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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11일(月)
변기 등 미니어처 복제품, 치즈 한가득… 예술이 된 ‘여행용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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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로스·올든버그 등
다양한 우의적 의미 담아


설이 지났다. 어린 시절 설이 되면 세뱃돈도 중요했지만, 당시 껌부터 사탕에 양갱은 물론 비스킷에 이르기까지 온갖 과자가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이 있어 행복했다. 설에 인사차 집에 오시는 친지들의 손에는 으레 이것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온갖 작품이 다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에 버금가는 미술작품이 있다. 사실 가방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한꺼번에 옮기는 수단이다. 특히 여행용 가방은 추억이라는 은유와 경험의 상징체이기도 하다. 특히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또는 가족여행 같은 부르주아적 삶, 난민이나 망명자의 고단한 삶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동’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런 가방의 상징성은 소설가, 작곡가, 미술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렇게 예술이 된 가방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여행용 가방’(Boite-en-Valise·사진)부터 디터 로스(Dieter Roth·1930~1998)의 치즈가 가득 담긴 가방이나 조 레너드(Zoe Leonard·1961~)의 이미지가 가득한 가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4월 7일까지) 중인 뒤샹은 “내가 작업했던 중요한 모든 것을 작은 가방에 담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여행용 가방을 제작했다. 그는 작업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총 65점의 미니어처 복제품을 담은 ‘여행용 가방’을 7차례나 만들었다. 원작이 지닌 아우라를 부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여줌으로써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그는 자신의 대표적 작품인 ‘소변기’(1917),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12), 모나리자의 사진에 수염을 그린 ‘L.H.O.O.Q.’(1919) 등의 사본을 상자에 담아 작은 이동형 미술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상자를 가죽가방에 담아 메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뒤로 6차례나 다른 버전을 제작해 원작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물론 미술관까지 골탕을 먹였다.

▲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뒤샹의 여행용 가방도 유명하지만, 청계광장 입구의 ‘스프링’(Spring·2006)을 만든 클라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1929~)의 가방은 여러 가지 작업을 담는 컨테이너 역할을 한다. 특히 미술품과 소비재 사이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그의 가방은 멀티 파트 작업을 위한 컨테이너로 사용됐다. 그는 여성의 다리를 확대해 만든 ‘런던의 무릎’(London Knees·1966)을 “남성의 관음증으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위해 공공조형물로 제작하고자 했으나 이 프로젝트의 실현이 어렵게 되자 폴리에스터로 모형을 만들어 21장의 스케치를 집어넣은 멀티플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마치 판매사원이 물건을 방문판매하듯 미술을 상업이라는 공간에 위치시키는 역설적인 장치로 사용했다.

디터 로스는 1970년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여러 가지 크기의 치즈를 포장해 37개의 가방에 가득 채운 ‘스테이플 치즈’(Staple Cheese, 일명 A Race)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가방이 열리면서 치즈 고유의 고릿한 냄새가 화랑을 가득 채웠고 이내 벌레가 생기고 구더기가 발생했다. 이에 보건당국에서 전시를 취소하도록 명령했다. 이것은 예술작품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집단소송을 내면서 일이 커졌지만, 전시는 계속됐다. 2014년 성과 정치, 종교의 접점에서 작업해 온 로버트 고버(Robert Gober·1954~)는 ‘무제’(Untitle·1977)를 발표했다.

검은색 내부를 드러낸 채 열려 있는 가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배수구와 작은 물웅덩이,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성인 남성과 어린이의 다리가 있다.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휴식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브루스 코너(Bruce Conner·1933~2008)의 ‘가방’(Suitcase·1961~1963)이나 모나 하툼(Mona Hatoum·1952~)의 ‘트래픽’(Traffic·2002), 마르셀 드자마(Marcel Dzama·1974~)의 ‘무제’(Untitled, Suitcase With Three Heads·2007) 같은 작품, 조 레너드, 존 웨슬리(John Wesley·1928~) 등도 여행용 가방에 다양한 우의적 의미를 담아 현대미술로 승화시켰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가방엔 무엇이 담겨 있나 문득 돌아봤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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