선생의 논문 및 육필 원고, 한국에 양궁이 도입된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장비와 대회 기록표, 그리고 제자들의 양궁 자세가 담긴 사진 등이다. 김 원장은 “제가 기증한 자료가 공개되고 재가공된다면 새로운 것으로 창조되는 셈”이라며 “한국양궁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그동안 보관하던 자료를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괴산=글·사진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