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미술계도 페미니즘 바람…재조명되는 르네상스시대 여성화가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앙구아솔라 ‘이젤앞의 자화상’.

젠틸레스키·앙구아솔라 작품
해외 미술관들 잇따라 전시회

올해도 볼 만한 전시가 연중 이어진다. 물론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외국 이야기다. 혹시 올해 해외여행이나 출장이 계획돼 있다면 기간 중 현지 미술관 전시 일정을 챙겨보는 것도 인간답게 사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올해 개최 예정인 전시를 보면 유독 여성 미술가들을 조망하는 전시가 두드러진다. 이는 지난해부터 사회적 현상이 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미술관이란 곳의 기획전시는 혁신적이며 새로운 미술을 수용하는 전진기지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매우 고답적이며 보수적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1971년 ‘아트뉴스’라는 잡지에 “왜 지금까지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촉발된 미술사에 있어서 페미니즘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실제로 전시나 연구서로 귀결되는 성과는 미미했다.

사실 ‘여성은 재주가 없다’는 편견은 미술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가 남긴 13세기 말부터 16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200여 명 화가의 생애를 기록한 ‘미술가열전’(1550)에 의하면 르네상스시대 여성 미술가는 5인에 불과하다. 여성조각가 프로페르지아 데 로시(Properzia de Rossi·c.1490∼1530), 화가 프라 필리로 리피(Fra Filippo Lippi·1406?∼1469)의 애인이자 모델인 동시에 화가였던 루크레치아 부티(Lucrezia Buti·1435∼c.16C), 스페인 궁정화가 소포니스바 앙구아솔라(c.1535∼1625), 코스모 메디치의 대사였던 루크레치아 키스텔리 델라 미란돌라(Lucrezia Quistelli della Mirandola·1541∼1594)와 독학의 수녀화가 플라우틸라 넬리(Plautilla Nelli·1524∼1588) 등이 그들이다. 최초의 여성화가로 알려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1593∼1652)는 바사리 사후 사람이라 기록에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영국국립미술관은 2018년 젠틸레스키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의 모습을 한 자화상’(1615∼1617경)을 약 52억 원을 들여 소장하고 수복보존처리를 거쳐 올 한 해 영국 전역을 순회 전시할 예정이다. 젠틸레스키는 ‘안희정 재판’에서도 거론될 만큼 어릴 적 스승에게 당한 성폭행을 폭로했다가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법정 안팎에서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올해 개관 200주년을 맞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은 르네상스 시절 여성화가 2인을 조명하는 전시를 준비 중이다. 앙구아솔라와 여성화가 라비니아 폰타나(Lavinia Fontana·1552∼1614)가 그들이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앙구아솔라는 타고난 재주로 여성들에게 문턱 높던 화가견습생으로 들어갔고, 로마로 가서 미켈란젤로를 비공식적으로 사사했다. 1559년 마드리드여행을 갔다가 후에 오스트리아 대공의 비가 되는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Isabella Clara Eugenia)의 교사로 들어가 후에 스페인의 전성기를 통치한 필립 2세의 궁중화가가 되었다. 40대에 남편이 죽자 제노바 여행 중 만난 선장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던 그녀의 작품은 17세기 화재로 소실되어 유존작이 매우 적다. 바사리는 그녀를 “가장 희귀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라고 평했다.

볼로냐에서 태어난 라비니아 폰타나는 볼로냐의 화가였던 아버지를 사사했다. 화가로 일을 시작하면서 볼로냐 상류층 인사들의 초상을 그려주어 이름을 알렸다. 또 그녀는 남성과 여성의 누드를 포함한 대작의 종교화를 그렸다. 25세에 파올로 자피(Paolo Zappi)와 결혼해 슬하에 11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단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었다. 그녀는 결혼 후 가사와 함께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 남편은 그녀의 조수로 그림의 별 의미 없는 배경처리를 전담했다. 이후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초청을 받아 1603년 로마로 이사를 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후원을 받으며 로마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현재 단 32점만이 현존하며 25점이 유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