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일>빅데이터로 판결예측 … 재판의 판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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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가 담당땐 無罪 가능성 31%

美 IT기업들, 판사성향 분석
데이터化한 프로그램 서비스
정보수집 위한 수고로움 덜고
조건만 설정하면 확률 보여줘

민사소송 합의·조정 기록없어
완벽한 법률 통계서비스 한계

‘○○판사라면 무죄 가능성이 31% 정도로 나오네요.’

판사가 좋아하는 판례와 사건, 판결성향은 물론 유무죄가 나올 확률까지 알 수 있을까. 얼핏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판사나 법원에 대해서 세세한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컴퓨터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03년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 볼’이 출간된 이후 세계 야구계에 통계를 활용해 경기와 선수에 대한 정밀분석을 하는 ‘세이버매트릭스’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이제는 법조계에서도 통계를 활용한 빅데이터 판결예측 시스템 시대가 개막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법조 기록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최근 태동해 많은 로펌으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 라벨 로의 ‘라벨’ 시스템을 비롯해 렉스 마키아나가 개발한 ‘렉시스넥시스’, 리티게이션 애널리틱스의 ‘블룸버그 로’, 캘리포니아 주 법원이 개발한 ‘게이브리틱스’ 등이다. 그 외 ‘케이스 텍스트’ ‘주디카타’ 등도 있다. 미국 외 지역에서도 캐나다 토론토의 한 법률회사가 서비스를 개발하고 나섰다. 실제 이들 프로그램은 특정 판사의 민·형사사건 소송에서 원고의 승소율이라든가, 원고가 백인이냐 흑인이냐에 따른 승소율 등 다양한 조건을 설정해 재판관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의 리처드 시보그 판사가 재판을 주관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거에는 변호사들이 오랫동안 그와 접촉했던 동료 변호인 등을 통해 그의 신상과 성향 등을 알아냈다. 하지만 이제 변호사들은 라벨 시스템에 접속해 시보그 판사가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37건의 집단소송 신청 중 51%를 받아들여 재판까지 가게 했고 △가장 좋아하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2009년 애슈크로프트 대 이크발 사건(테러와의 전쟁 중 테러 연루 혐의가 의심되는 것만으로 해당 개인을 구금한 것을 합법으로 판결한 대법원 결정)으로 423번의 심리에서 언급했으며 △1990년의 ‘발레스트레리 대 퍼시피카 경찰서 사건’ 또한 312번이나 인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보그 판사가 다른 670명의 미국 내 판사들과 비교했을 때 그가 특정 관련 주제에 어느 정도 성향을 보이는지, 그가 주관한 재판이 끝나는 데까지 평균적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정식 재판으로 가지 않고 약식판결로 가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배심원들에게 판결을 맡기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라벨 로의 공동창업자인 대니얼 루이스는 “이 프로그램은 그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외에도 영국이나 캐나다 등 판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미법 계열의 국가들은 비슷한 프로그램 개발이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나서고 있다.

빅데이터 법률 서비스의 탄생에는 ‘특허괴물’ 사례도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다른 사람들의 특허를 사들인 뒤, 위반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법인인 ‘특허괴물’의 소송이 빈번했는데, 주로 텍사스 동부지역에서 배심원 재판으로 소송이 이뤄졌다. 텍사스 배심원들이 특허권 소송 제기자들에게 우호적이어서 더 큰 배상명령에 찬성한다는 점 등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미국 대법원은 해당 특허소송을 모두 피고의 거주지에서 행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역별 법률, 특성, 판사 개개인 등에 대한 정보가 보다 긴요해졌고 따라서 빅데이터 통계가 더욱 절실해졌다. 조시 베커 렉스 마키아나 대표는 “미국 100대 법률회사 중 4분의 3이 우리 고객”이라며 “더 가치 있는 통계를 찾아내느냐 아니냐가 변호사의 새로운 자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빅데이터 법률 통계서비스에 보완할 부분도 있다. 판결문이나 재판 기록처럼 문서화된 것과 달리 민사소송의 90%에 이르는 합의나 조정 등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상태다. 영국이나 캐나다 등 다른 지역에선 법적인 기록이 미국에 비해 적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분들도 수요가 늘어나면서 극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드워드 버드 영국 솔로노믹 데이터 개발자는 “데이터화 되는 법정기록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정확한 결과 예측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