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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22일(金)
‘봄’ 조차 빼앗겨 목놓아 울던 詩人은 가고… 다시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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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중구 계산동에 있는 ‘상화고택’. 이상화 시인이 1939년부터 1943년까지 4년여 동안 살았던 집이다.

(148)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詩人 이상화의 고향 대구

남한과 북한서 모두 인정받는
뜨거웠던 애국지사이자 시인
‘3·1운동 100주기’ 흔적 찾기

중구 근대골목 중간 ‘상화고택’
타계하기전 4년동안 살았던곳
도심 개발속 보존운동 덕 개관

생전엔 시집 단 한권도 안펴내
타계 8년후 ‘상화와… 첫 출간
詩 68편…1970년대 들어 주목



아직은 코끝을 아리게 하는 쌀쌀한 바람결을 애써 꽃샘바람이라 부르고 싶은 이맘때쯤이면 늘 떠오르는 시인과 입가에 맴도는 시가 있다. 올해는 마침 3·1 독립운동 100주기를 맞는 해이기도 하니, 대구로 향하는 여정 내내 우선 설렘에 온통 마음이 들뜬다. 대구 곳곳에 남아 있는 이상화의 흔적을 찾기에는 늦겨울 하루해가 너무 짧은 듯하다.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괜한 조바심에 역 밖의 신선한 바람 한 번 미처 코끝에도 쐬지 못한 채, 바로 지하철을 이용해 이상화 고택으로 향한다.

‘상화고택’(중구 서성로 6-1, 계산동)은 사실 시인이 1939년부터 세상을 떠난 1943년까지 4년여 동안 살았던 집이다. 이상화의 생가(서문로 2가 11번지)와 부친 이시우가 사망한 후, 일곱 살 무렵부터 자랐던 본가(本家), 시인이 어린 시절 한학과 신학문을 교육받던, 조부 이동진이 세우고 백부 이일우가 운영했던 ‘우현서루(友弦書樓)’의 옛터(현재는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수창동) 등은 모두 ‘대구 중구’에 있다. 별다른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곳 모두에 어김없이 그 내력을 상세히 설명한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상화고택’ 뒤편, 몇 집 너머에 있는, 시인이 혼인해 분가할 때까지 함께 살았던 형 이상정의 집(계산동 2가 90번지)은 현재 막걸리 주막이 됐다.

‘상화고택’이라 적힌 현판이 걸린 대문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사랑채가 있고 그 앞으로 안채와 마루, 부엌 등이 연이어 있다. 마당에는 감나무와 석류나무 세 그루가 서 있고, 그 앙상한 가지에는 모진 겨울을 견디어낸 고운 새순이 벌써 돋아났다. 장독대 옆으로 세 개의 하얀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시인의 약력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긴 시비, 무엇보다 시인의 후기 작품을 대표하는 시 ‘역천(逆天)’의 전문이 새겨진 마지막 시비가 반갑다. 옆에 적힌 시와는 대조적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있는 이 작품에는 이상화 특유의 저항적 세계관이 유독 두드러진다. “하늘의 뜻을 어긴다”라는 시 제목부터가 그러하다. “걸림 없이 사는 듯하면서도 걸림뿐인 사람의 세상 - / 아름다운 때가 오면 아름다운 그때와 어울려 한 뭉텅이가 못 돼지는 이 살이 - // 보아라 오늘 밤에 하늘이 사람 배반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오늘 밤에 사람이 하늘 배반하는 줄도 알았다.”(‘시원’ 2호, 1935년 4월)

‘상화고택’은 대구 도심 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나, 2002년부터 이를 보존하자는 대구 시민과 지역 문화 단체들의 노력과 서명운동, 기금 모금 덕분에 복원해 2008년에 개관할 수 있었다. 좁은 골목길 건너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의 고택이 서로 대문을 마주 보고 있으며,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桂山藝家)도 그저 낮은 벽돌 담 하나를 두고 연결돼 있다. 대구 근대골목 탐방길은 동산 청라언덕에서부터 3·1 만세운동길을 따라 유서 깊은 약령시(藥令市)를 지나고, 다시 화교 거리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관광 코스다. 그 중간쯤에 있는 이상화 고택은 그 절묘한 위치 덕분에 명소가 됐고 늘 방문객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고택이든 문학관이든 상관없다. 누구나 언제든 쉽게 찾아와서 시인을 다시금 기억하고 그의 시 한두 편을 가만히 읊고 가는 모습이 중요하다. 순식간에 좁은 마당이 단체 방문객으로 가득 찬다. 해설자의 구수한 입담에 취해 한동안 넋을 놓고 귀동냥을 한다.

▲  달성공원에 있는 ‘나의 침실로’의 시비.

이상화의 또 다른 대표작 ‘나의 침실로’의 시비가 있는 달성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문에서 낮은 구릉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정상 부근에서 까만 오석(烏石)에 새긴 자그마한 시비를 만날 수 있다. 1948년 세워진 이 시비는 한국 현대문학 최초의 문학비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직 문학비의 가치조차 알지 못하던 시절, 해방 후 그 혼란의 시기에 시인 김소운(金素雲)과 백기만(白基萬) 등이 중심이 돼, 우리 땅에 “단 세 개만이라도 시비가 세워지는 날이 오면 이 나라는 크게 융성할 것”이라고 외치며, 숱한 반대를 극복하고, 결국 이 시비를 세웠다.

달서구에 있는 두류공원에는 대구 출신 문인과 예술인, 그리고 여러 애국지사를 기리는 야트막한 ‘인물 동산’이 있다. 먼저 ‘2·28 대구 학생의거 기념탑’을 찾으면 그다음은 금방이다. 1995년에 세운 이상화의 등신대 동상이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부분이 새겨진 시비도 그 옆에 함께한다. 이상화 동상 주위에는 목우(牧牛) 백기만의 ‘산촌모경(山村暮景)’ 시비와 고월(古月) 이장희(李章熙)의 시비(‘봄은 고양이로다’)가 모여있다. 현진건(玄鎭健)의 문학비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또래 친구였던 이들은 모두 일제의 모진 탄압과 회유에 맞서 끝까지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은 애국지사이며 무엇보다도 초창기 한국 현대문학의 뛰어난 개척자다.

이상화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않았다. 그의 시 작품이 시집 형태로 묶인 것은 백기만이 편집해 청구출판사에서 1951년에 출간한 ‘상화와 고월’이 처음이다. 이상화의 시 16편과 이장희의 시 11편을 수록한 이 책은 두 시인의 연구를 위한 선구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며, 지금도 여전히 필수적이고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시인 백기만은 문우(文友)였던 이상화와 이장희의 작품을 정리해 후세에 전하는 데 더 힘을 쏟았고, 자신은 끝내 생전에 개인 시집을 갖지 못했다. 이제는 되레 그의 시들이 잊힌 듯해 안타깝다. 이상화의 시는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됐고, 여러 차례 시집과 전집이 간행되면서 추후 발굴된 작품들이 계속 더해져 현재까지 68편이 전해진다. 여기에 수필과 평론, 번역 등 다수의 산문 작품을 남겼지만, 이 부분의 연구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이상화는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인정받는 시인이다. 카프 계열의 잡지 ‘문예운동’(2호)에 발표한 탓에, 그 제목만 전해지는 시 ‘머-ㄴ 기대(企待)’ 그리고 제목과 첫 행 “일은 몸 말 없는 하늘은”만 남은 ‘설어운 조화(調和)’는 그 본문이 머잖아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일제가 수차례 가택 수색을 하며 압수해 간 시인의 원고들 또는 임화(林和)와 월탄(月灘) 박종화가 수집해 이상화의 시집을 간행할 목적으로 월북한 이문기에게 전했지만, 그만 한국전쟁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자료들이 ‘기적처럼’ 발견될 수도 있으리라.

빙허(憑虛) 현진건과 이상화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같은 고향의 오랜 친구이자 ‘백조(白潮)’ 동인인 두 사람은 같은 날 사망했다. “4월 25일!(…) 애당초 내가 상화를 알 때 빙허를 통해 알았고, 오늘 상화의 부음을 듣기는 또한 빙허의 죽음을 조문하러 그 댁에 갔다가 들었으니, 역시 죽은 빙허를 통해 상화의 부음을 접한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라. 이 무슨 범상치 않은 인연인고!”(박종화(朴鍾和), ‘빙허와 상화’, 1943).

가장 최근에 만든 시비를 찾아 이번에는 수성유원지로 간다. 이 ‘수성못 시비’는 여느 시비와 달리 받침대 없이 잔디밭에 그냥 놓여 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그 규모부터가 압도적이고, 그 덕분에 시 전문을 넉넉히 새겨 넣을 수 있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는 대구 이외의 곳에도 많이 있다. 시인의 고택에도, 모교인 중앙고등학교 교정과 독립기념관 야외 전시장에도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개벽(開闢)’ 70호에 처음 발표했다(1926년 6월). 이 ‘수성못 시비’는 그 당시의 표기 그대로 시의 원문을 새겼다는 점에서 다른 것과 구별이 된다. 처음에는 그저 눈으로 보다가 이내 입으로 중얼거리며 읽게 되는 재미가 그만이다.

시비 뒷면에는 시인의 생애와 건립 과정이 쓰여 있다. 그러나 사족처럼 덧붙인 “그가 바라보며 시상을 떠올렸다는 수성 들판”이라는 설명이 문제였다. “시인이 묘사한 ‘빼앗긴 들’은 대구 남구 ‘앞산 밑 보리밭’”이라는 동생 이상백의 글(‘동아일보’ 1962년 3월 11일 자)이 새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해묵은 논쟁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오히려 관련 단체와 기관 사이의 ‘못된’ 이권 다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2017년 애당초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에 있던 이상화 흉상을 굳이 시비 옆 현재의 위치로 옮긴 일도 마찬가지다.

‘가르마 같은 논길’과 간밤에 내린 고운 비에 젖은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이 어디 이곳 대구에만 있었겠는가. 이상화가 누구인가,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소년이건만 “입은 옷 그대로” 고향 집을 나서 몇 달간에 걸쳐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며 우리 땅과 민족혼을 온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훗날 이 경험을 장엄한 산문시 ‘금강송가(金剛頌歌)’로 노래하던 시인이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저 멀리 만주까지도 한달음에 달려가던 애국지사였다. 이상화의 숭고하고 지고한 시 세계를 제멋대로 한정하고 그 의미를 함부로 훼손하려 드는 그런 무례한 행동은 그 이유가 어찌 됐든 간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상화의 유택(幽宅)과 ‘상화기념관·이장가(李庄家) 문화관’(달서구 대곡동)을 방문하는 일은 아무래도 내일을 기약해야 할 성싶다. 대구를 온종일 ‘깝치며’ 다니며 실감한 일 하나. 지금 우리 땅에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글·사진=박광수

불문학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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