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아의 에어 카페>로맨틱한 ‘별빛 속 비행’… ‘여유’ 가져야 볼수있는 것들

비행기에서 일하며 아마도 가장 낭만적인 순간은 바로 하늘 위에 있음을 실감하는 때가 아닐까. 주로 이른 저녁에 출발하는 동남아시아행 비행기에서는 저녁 식사 서비스를 할 무렵 창밖으로 진한 분홍빛에서 불타는 듯한 오렌지색, 그리고 오묘한 보랏빛에 이르는 아름다운 하늘의 쇼가 펼쳐진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티 내지 않은 채 기분이 좋아져서 손님들의 잔에 붉은 와인을 따라 드리는 것이다. 저 아름다운 모습을 나만 본 건 아니기를 바라면서. 물론 바로 현실로 돌아와 부족한 소고기 요리나 생선 요리를 구하기 위해 방금 보았던 예쁜 하늘의 모습은 잊고 객실 전방에서 후방까지 분주히 뛰어다니는 장면이 이어지곤 하지만 말이다.

발리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이었다. 깊은 어둠 속 심야 비행에서는 승객들의 나직한 코 고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한편 승무원들은 졸음과의 전쟁을 선언한다. 안전한 비행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기장실과도 연락을 취하고 기장의 피로와 졸음을 예방하기 위한 커피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날도 기류는 안정적일지, 또 커피가 좀 더 필요하진 않은지 확인하려고 기장실에 연락을 취했더니 잠깐 들어와 보라고 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기장실에 들어갔더니 혹시 은하수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오늘은 달빛이 거의 없어 은하수를 관측하기 가장 좋은 날이라는 말과 함께. 오른쪽 창을 바라보니 가장 크게 반짝이는 금성 옆으로 레이스 자락 같은 하얀 꼬리가 연하게 혹은 조금은 수줍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오로라는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처음 만난 은하수의 모습은 정말 곱디고운 여신의 얼굴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세상에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구나. 필리핀 마닐라 인근의 바다로 지구의 별무리라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별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심취해 잠시 할 말을 잃은 찰나, 마침 눈앞에서 별똥별 하나가 거짓말처럼 스윽 나타났다 사라졌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소원을 빌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니 한 기장은 ‘그러니까 소원도 항상 잘 생각해뒀다가 얼른 단어로 말해야 한다니까요’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다음에는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객실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까지 남아 있는 비행시간은 아직도 4시간. 혹시 잠들지 못한 채 갈증을 느낄 승객들을 위해 물을 몇 잔 준비해 객실을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 무려 별빛 속을 항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아침 식사 서비스를 좀 더 맛있고 여유롭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커피는 더욱 향긋하게 빵은 더욱 고소하고 바삭하게. 졸린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지어 보았다. 인생도 비행도 가끔은 한 걸음 물러서 약간의 거리와 여유를 둘 때 좀 더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