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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美國에서 본 한반도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13일(水)
하노이회담 흔들 ‘3대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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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비건(오른쪽) 대표가 지난달 31일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토론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제공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2주 앞둔 美·北 2차 회담 복병
비핵화 定義와 동맹 미래 不明
美 대선 정국 진입으로 더 위험


지난달 31일, 필자가 재직하는 연구소 주최로 강연회가 열렸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강연회였다. 취임 후 첫 공개 강연인 데다 워싱턴이 아닌 서부의 대학 캠퍼스에서 열렸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던 터라 미국뿐 아니라 남·북한, 나아가 세계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여러 차례 대북 정책에 관한 발언을 했지만, 구체적인 프레임워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건 대표는 분명한 어조로 ‘우리는 선택을 했다’(we made the choice)며 북한도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첫 정상회담과 평양 실무회담 등에서 약속한 비핵화를 지키라고 촉구했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위한 평양방문 직전에 이뤄진 터라 북한에 협상의 틀과 범위를 미리 전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실제로 강연 직후 북한에서도 잘 들었다는 메시지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했을 뿐 아니라 평양회담에서도 논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의 스탠퍼드대 강연 및 질의·응답시간에 다뤄진 이슈 중 세 가지 사안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비핵화의 정의에 관한 문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말만 무성할 뿐 아직도 구체적으로 비핵화의 의미와 결과가 무엇인지에 관해 미·북 간에 분명한 합의가 없다는 것을 비건 대표도 인정했다. 미국은 북한의 검증 가능한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며, 영변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핵시설(비건의 표현을 빌리면 a complex of sites)을 포함한다. 이에 비해 북한은 미국의 핵 전력자산 등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포함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해 왔고 중국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한·미 동맹이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이 갖고 있는 카드 중 하나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거래(transactional)로 보며,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이 현직에 있을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애를 먹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비건 대표는 이 질문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 협상 중 주한미군 문제가 논의된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이 문제는 내 소관이 아니라고 한발 비켜 갔다. 트럼프 행정부 내 소위 동맹파들이 대부분 물러났고,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했던 전례 때문에 서울과 워싱턴에는 동맹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크다.

세 번째는,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체제(a permanent peace regime)를 수립하는 문제이다. 비건 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70년에 걸친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적대감을 해소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다소 원론적인 표현을 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종전선언으로 확대해석한 측면이 있지만, 미·북 간의 관계 정상화가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이 필요한지 또 평화협정이 이뤄진다면 어떤 형태가 될지 등 구체적인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을 떠나고, (대북) 제재가 해제되고, 대사관에 (상대국) 국기가 게양되고,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순간을 기대한다고 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싱가포르에서의 회담보다 진일보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 그러려면 비핵화에 대한 정의, 한·미 동맹의 지속성 여부, 또 평화체제 수립처럼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분명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워싱턴 조야를 비롯해 한국 등 우방국에 퍼져 있는 비핵화 회의론과 동맹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탄력을 받기 어렵다. 외교와 협상에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젠 모호성을 최대한 줄이고 양국이 추구할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때다. 그래야만 “트럼프가 김정은과 또 하나의 쇼를 펼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넘어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다.

내년은 대선이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이슈에 집중하기 어렵고, 회담 성과가 미진하면 야당의 정치 공세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둘러싼 모호성을 해소하고 미·북 대화와 협상이 지속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과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김 위원장이 정말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이기에 가능했던 이 기회를 놓치면 북한은 핵을 쥔 불량국가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또다시 대결과 갈등의 장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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